경험담

대물 추억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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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 추억(大物 追憶) --- 1 먼저 양해를 구할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이 시작되는 무대는 몇10년 전 경상도의 오지라고 할만한 벽촌입니다. 주민들은 거의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빈곤과 무지가 마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처럼, 혹은 업보처럼 주민들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되돌아 보면 우리들은 기근이 떠나지 않는 땅에서 야생동물처럼 우선 생존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입에 풀칠을 할지언정 굶어 죽지 않는 것이며 그 다음은 번식이었습니다. 그 과정과 상황은 요즘 TV에서 보는 '동물의 세계' 같은 다큐멘터리물과도 많이 닮은 듯 합니다. 그렇기에 요즘처럼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자유분방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허풍이나 거짓말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도 지구상에는 그렇게 빈곤과 무지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종족이 있듯 몇10년전 우리나라의 오지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떻든 앞으로 펼쳐질 아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니까 혹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역사소설이나 야만인들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으로 그냥 지나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 어차피 모든 것을 털어 놓겠다면 내용의 주제가 될 섹스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내가 처음 섹스, 이른바 씹을 한 것은 우리나이로 10살,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씹에 대한 욕구는 커녕 씹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몰랐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씹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를테면 보지 속에 자지를 집어 넣고 꿀렁거리는 행위가 인간의 큰 쾌락중 하나며, 그렇게 해서 아기가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 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첫경험의 상대는 나보다 18살이나 많았다. 그리고 다음해에 나는 아이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실도 몰랐었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나 내가 고등학교 학생일 때 그녀가 수소문 끝에 나를 찾아와 그런 사연을 털어 놓았을 때 비로서 알게 되었다. 내가 당시 성에 대해 그토록 무지했던 것은 환경 탓은 아니었다. 빈곤과 무지가 창궐해 있는 벽촌에서 성장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되돌아 보면 이곳 주민들은 별다른 오락도 여가도 없는 각박한 생활에서 배를 채우는 일 다음으로 오히려 섹스에 탐닉했다. 그런 점에서는 아이들도 그 부모를 닮아 섹스에 관해서는 발랑 까졌다고 할만큼 조숙해 있었다. 자지 보지를 가릴 줄 알고 부끄럼을 알게 될 무렵이면 벌써 끼리끼리 모이거나 연놈이 살짝 어울려, 섣부른 성적 지식을 주고 받거나 서로의 성기를 보고 만져 주고 삽입도 하는 일들이 빈번 했다는 것은 나는 뒤에 알게 되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그 지식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더라도 대부분 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나만은 그 때까지도 그런 것을 몰랐었다. 내가 지진아였거나 어리숙해서만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당시의 무지조차 일종의 운명으로 치부한다. 내가 그토록 성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우선 신체적 결함, 일종의 병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경멸과 놀림의 대상이었던 나는 항상 기가 죽어 있었고 남들과도 거의 어울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되돌아 보면 그 서글픈 운명 때문에 나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에 원하지도 않았던 씹을 경험하게 했고, 또 유별난 체험이 이어지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정리 해 보기로 한다. 문득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지긋이 내려다 보는 눈동자와 마주치면서 몸에 배다시피한 버릇대로 "어무이!"라며 한팔로 상대의 목을 감고 한손은 앞섶을 뒤지면서 품에 안겼다. 상대도 나를 꼭 껴 안으면서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하지만 젖가슴을 또 하나의 옷감, 브라자가 막고 있었고 말투가 다른 것으로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 영도야. 열은 거의 없지만 땀을 많이 흘렸구나. 자, 우선 약 먹자." 우리가 '서울띠기'라고 부르는 기석 아재의 마누라였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정식 부인은 아니다. 기석 아재는 우리 마을 사람들중 드물게 서울로 진출해 제법 돈도 벌었다더니, 몇년 전에 본처와 3명의 자식을 내팽겨 치고 젊은 여자와 딴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을 나도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판에서 허리를 다쳐 꼼짝없이 누워 지내게 되자 두달쯤 전에 동거녀를 데리고 고향의 본가로 내려온 것이다. 나는 며칠 째 학교도 결석을 하며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예정대로 오늘 아침 행상을 떠나야 했다. 병석의 아들을 놔둔 채 집을 나선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이 나는 병이 거의 낳는 중이어서 엄마는 이 아줌마에게 약을 챙겨 먹여줄 것을 부탁하고 떠났고 오늘 낮에도 한차례 아줌마가 달여 준 탕약을 먹었었다. 당시 우리집에는 엄마 말고도 나보다 8살 많은 큰 누나와 4살 많은 셋째 누나등 2명의 여자가 있었지만 이웃 아낙에게 나의 병간호를 부탁한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큰 누나는 소경이라 먹는 밥 정도는 챙겨 줄 수 있지만 한약 달이는 것 까지 맡길 수는 없었다. 셋째 누나는 워낙 쌀쌀 맞고 인정머리라고는 없는데다 막내인 나한테는 거의 적대감까지 품고 있어 아예 엄마가 포기해 버린 것이다. "자, 어서 먹자. 그리고 다시 한 잠 푹 자거라." 서울 말씨는 정말 듣기가 좋다. 아줌마는 상냥하게 말하며 내게 약사발을 들이 밀었다. "싫다! 써서 못 묵겠다. 안 물란다." 나는 도래질을 치고 약사발을 피하기 위해 더욱 얼굴을 그녀의 가슴에 파뭍고 오른 손은 브라자를 헤지고 그녀의 젖무덤을 움켜 쥐었다. 나는 사실 그리 버릇 없는 놈은 아니었다. 기석 아재의 아줌마에게 반말을 하거나 젖을 만지는 행동은 보통 때라면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며칠 째 앓고 있었고 무서운 꿈을 꾸다 깨서 아직 몽롱한 상태라 응석을 부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아줌마는 별 거부감 없이 내 응석을 받아 주었다. "원, 다 큰 녀석이 아직도 엄마 찌찌를 찾냐? 자, 정신 차리고 우선 약부터 먹자." "싫다. 안묵는다." 나는 아줌마의 강요를 피하기 위해 더욱 그녀의 가슴을 파고 들며 브라자를 들추고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원, 다 큰 녀석이..." 아줌마는 호호 하고 웃으며 귀엽다는 듯 내 등을 다독거리고는 말했다. "영도야. 우선 약부터 먹어. 그럼 찌찌 줄께." "참말로 찌찌 주능교?' 나는 젖에서 입을 떼고 물었다. 어차피 어른이 약을 먹이려고 하는 것을 끝내 피할 수는 없다. 그나마 젖을 빨게 해 준다면 괜찮은 거래다. --- 어린 마음으로도 순간적으로 나는 이런 계산을 했던 것 같아 흥정을 한 것이다. "그래, 그래. 약을 잘 먹으면 찌찌도 줄께." 아줌마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나는 한사발의 탕약을 다 마셨다. 그녀의 표정과는 정반대로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아줌마는 낮에 그랬던 것처럼 대추알 하나를 내 입에 디밀었다. 쓴 약의 입가심 용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그녀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조금 전 거래에서 내 몫을 찾는 행동이었다. 아예 브라자를 다 걷어 올리고 오른쪽 젖꼭지는 입에 물고 내 조그만 오른 손에 넘치는 그녀의 왼쪽 젖통을 감싸고 주물렀다. "원, 다 큰 녀석이..." 아줌마는 똑같은 말을 세번 째 되풀이 하며 내 응석을 그대로 받아 주었다. 그 젖통은 엄마의 것과는 달리 우선 하얗고 매끄러웠으며 탄력이 있었다. 하지만 꼭 엄마의 젖통보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젖꼭지가 조그맣기 때문이다. 엄마의 젖꼭지가 포도알만 하다면 그녀의 것은 겨우 팥알 정도였다. 젖꼭지를 빨거나 주무를 때면 그래도 커야 제 맛이 난다. 하기야 그런 것을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엄마가 없는 처지에 이렇게 젖을 빨 수 있다는 것은 행운 아닌가. "아하...!" 아줌마가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며 몸도 조금 비트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빙긋 웃었다. 내 실력이 발휘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철이 든 뒤로 지금껏 엄마의 젖을 빨아 왔다. 이미 젖은 안 나오는 이른바 빈 젖이지만 그 때까지는 나의 정신적 허기를 채워주는 유일한 수단처럼 우리집에서는 나의 이 유치한 행동이 용인되고 있었다. 그 오랜 경험으로 나의 젖을 다루는 기술은 꽤 세련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아프게 깨물면 안된다. 이미 서너살 무렵에 엄마한테 뺨을 맞으면서 터득한 진리다. 하지만 부드럽게 이빨로 자근자근 건드리는 것은 나도 자극이 좋지만 엄마도 좋아 한다. 또 젖꼭지만 빨아 댈 것이 아니라 젖꼭지를 받혀 주는 오돌도돌한 젖무리를 혀로 밀고 쓰다듬어 주는 것도 엄마는 좋아 한다. 손으로는 젖통을 움켜 쥐려 해서는 안 된다. 손바닥과 젖통이 스칠 듯 말 듯 어루만지며 젖꼭지는 세손가락으로 적당히 강약을 조절하면서 비틀어 준다. 그래서 젖꼭지가 커 지면 손바닥으로 쓸어 주면서 이리 저리 넘겨 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의 하나다. 내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입과 혀와 손을 놀리면 가끔 엄마도, 지금의 아줌마처럼 이상한 신음을 내거나 몸을 비틀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삼하면 엄마는 화가 난듯내 손을 매정하게 빼내고는 돌아 누워 버리는 것이다. 이날의 아줌마도 반응은 비슷했다. "그만, 그만!" 눈까지 사르르 감으면서 신음소리가 더욱 커지던 아줌마는 갑자기 내 손길을 뿌리치면서 앞섶을 여몄다. 얼굴도 좀 붉어 진 것이 엄마가 그럴 때처럼 화도 나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더 이상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매무새를 다듬은 아줌마가 그대로 나갈 줄 알았는데 내 머리와 등어리를 쓰다듬고는 "어휴! 땀이 이렇게 많이 났네. 내복을 갈아 입자."라고 하면서 런닝셔츠를 벗겼다. 갈빗대가 앙상한 상반신의 알몸이 들어 났다. "영도가 많이 말랐구나. 한창 클 나인데 고기나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겠다." 아줌마는 이어서 팬티까지 벗기려 했다. 그제서야 나는 기겁을 하고 앉은 채로 이불을 끌어 당겨 내 몸을 감쌌다. "이렇게 땀 범벅인데 다 갈아 입어야지." "괜찮아예. 난중에 내가 할끼라예." 나는 이불을 움켜 잡고 저항했다. "그러지 말고 빨리 벗어! 그래야 몸도 개운하지." "싫어예. 안 돼예." 나는 거의 필사적으로 내 몸을 지키려 했다. "원, 어린 녀석이... 고추 쯤 내 보이면 어떻다고 그래?" 아까 젖을 빨 때는 '다 큰 녀석'이라더니 고추를 내 보일 상황이 된 지금은 '어린 녀석'이라고 한다. 어른들은 이렇게 자기 필요한대로 말을 쉽게 바꾼다. 아줌마는 우악스럽게 내가 움켜 쥔 이불을 잡아 당겼다. 여자라지만 그때의 나는 그 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이불이 제껴지자 아줌마는 재빨리 팬티 마저 끌어 내 버렸다. 나는 속수무책이었고 그토록 감추려 했던 하반신이 들어 났다. "에그머니나!" 아줌마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물러 났지만, 입을 벌린 채 눈은 동그랗게 뜬 것을 보면 충격이 쉽게 가라 앉지 않는 모양이다. 나도 충격이었다. 부끄러움과 낭패감으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 가고 싶었다. 아줌마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누구라도 내 자지를 처음 보면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내 자지는 흉물스럽고, 징그럽고, 못생겼으며, 그것이 바로 내가 소년기를 우울하고 기가 죽어 지내게 된 요인이었다. 우리 마을에 여러가지 병신들이 많았는데 그중 나는 이를테면 '자지 병신'이었다. 나는 그것이 창피하고 스스로도 혐오스러워 커 가면서 남 앞에서는 절대로 자지를 내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오줌을 눌 때도 주위에 누가 없나를 살피면서 자지를 꺼냈고, 상황이 좋지 않으면 똥이 마렵지 않은데도 대변소를 찾아서 일을 치룰 적도 있었다. 이제 동네 아이들도 별로 나를 놀리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었는데 '서울띠기 아줌마'한테 들켜 버렸으니 소문이 퍼지면, 새롭게 경멸과 놀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사람이야? 이게 어린애 좆이야?..." 아줌마는 여전히 눈을 크게 뜬 채 공포와 징그러움에 질렸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만 했다. 영석이 엄마는 우리 마을에서 제일 큰 혹이 달린 혹부리 아줌마다. 이마에서 왼쪽눈을 덮을 정도로 선지 덩어리 같이 새빨갛고 주먹만한 혹이 매달려 있는데 걷기만 해도 덜렁덜렁 거린다. 하루는 영석 엄마가 읍내 가는 버스를 탔는데 여학생 하나가 그 혹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자 다른 여학생들까지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어 결국 그 버스에서 내려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우리 마을에 문둥병 환자는 없었지만 가끔 문둥이들이 몇명씩 떼를 지어 걸식을 하러 찾아 온다. 아이들은 더러 그들을 좇아 다니며 놀리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벙거지를 깊숙히 눌러 쓴 문둥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우리는 모두 멈칫 섰다.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쳤고, 우리중 한 녀석은 "엄마야!"라고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 앉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문둥이는 눈섭이 없는 것은 물론 눈 하나는 흰자위만 보이고, 코가 완전히 문드러 져 해골처럼 코구멍만 벌렁 뚫려져 있었다. 이렇게 신체적 결함은 남을 놀라게 하고 혐오감을 준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그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내 자지도 그와 비슷하게 흉물스럽고 일그러 져 있었다. 자지와 불알은 몸의 어디보다 검은 색인데 곳곳이 흉터 투성이며 대가리도 상처 때문에 울퉁불퉁했다. 더구나 모든 시골 애들이 그렇듯 내 몸도 햇볕에 그을려 시꺼먼데 팬티만은 개울에서 수영을 할 때도 한사고 안 벗었기에 그 주변만 유난히 하얀 중앙에, 털로 안났으면서 시꺼먼 자지와 불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정말 괴상하게 보일 것이다. 자지 전체도 꽈배기 처럼 비틀어 져 있고 성이 났을 때는 핏줄도 여기 저기 불거 져 내가 보기에도 흉칙한 괴물이었다. 특히 올해 들어 서며 내 자지는 유난히 큰 변화를 보였다. 마치 둘째 누나의 키가 부쩍 커버린 것 처럼. 읍내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둘째 누나는 1년 사이에 키가 한 20센티쯤 커 졌다고 한다. 그래서 얻어 입은 교복도 반소매처럼 짧아지고 등하교 때만 신는 운동화도 몇달만에 발이 안 들어갈 정도였다. 누나가 새 교복과 운동화를 사 달라면 엄마는 "못된 것이 밥만 많이 처먹어 몸만 키운다"며 화를 내곤 했지만 내가 보기에도 키만 컸지, 몸은 대나무 처럼 더욱 빼빼 말라 있었다. 누나의 키가 부쩍 커 지는 동안 나도 키가 좀 자라기는 했겠지만 별로 눈에 뜨일 정도는 아니고 우리 반에서도 앞줄의 대여섯번 째로 설만큼 아직 키가 작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남들의 눈에는 뜨이지 않았지만 자지가 부쩍 커지고 있었다. 정말 하루가 다르다고 할만큼 몇달 사이에 크고 굵어 져서 혹 나쁜 병이라도 생겼나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더욱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지내 왔는데 오늘 뜻밖에도 '서울띠기 아줌마'한테 들키고 만 것이다. 특히 아줌마가 내 팬티를 들출 때는 젖을 빨고 있던 터라 잔뜩 성이 나 있어 더욱 흉물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내 자지는 어릴 적부터 아침에 잠이 깼을 때나, 오줌을 오래 참았을 때, 혹은 손으로 주물럭거리면 커 진다. 자지가 성이 난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더러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남들 앞에서는 정말 거추장스럽고 창피한 현상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엄마 젖을 빨 때도 자지가 벌떡 거리는 경우가 많아 졌다. 그러면 엄마가 혹 눈치를 챌까보아 엉덩이를 한껏 뒤로 빼야 했다. 오늘 아줌마의 젖을 빠는 중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 자지가 커져 있었던 것이다. "이게 사람이야? 이게 어린애 좆이야?..." 아줌마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다 자지 전체를 손바닥으로 움켜 잡고 훑어 보기도 했다. 그 손바닥 안에서 자지는 저 혼자 벌떡 거렸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 나 앉았지만 차마 아줌마의 손을 뿌리치지는 못한 채 빨리 이 창피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아이고, 단단하기도 하네. 마치 쇠막대 같아!" 내 바램과는 달리 아줌마의 호기심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불알을 쓰다듬고 움켜 쥐어 보기도 했다. "어휴. 탱탱하기도 하네. 꼭 축구공 같아!" 그 와중에도 나는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불알이 아줌마 손아귀에는 안 잡힐만큼 컸지만 축구공하고 비교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 사실 내 불알은 찜볼을 하는 고무공보다도 작았다. "아, 아, 아줌마! 그건 안 돼! 더러버요!" 나는 기겁을 하며 말리려 했지만 어느 새 내 자지 끝은 아줌마 입속에 있었다. 잽싸게 자지를 물어 버린 아줌마는 점점 더 입 안 깊숙히 자지를 담고는 혀를 이리 저리 굴렸다. 나는 더 이상 아줌마를 제지하지 못했다. 갑자기 내 몸으로 밀려드는 이상한 느낌조차 주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치 뜨겁고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온 몸이 뜨거우면서도 아늑했다. 아니, 꼭 그것만은 아니다. 송곳으로 찔린 것 처럼, 하지만 아프지는 않게,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 한 기분이 머릿속까지 전해 오는 듯 했다. 그 입속에서 내 자지는 또 버릇 없게 혼자 껄떡 거렸다. 아줌마가 입을 떼며 "하아 -- "하고 숨을 내 뱉었다. 나도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며 숨을 내 쉬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줌마가 주섬주섬하는 것을 보니 치마를 걷어 올리며 팬티를 벗고 있지 않는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 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무슨 대비는 해야 한다. 나는 우선 아까 벗겨 진 내 팬티를 집어 들었다. "안 돼! 잠깐 가만 있어!" 아줌마의 말은 다급하면서도 단호했고 행동도 거칠었다. 아까 옷을 벗길 때처럼 내 팬티를 확 나꾸어 채며 한 손으로는 내 가슴을 떠밀어 나를 눕혀 버렸다. 그리고는 내 몸 위로 올라 와 마치 오줌 누는 자세처럼 쪼그려 앉았다. 나는 보았다. 유난히 허연 허벅지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아줌마의 보지를 . 나는 깜짝 놀랐다. 아줌마도 나처럼 병신인가? --- 그 보지도 흉물스럽고 징그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 보지를 꽤 많이 본 셈이다. 당시 어린애들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아래를 벗은 채 돌아 다녔다. 한번은 호기심으로 잠자는 어린애의 보지를 까 보기도 했다. 칼자국 처럼 생긴 보지 속에는 조갯살 같은 발그레한 속살이 있었다. 이것이 남녀의 차이인 것이다. 남자가 자지로 오줌을 누듯 여자는 보지로 오줌을 누는데, 남자는 그것이 몸 밖으로 나와 있고 여자는 갈라 진속에 감춰 져 있을 뿐이다. 내 궁금증은 직접 관찰 하는 것으로 쉽게 풀렸다. 그 후 나는 털이 난 어른들의 자지 보지도 가끔 보았다. 아버지 엄마를 비롯해 동네 어른들이 냇가에서 목욕을 하거나 집에서 옷을 갈아 입을 때도 자연스럽게 볼 기회가 있었다. 자지는 어른이 되면 모양이 변한다. 우선 주위에 털이 나고 마치 남자의 목에 뼈가 돋아 나듯 대가리가 뭉뚝하게 커지는 것이다. 여자도 어른이 되면 보지에 털이 난다. 하지만 목이 매끈 하듯이 들어나게 바뀌는 것은 없다. --- 이 이야기는 몇년 전 내 또래의 사내 아이가 내게 들려 준 것이고 나도 쉽게 수긍이 갔다. 나는 털이 난 보지를 만져 보기도 했다. 대상은 엄마와 큰 누나 단 두명이지만. 엄마의 보지 털은 푹신하달만큼 무성했지만 몇년 전에 만져 본 누나는 이제 막 돋아 나느라 그런지 까실까실하면서도 성글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본 아줌마의 보지는 그 생김새가 그동안 나의 견문이나 지식과는 딴 판이었다. 그 보지를 보면서 나는 가물치나 잉어를 떠 올렸다. 우선 내 손보다 더 길쭉한 것이 그 전에 보아 왔던 어른 보지와 크기가 달랐으며 마치 배를 가른 생선처럼 딱 벌어진 보지 속에 검고 붉은 속살들이 보였는데 물끼가 질펀했다. 그 주위로는 온통 시커멓게 털이 나 있어 내 자지보다도 더욱 흉칙하게 보였다. 아줌마는 내 자지를 잡고는 그 흉칙스런 보지를 움직였다. 자지 대가리는 아까 아줌마가 입으로 물 때처럼 보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몸을 아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 아줌마의 신음 소리에 보지를 지켜 보던 나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아줌마는 눈을 감고 입은 반쯤 헤벌린 채 잔뜩 찡그러 져 있었다. 하지만 아프거나 괴로운 표정은 아닌 것 같았다. 글쎄, 그 야릇한 표정은 내 경험으로 보면 똥이 막 똥구멍을 빠져 나갈 때나, 엄마가 귀를 후벼 줄 때 나도 모르게 짓는 표정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흐윽!" 아줌마는 더욱 거센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나는 마주 치는 그 눈길을 피했다. 우선 나는 두려우면서도 궁금했다. 나는 오늘 난생 처음 상상조차 못 했던 체험들을 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끝은 어디일지 알 수가 없었다. 아줌마는 고개를 숙여 내 자지 쪽을 보았다. 아니, 그 표현은 옳지 않다. 그때 나도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았지만 자지는 없었다. 보지가 다 삼켜 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을 석고 있었다. 아줌마는 보지를. 실제로는 몸 전체를 천천히 올리고 내렸다. 더 이상 신음은 없었지만 아줌마의 숨소리는 거칠고 가빠 졌다. 나도 숨이 가빠 져 가는 것을 느꼈다. 사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변화가 내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보지 속에 자지가 완전히 갇히면서 아까 아줌마의 입 속에 들어 갔을 때보다 더욱 진하고 생생한 자극이 내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방아를 찧는 듯한 아줌마의 동작이 점점 빨라 졌다. 아,아, --- 나도 속으로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보지 속으로 들어 간 자지는 몇번 껄떡 거렸지만, 그 속살이 자지를 감싸고 방아를 찧으며 쓰다듬어 주자 꿈쩍도 못한 채 당하고만 있는 것이다. 대신 내 몸 전체는 뜨겁고 아늑한 물에서 뚱뚱 떠 올랐고, 아니, 가끔 꿈에서 그렇듯 창공을 훨훨 날아다디는 것 같기도 했고, 송곳보다 훨씬 크면서도 날카로운 흉기가, 하지만 전혀 아프지는 않게 내 온 몸등이를 난도질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찌이걱, 찌걱, 찌걱, 찍, 찍, 찍, 찍 ... 그 와중에서도 방아 ?는 소리는 내 귀를 울려 왔고 그 소리의 강약과 리듬이 마치 심포니의 지휘봉처럼 모든 감각을 통제 하는 것 같았다. 소리가 커지고 속도가 빨라 질 수록 내 감정도 증폭되어 가며 내 몸 전체가 심포니의 화음처럼 연주되고 있었다. "아,아, --- 흐윽, --- 어, 어 --- 아악 ---" 아줌마의 감동은 나보다 더 격렬 했을까. 가쁜 숨소리와 신음이 어느새 비명과 울부짖음으로 바뀌더니 온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떠면서 동작을 멈추고는 고꾸라 지듯 내 몸을 포개 버린다. 그러나 모든 동작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뜨거운 물끼를 뿜어 낸 듯 하더니 보지 속이 옴찔옴찔 하면서 아까의 방아 찧는 것과는 또 다른 감흥으로자지를 자극해 준다. 나보다 키가 커서 그녀의 턱이 내 이마에 걸려 있는데 뜨거운 숨결이 내 머리를 간질여 준다. 그리고 내 가슴을 누르고 있는 그녀의 풍만한 젖통이 심장의 빠른 고동에 함께 출렁거리면서 내 몸에 그 독닥거림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고 있었다. 격정이 우리를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 여운도 감미로웠다. 하지만 이날 밤의 체험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를 꼭 끼어 안고 몸을 밀착한 채 아줌마는 다시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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