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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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술집에 나란히 앉아있는 환우와 은빈.
환우는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질 않는다. 자신의 앞에 이은빈이 앉아 있다니….
윤기 나는 길고 검은 생머리, 새하얀 얼굴에 도도한 여우같은 눈매….
“왜 그렇게 얼어 있니?”
은빈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환우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녀가 예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다. 설마 이정도로 예쁠 줄이야….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그, 근데 어떻게 날 알고 연락했네….”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눈 한 번 마주친 것뿐이었는데….
“응…. 그냥 애들한테 물어물어 알았어….”
“그래….”
대답을 하던 환우는 핸드폰에 소은의 문자가 온 것을 확인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환우가 술을 마시며 알게 된 은빈의 성격은 말을 많이 하며 분위기를 자신이 주도하는 타입의 여자라는 것이었다. 소은과는 대조적이었다. 활발하게 말하며 환우가 가끔씩 쳐주는 맞장구에 좋아하는 은빈.
그러다 술이 조금 들어간 은빈이 결국 과팅 때 일을 꺼낸다.
“너 과팅 때 나 찍었었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묻는 그녀의 질문에 당황하는 환우.
“응, 응…. 그, 그랬었지.”
당황하는 환우를 가만히 바라보던 은빈이 이윽고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여자친구 생겼니?”
“아니….”
환우는 대답을 하고도 스스로 놀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자친구를 부정하는 대답. 아까 전까지 사랑하는 소은과 통화를 하지 않았나…. 순식간이었다. 소은의 존재를 부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제 와서 잘못 말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
환우는 소은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은빈은 과내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그래서일까? 자신이 소은과 사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은빈이 말을 잇는다.
“너 혹시 아직도 나 좋아해?”
“뭐, 뭐?”
당황하는 환우를 놀리는 듯한 은빈의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다.
“뭘 그리 놀라. 나 아직도 좋아하냐고….”
“응….”
남자는 다 똑같은가 보다.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생물인가 보다.
역시나 남자인 환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은빈의 질문에 긍정을 해버린다.
“…너 그럼 나랑 사귈래?”
“응…? 뭐, 뭐라고?”
잘못 들었나싶다.
“푸훗. 정말 순진하구나 너…. 나 좋아하는 마음 아직도 있으면 나랑 사귀지 않겠느냐고…. 나 쉽게쉽게 말하는 거 같지만 되게 용기내서 말하고 있는 중이야.”
환우는 미소를 띠운 채 그렇게 말하는 은빈의 유혹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응, 좋, 좋아!”
이러면 안 되는데…. 미쳤나보다.
“그래? 너 나만 좋아해 줄 자신 있어? 나 이제 힘들기 싫으니까….”
사귀던 정혁과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환우는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니, 괜히 물어봤다 잘못되어 은빈의 마음이 변해버리면 그것이 더 큰일이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응! 당연하지! 나한텐 너처럼 예쁜 여자는 정말 과분해. 그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가 있겠어!”
환우는 소은의 웃는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무시해버린 채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자친구인 소은보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예쁜 은빈이 먼저였다.
은빈의 얼굴에 크게 만족한 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고마워…. 그럼 나 오늘부터 너의 여자친구가 될게….”
이게 꿈일까….
환우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다. 소은에 대한 걱정 따위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어준단다.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은빈은 헤어지는 환우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까지 한다.
이제 환우는 어떻게 해서든지 소은과 헤어져야만했다.
*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음 날, 환우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소은과 만나기로 했다.
환우보다 늦게 도착한 소은이 자리에 앉으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연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계속 연락 안 되던데…. 집에 찾아가볼까 하다 말았는데…. 괜찮은 거지?”
환우는 자신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소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시선을 피한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소은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란다. 무슨 말인지 분명히 들었다. 다시 확인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말….
“응, 응…? 자, 장난하는 거지?”
억지 미소를 띤 얼굴로 환우에게 되묻는다. 장난이길 간절히 바라며….
“아니야. 그만 헤어지자….”
하지만 환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소은에게 장난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현실이다. 지독하리만치 잔인하고 진지한 현실….
소은은 갑자기 눈물이 펑하고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울고 싶지 않아 억지로 참으며 이유를 들어보기로 한다.
“가, 갑자기 왜…?”
잠시 뜸을 들이던 환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 너네 과 은빈이랑 어제 사귀기로 했어….”
“뭐, 뭐?”
소은은 남자친구인 환우가 미친 거 같았다. 뜬금없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은빈이라면 과팅 때 환우가 찍었던 같은 과 동기가 아닌가. 그때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최근에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애가 엄청난 바람둥이라 은빈이가 견디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근데 갑자기 환우가 그런 은빈이랑 왜, 어떻게 사귄단 말인가?
소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
“왜, 왜 갑자기 그 애랑….”
“그냥 그렇게 됐어….”
자세한 설명을 거부하는 환우.
소은은 그런 환우를 멍하니 바라본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남자친구…. 그 눈에는 첫 여자친구와의 첫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가여웠다….
환우의 성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기에 지금 눈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자친구가 너무나도 가엽다.
왜 그러냐고, 갑자기 왜 그러냐고 울며불며 다그치고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환우의 두려움 가득한 눈을 보니 그럴 마음이 단 번에 사라져 버린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보내줄 줄도 알아야겠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빙그레 웃는 소은….
“원래 계속 은빈이 좋아하고 있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좋아했었네….”
“그, 그런 건 아냐….”
환우는 황급히 부정해본다. 그것만은 정말 진실이 아니기에…. 하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도 소은에겐 가슴이 아픈 잔인한 말들일 테니….
“미, 미안해….”
결국 미안하다는 사과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소은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다.
“괜찮아! 미안할 거 뭐있냐…. 나는 말야….”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말을 잇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걸. 난 정말 괜찮아….”
여전히 환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나 먼저 가볼게. 학교에서 가끔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하자. 알았지…?”
소은은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환우는 무심결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앞에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녀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불구하고 펑펑 울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환우는 소은이 울며불며 매달릴 줄 알았다. 자신과 관계를 가진 것이 처음인데 어떡할 거냐고 책임지라고 울며불며 난리를 칠 줄 알았기에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많은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기우였다.
소은은 자신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끝까지 웃으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그렇게 펑펑 울 정도로 가슴 아팠으면서….
가슴이 아리다….
스스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정말 나쁜 놈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는 정말 마음씨 고운 천사인데….
*
환우는 스타가 된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은빈과 함께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진 남자인 것 마냥 동경의 눈길로 바라본다.
비록 학교에선 은빈이 아직 정혁이 때문에 좀 그렇다는 이유로 같이 다니지는 못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그런 것쯤은 예쁜 은빈과 사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 할 수 있었다.
스킨십 진도도 순식간에 키스까지 나가게 되었다. 은빈은 꽤나 적극적인 여자였다. 조금만 분위기가 생겨도 은빈이 먼저 키스를 해오곤 했다. 환우도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인 스킨십을 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그녀의 기분을 언짢게 할까봐 참아내곤 했다.
그렇게 환우가 은빈과 사귄지 2주 정도가 흘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하려는데 은빈이 말한다.
“환우야. 나 오늘 너 자취방에 놀러 가보고 싶어.”
“지, 지금?”
놀러 가고 싶다는 그 말뿐이었는데 환우는 야한 상상에 순식간에 흥분해버리고 만다.
“응. 지금.”
그렇게 환우는 은빈을 데리고 자신의 자취방에 오게 되었다.
“오-. 남자치고는 꽤 깔끔하게 사는데?”
왜 그랬을까….
환우는 자취방을 둘러보는 은빈에게서 갑자기 소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우와! 의외로 깔끔하네?]
순진무구한 얼굴로 자취방을 둘러보던 소은….
환우는 재빨리 고개를 저어 그녀의 모습을 떨쳐버린다. 이제 떠올릴 이유 없잖아….
조그만 자취방에서 연인이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나 싶던 둘은 어느새 뒤엉켜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먼저 키스를 해온 것은 역시나 은빈이었다. 적극적으로 환우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키스를 하는 은빈.
그런 그녀에게 흥분을 하던 환우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한 손을 은빈의 가슴으로 가져간다.
“아….”
흠칫 놀란 은빈의 몸이 살짝 떨렸지만 제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에 환우는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음….”
은빈의 가슴은 탱글탱글한 것이 소은의 가슴보다는 작았지만 탄력은 더 좋은 거 같았다. 한참을 그녀의 가슴을 탐하던 환우의 손은 이제 티셔츠 안으로 파고든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배를 지나 탄력 있는 은빈의 가슴에 도달하는 환우의 손…. 정신없이 브래지어 안으로 파고들어가 그녀의 젖꼭지를 만진다.
“하아, 하아. 환우야….”
환우에게서 입술을 뗀 은빈이 풀린 눈으로 입을 연다.
“오늘 해도 괜찮아….”
은빈의 결정적인 한마디에 환우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만다. 그녀에게서 떨어져 빠른 속도로 옷을 벗는 환우. 그리고 그런 환우를 바라보는 은빈도 정신없이 옷을 벗어 재낀다. 환우가 미쳐 옷을 벗기도 전에 팬티까지 다 벗어버린 은빈은 스스로 다리를 벌려 누우며 남자친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옷을 다 벗은 환우는 은빈의 다리 사이에 앉으며 자지를 넣을 준비를 했다. 은빈의 보지는 환우가 손도 대지도 않았는데 축축이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넣을게….”
“응…. 넣어줘 환우야….”
환우는 은빈의 위에서 자지를 손으로 잡고 그녀의 보지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왜였을까….
갑작스레 소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자취방안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나날들이….
놀란 환우는 고개를 저어 소은의 모습을 떨쳐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소은과의 기억들이 더욱더 떠오른다.
“뭐해? 안 넣고…?”
갑자기 멍하니 있는 환우가 이상했는지 그렇게 묻던 은빈은 고개를 들어 환우의 자지를 바라보았다.
아까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힘없이 줄어들어 있는 환우의 자지….
“어, 어?”
은빈은 당황해 환우의 밑에서 빠져나오며 물었다.
“왜, 왜 그래?”
“어…? 응….”
환우는 은빈의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잠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은빈이 그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럼 말이야…. 내가 그… 입으로 해줄까?”
아무 말이 없는 환우….
“나 해본적도 없어서 잘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한 번 해줄게….”
은빈은 우두커니 앉아 있는 환우에게 다가가 쪼그라든 자지를 입에 머금는다.
“읏….”
무릎을 꿇은 채 섹시한 자세로 허리를 숙여 어색하게 살짝살짝 환우의 자지를 빠는 은빈…. 그렇게 한참을 빨았지만 환우의 자지는 커질 생각을 안 한다.
그러자 점차 은빈의 솜씨가 달리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자지 끝에만 살짝 살짝 빠는 듯했던 그녀는 입 안 가득 집어넣었다 빼거나 혀와 손을 사용해 열심히 환우의 자지를 빨아댔다.
그러나 여전히 커질 생각을 하지 않는 환우의 자지….
한참을 빨던 은빈이 갑자기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환우도 그런 그녀에게 할 말이 없어 멋쩍게 옷을 챙겨 입는다.
“나 이만 갈게.”
옷을 다 입은 은빈은 환우가 잡을 새도 없이 후다닥 나가버린다.
환우는 은빈이 나가고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녀를 잡고 싶은 마음도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환우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소은에 대한 추억들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던 천사처럼 착하던 그녀….
남자친구 생일이라고 밤새 기다려 선물을 건네주고 교복을 입은 채 수줍은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흑…!”
환우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온다. 소은과의 추억들을 생각하니 자신이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듣는 사람도 없는데 눈물범벅이 되어 미친 듯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너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난 정말 나쁜 놈이야….”
이젠 펑펑 울며 괴로워하는 환우….
너같이 착한 애한테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러나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
그 후로 며칠이 지났지만 은빈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환우도 연락을 하기 뭐해서 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마냥 지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결말은 지어야 하니까….
그래도 환우가 연락을 하니 은빈은 순순히 받아준다. 그리고 저녁에 학교 앞 술집에서 보기로 했다.
둘은 별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환우는 혼자 술만 홀짝 거리고 있었고, 은빈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술집에 흐르는 음악과 주변 사람들의 시끄러운 대화소리마저 없었더라면 지금 둘 사이는 독서실만큼이나 조용한 상태였다.
“나 화장실 다녀올게.”
술집에 온 이후 은빈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응….”
은빈이 화장실에 가고 환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분위기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역시 헤어지는 길밖에 없으려나….
그때 테이블에 놓인 은빈의 핸드폰 액정이 켜진다. 메시지가 온 것이다. 메시지 자체가 바로 화면에 뜬지라 환우는 별 생각 없이 액정을 바라보았다.
[ㅋㅋㅋㅋㅋ야 불능새끼 그만 만나고 빨리 와. 오늘 헤어지자고 말할 거라며 빨리 와서 밤새도록 박아보자.]
환우의 얼굴이 놀람과 부끄러움으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게 무슨 내용이란 말인가….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들을 확인한다.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명목상이라도 여자친구의 핸드폰에서 저런 문자를 보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은빈의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정말 가관이다. 경민오빠란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사람과 주고받은 온갖 추잡한 메시지들…. 그 메시지들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자신과 하려다 실패한 날 이 남자와 만나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은빈이 남자에게 보낸 메시지는 추잡함의 종지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짜증나 오빠 나 새로 생긴 남친 발기부전이얔ㅋㅋㅋㅋ 아 진짜 짜증나 얼굴 잘생긴 새끼들은 얼굴값해서 짜증나서 그냥 대충 데리고 다닐만한 애 만나려고 한 건데 아 난 걸려도 어떻게 이런 새끼가 걸리지? 내가 순진한척 살짝 빨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그새끼 거 존나 열심히 빨았거든? 근데도 안 서는데 어떻게 해야됰ㅋㅋㅋ]
은빈의 메시지를 다 확인한 환우는 조용히 그녀의 핸드폰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는다. 저렇게 예쁘게 생긴 여자가 남자와 이런 메시지들을 주고받다니….
잠시 후 은빈이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앉자 조용히 일어나는 환우.
“우리 그만 헤어지자.”
“…뭐?”
화장실에서 돌아온 은빈은 갑작스런 말에 황당하다는 듯 환우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환우는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서 술집을 나왔다.
*
무작정 밤거리를 걷는 환우.
기분이 울적하다고 해야 할까….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슬프지도 않다. 그렇다고 힘든 것도 아니다. 그냥 울적하다.
소은을 보고 싶었다.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소은이라고…. 은빈 대신 소은이라는 야비한 마음이 아니었다. 은빈과 관계를 가질 뻔한 날 떠올랐던 소은에 대한 기억들…. 확실했다. 자신은 소은을 사랑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행동에 옮기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소은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그녀가 연락을 받지 않는 일은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착한 성격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연락을 받아줄 것이다.
몇 번의 통화음이 지난 후 소은의 음성이 들려왔다. 특유의 높은 음색으로 밝게 전화를 받아주는 그녀.
[여보세요?]
“응. 소은아…. 아, 안녕.”
[응. 환우야. 웬일이야?]
“…응. 뭐해?”
[그냥 컴퓨터하고 있었어.]
“그래…. 저기 혹시 술 한 잔 하지 않을래?”
잠시 소은의 말이 없다가 이어진다.
[지금…?]
“응….”
다시 말이 없는 소은. 하지만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래. 오랜만에 너 보는 건데 나가야지.]
역시 천사 같은 마음씨의 소은이었다.
*
소은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 근처까지 나와 주었다. 이렇게 되면 소은은 집에 택시를 타고 가지 않는 이상 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선 환우도 소은도 특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근처 술집에 들어가 마주 앉는 두 사람.
어색하다….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어색했다. 환우는 말없이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고, 소은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긴장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결국 소은이 밝은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연다.
“…벌써 어디서 한잔하고 왔구나?”
“어? 응….”
환우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다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말없이 술만 따라 마시는 두 사람….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소은이었다.
“…은빈이랑은 잘 사귀고 있어?”
“…방금 헤어지고 왔어….”
놀라는 소은.
“갑자기 왜?”
“그냥…. 그럴 일이 있었어.”
대답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환우인지라 소은은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응. 그렇구나….”
“미안해.”
갑자기 환우가 뜬금없이 사과를 한다.
“응?”
“너한테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환우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그렇게 계속해서 소은에게 사과를 했다.
“에이. 아냐…. 예전 일인데….”
소은은 웃는 낯으로 환우의 사과를 받아준다. 분명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웃음이지만 환우 앞에서 슬픈 기색은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는 그녀였다.
소주 한 병을 비웠을 무렵 환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돌아갈 수 있을까?”
“뭐?”
무언가 분명히 들었지만 자신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에 다시 한 번 반문하는 소은. 환우는 그런 그녀를 위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명확한 내용을 담아서….
“나 너한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소은도 이번엔 무슨 말인지 확실히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놀람으로 커다래진 소은의 두 눈에 촉촉이 물기를 만들었다.
놀란 것도 잠시, 이내 눈물이 가득 고인 소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짧은 시간 이었지만 난 항상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는걸. 아니…. 혹여 그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해도 난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소은의 말에 환우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오늘 소은과 만나고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본 것이다. 커다란 두 눈에 눈물 한 가득 고인 채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 천사의 모습이 따로 있을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바로 천사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환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
놀란 소은은 환우의 옆자리로 와 다독였다.
“왜 울어 바보야….”
소은이 다독이자 환우의 감정이 더욱 북받쳐 오른다. 이내 소은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펑펑 울어버리는 환우….
“바보….”
소은도 자신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쉼 없이 닦아낸다. 환우가 돌아와 준 기쁨의 미소만은 잃지 않으며….
그날 소은은 환우의 집에서 자고 갔다. 예전처럼 밤새도록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뜨겁게 뜨겁게….
덕분에 다음 날 집에 들어간 소은은 부모님에게 엄청나게 혼났다며 환우에게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려야 했다.
그리고 환우는 소은이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은빈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 잠깐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환우는 소은과 다시 사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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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음편부터 시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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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는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질 않는다. 자신의 앞에 이은빈이 앉아 있다니….
윤기 나는 길고 검은 생머리, 새하얀 얼굴에 도도한 여우같은 눈매….
“왜 그렇게 얼어 있니?”
은빈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환우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녀가 예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다. 설마 이정도로 예쁠 줄이야….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그, 근데 어떻게 날 알고 연락했네….”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눈 한 번 마주친 것뿐이었는데….
“응…. 그냥 애들한테 물어물어 알았어….”
“그래….”
대답을 하던 환우는 핸드폰에 소은의 문자가 온 것을 확인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환우가 술을 마시며 알게 된 은빈의 성격은 말을 많이 하며 분위기를 자신이 주도하는 타입의 여자라는 것이었다. 소은과는 대조적이었다. 활발하게 말하며 환우가 가끔씩 쳐주는 맞장구에 좋아하는 은빈.
그러다 술이 조금 들어간 은빈이 결국 과팅 때 일을 꺼낸다.
“너 과팅 때 나 찍었었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묻는 그녀의 질문에 당황하는 환우.
“응, 응…. 그, 그랬었지.”
당황하는 환우를 가만히 바라보던 은빈이 이윽고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여자친구 생겼니?”
“아니….”
환우는 대답을 하고도 스스로 놀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자친구를 부정하는 대답. 아까 전까지 사랑하는 소은과 통화를 하지 않았나…. 순식간이었다. 소은의 존재를 부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제 와서 잘못 말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
환우는 소은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은빈은 과내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그래서일까? 자신이 소은과 사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은빈이 말을 잇는다.
“너 혹시 아직도 나 좋아해?”
“뭐, 뭐?”
당황하는 환우를 놀리는 듯한 은빈의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다.
“뭘 그리 놀라. 나 아직도 좋아하냐고….”
“응….”
남자는 다 똑같은가 보다.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생물인가 보다.
역시나 남자인 환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은빈의 질문에 긍정을 해버린다.
“…너 그럼 나랑 사귈래?”
“응…? 뭐, 뭐라고?”
잘못 들었나싶다.
“푸훗. 정말 순진하구나 너…. 나 좋아하는 마음 아직도 있으면 나랑 사귀지 않겠느냐고…. 나 쉽게쉽게 말하는 거 같지만 되게 용기내서 말하고 있는 중이야.”
환우는 미소를 띠운 채 그렇게 말하는 은빈의 유혹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응, 좋, 좋아!”
이러면 안 되는데…. 미쳤나보다.
“그래? 너 나만 좋아해 줄 자신 있어? 나 이제 힘들기 싫으니까….”
사귀던 정혁과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환우는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니, 괜히 물어봤다 잘못되어 은빈의 마음이 변해버리면 그것이 더 큰일이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응! 당연하지! 나한텐 너처럼 예쁜 여자는 정말 과분해. 그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가 있겠어!”
환우는 소은의 웃는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무시해버린 채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자친구인 소은보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예쁜 은빈이 먼저였다.
은빈의 얼굴에 크게 만족한 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고마워…. 그럼 나 오늘부터 너의 여자친구가 될게….”
이게 꿈일까….
환우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다. 소은에 대한 걱정 따위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어준단다.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은빈은 헤어지는 환우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까지 한다.
이제 환우는 어떻게 해서든지 소은과 헤어져야만했다.
*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음 날, 환우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소은과 만나기로 했다.
환우보다 늦게 도착한 소은이 자리에 앉으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연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계속 연락 안 되던데…. 집에 찾아가볼까 하다 말았는데…. 괜찮은 거지?”
환우는 자신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소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시선을 피한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소은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란다. 무슨 말인지 분명히 들었다. 다시 확인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말….
“응, 응…? 자, 장난하는 거지?”
억지 미소를 띤 얼굴로 환우에게 되묻는다. 장난이길 간절히 바라며….
“아니야. 그만 헤어지자….”
하지만 환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소은에게 장난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현실이다. 지독하리만치 잔인하고 진지한 현실….
소은은 갑자기 눈물이 펑하고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울고 싶지 않아 억지로 참으며 이유를 들어보기로 한다.
“가, 갑자기 왜…?”
잠시 뜸을 들이던 환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 너네 과 은빈이랑 어제 사귀기로 했어….”
“뭐, 뭐?”
소은은 남자친구인 환우가 미친 거 같았다. 뜬금없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은빈이라면 과팅 때 환우가 찍었던 같은 과 동기가 아닌가. 그때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최근에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애가 엄청난 바람둥이라 은빈이가 견디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근데 갑자기 환우가 그런 은빈이랑 왜, 어떻게 사귄단 말인가?
소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
“왜, 왜 갑자기 그 애랑….”
“그냥 그렇게 됐어….”
자세한 설명을 거부하는 환우.
소은은 그런 환우를 멍하니 바라본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남자친구…. 그 눈에는 첫 여자친구와의 첫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가여웠다….
환우의 성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기에 지금 눈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자친구가 너무나도 가엽다.
왜 그러냐고, 갑자기 왜 그러냐고 울며불며 다그치고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환우의 두려움 가득한 눈을 보니 그럴 마음이 단 번에 사라져 버린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보내줄 줄도 알아야겠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빙그레 웃는 소은….
“원래 계속 은빈이 좋아하고 있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좋아했었네….”
“그, 그런 건 아냐….”
환우는 황급히 부정해본다. 그것만은 정말 진실이 아니기에…. 하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도 소은에겐 가슴이 아픈 잔인한 말들일 테니….
“미, 미안해….”
결국 미안하다는 사과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소은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다.
“괜찮아! 미안할 거 뭐있냐…. 나는 말야….”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말을 잇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걸. 난 정말 괜찮아….”
여전히 환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나 먼저 가볼게. 학교에서 가끔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하자. 알았지…?”
소은은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환우는 무심결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앞에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녀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불구하고 펑펑 울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환우는 소은이 울며불며 매달릴 줄 알았다. 자신과 관계를 가진 것이 처음인데 어떡할 거냐고 책임지라고 울며불며 난리를 칠 줄 알았기에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많은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기우였다.
소은은 자신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끝까지 웃으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그렇게 펑펑 울 정도로 가슴 아팠으면서….
가슴이 아리다….
스스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정말 나쁜 놈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는 정말 마음씨 고운 천사인데….
*
환우는 스타가 된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은빈과 함께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진 남자인 것 마냥 동경의 눈길로 바라본다.
비록 학교에선 은빈이 아직 정혁이 때문에 좀 그렇다는 이유로 같이 다니지는 못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그런 것쯤은 예쁜 은빈과 사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 할 수 있었다.
스킨십 진도도 순식간에 키스까지 나가게 되었다. 은빈은 꽤나 적극적인 여자였다. 조금만 분위기가 생겨도 은빈이 먼저 키스를 해오곤 했다. 환우도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인 스킨십을 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그녀의 기분을 언짢게 할까봐 참아내곤 했다.
그렇게 환우가 은빈과 사귄지 2주 정도가 흘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하려는데 은빈이 말한다.
“환우야. 나 오늘 너 자취방에 놀러 가보고 싶어.”
“지, 지금?”
놀러 가고 싶다는 그 말뿐이었는데 환우는 야한 상상에 순식간에 흥분해버리고 만다.
“응. 지금.”
그렇게 환우는 은빈을 데리고 자신의 자취방에 오게 되었다.
“오-. 남자치고는 꽤 깔끔하게 사는데?”
왜 그랬을까….
환우는 자취방을 둘러보는 은빈에게서 갑자기 소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우와! 의외로 깔끔하네?]
순진무구한 얼굴로 자취방을 둘러보던 소은….
환우는 재빨리 고개를 저어 그녀의 모습을 떨쳐버린다. 이제 떠올릴 이유 없잖아….
조그만 자취방에서 연인이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나 싶던 둘은 어느새 뒤엉켜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먼저 키스를 해온 것은 역시나 은빈이었다. 적극적으로 환우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키스를 하는 은빈.
그런 그녀에게 흥분을 하던 환우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한 손을 은빈의 가슴으로 가져간다.
“아….”
흠칫 놀란 은빈의 몸이 살짝 떨렸지만 제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에 환우는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음….”
은빈의 가슴은 탱글탱글한 것이 소은의 가슴보다는 작았지만 탄력은 더 좋은 거 같았다. 한참을 그녀의 가슴을 탐하던 환우의 손은 이제 티셔츠 안으로 파고든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배를 지나 탄력 있는 은빈의 가슴에 도달하는 환우의 손…. 정신없이 브래지어 안으로 파고들어가 그녀의 젖꼭지를 만진다.
“하아, 하아. 환우야….”
환우에게서 입술을 뗀 은빈이 풀린 눈으로 입을 연다.
“오늘 해도 괜찮아….”
은빈의 결정적인 한마디에 환우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만다. 그녀에게서 떨어져 빠른 속도로 옷을 벗는 환우. 그리고 그런 환우를 바라보는 은빈도 정신없이 옷을 벗어 재낀다. 환우가 미쳐 옷을 벗기도 전에 팬티까지 다 벗어버린 은빈은 스스로 다리를 벌려 누우며 남자친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옷을 다 벗은 환우는 은빈의 다리 사이에 앉으며 자지를 넣을 준비를 했다. 은빈의 보지는 환우가 손도 대지도 않았는데 축축이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넣을게….”
“응…. 넣어줘 환우야….”
환우는 은빈의 위에서 자지를 손으로 잡고 그녀의 보지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왜였을까….
갑작스레 소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자취방안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나날들이….
놀란 환우는 고개를 저어 소은의 모습을 떨쳐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소은과의 기억들이 더욱더 떠오른다.
“뭐해? 안 넣고…?”
갑자기 멍하니 있는 환우가 이상했는지 그렇게 묻던 은빈은 고개를 들어 환우의 자지를 바라보았다.
아까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힘없이 줄어들어 있는 환우의 자지….
“어, 어?”
은빈은 당황해 환우의 밑에서 빠져나오며 물었다.
“왜, 왜 그래?”
“어…? 응….”
환우는 은빈의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잠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은빈이 그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럼 말이야…. 내가 그… 입으로 해줄까?”
아무 말이 없는 환우….
“나 해본적도 없어서 잘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한 번 해줄게….”
은빈은 우두커니 앉아 있는 환우에게 다가가 쪼그라든 자지를 입에 머금는다.
“읏….”
무릎을 꿇은 채 섹시한 자세로 허리를 숙여 어색하게 살짝살짝 환우의 자지를 빠는 은빈…. 그렇게 한참을 빨았지만 환우의 자지는 커질 생각을 안 한다.
그러자 점차 은빈의 솜씨가 달리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자지 끝에만 살짝 살짝 빠는 듯했던 그녀는 입 안 가득 집어넣었다 빼거나 혀와 손을 사용해 열심히 환우의 자지를 빨아댔다.
그러나 여전히 커질 생각을 하지 않는 환우의 자지….
한참을 빨던 은빈이 갑자기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환우도 그런 그녀에게 할 말이 없어 멋쩍게 옷을 챙겨 입는다.
“나 이만 갈게.”
옷을 다 입은 은빈은 환우가 잡을 새도 없이 후다닥 나가버린다.
환우는 은빈이 나가고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녀를 잡고 싶은 마음도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환우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소은에 대한 추억들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던 천사처럼 착하던 그녀….
남자친구 생일이라고 밤새 기다려 선물을 건네주고 교복을 입은 채 수줍은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흑…!”
환우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온다. 소은과의 추억들을 생각하니 자신이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듣는 사람도 없는데 눈물범벅이 되어 미친 듯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너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난 정말 나쁜 놈이야….”
이젠 펑펑 울며 괴로워하는 환우….
너같이 착한 애한테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러나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
그 후로 며칠이 지났지만 은빈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환우도 연락을 하기 뭐해서 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마냥 지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결말은 지어야 하니까….
그래도 환우가 연락을 하니 은빈은 순순히 받아준다. 그리고 저녁에 학교 앞 술집에서 보기로 했다.
둘은 별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환우는 혼자 술만 홀짝 거리고 있었고, 은빈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술집에 흐르는 음악과 주변 사람들의 시끄러운 대화소리마저 없었더라면 지금 둘 사이는 독서실만큼이나 조용한 상태였다.
“나 화장실 다녀올게.”
술집에 온 이후 은빈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응….”
은빈이 화장실에 가고 환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분위기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역시 헤어지는 길밖에 없으려나….
그때 테이블에 놓인 은빈의 핸드폰 액정이 켜진다. 메시지가 온 것이다. 메시지 자체가 바로 화면에 뜬지라 환우는 별 생각 없이 액정을 바라보았다.
[ㅋㅋㅋㅋㅋ야 불능새끼 그만 만나고 빨리 와. 오늘 헤어지자고 말할 거라며 빨리 와서 밤새도록 박아보자.]
환우의 얼굴이 놀람과 부끄러움으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게 무슨 내용이란 말인가….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들을 확인한다.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명목상이라도 여자친구의 핸드폰에서 저런 문자를 보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은빈의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정말 가관이다. 경민오빠란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사람과 주고받은 온갖 추잡한 메시지들…. 그 메시지들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자신과 하려다 실패한 날 이 남자와 만나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은빈이 남자에게 보낸 메시지는 추잡함의 종지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짜증나 오빠 나 새로 생긴 남친 발기부전이얔ㅋㅋㅋㅋ 아 진짜 짜증나 얼굴 잘생긴 새끼들은 얼굴값해서 짜증나서 그냥 대충 데리고 다닐만한 애 만나려고 한 건데 아 난 걸려도 어떻게 이런 새끼가 걸리지? 내가 순진한척 살짝 빨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그새끼 거 존나 열심히 빨았거든? 근데도 안 서는데 어떻게 해야됰ㅋㅋㅋ]
은빈의 메시지를 다 확인한 환우는 조용히 그녀의 핸드폰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는다. 저렇게 예쁘게 생긴 여자가 남자와 이런 메시지들을 주고받다니….
잠시 후 은빈이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앉자 조용히 일어나는 환우.
“우리 그만 헤어지자.”
“…뭐?”
화장실에서 돌아온 은빈은 갑작스런 말에 황당하다는 듯 환우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환우는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서 술집을 나왔다.
*
무작정 밤거리를 걷는 환우.
기분이 울적하다고 해야 할까….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슬프지도 않다. 그렇다고 힘든 것도 아니다. 그냥 울적하다.
소은을 보고 싶었다.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소은이라고…. 은빈 대신 소은이라는 야비한 마음이 아니었다. 은빈과 관계를 가질 뻔한 날 떠올랐던 소은에 대한 기억들…. 확실했다. 자신은 소은을 사랑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행동에 옮기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소은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그녀가 연락을 받지 않는 일은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착한 성격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연락을 받아줄 것이다.
몇 번의 통화음이 지난 후 소은의 음성이 들려왔다. 특유의 높은 음색으로 밝게 전화를 받아주는 그녀.
[여보세요?]
“응. 소은아…. 아, 안녕.”
[응. 환우야. 웬일이야?]
“…응. 뭐해?”
[그냥 컴퓨터하고 있었어.]
“그래…. 저기 혹시 술 한 잔 하지 않을래?”
잠시 소은의 말이 없다가 이어진다.
[지금…?]
“응….”
다시 말이 없는 소은. 하지만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래. 오랜만에 너 보는 건데 나가야지.]
역시 천사 같은 마음씨의 소은이었다.
*
소은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 근처까지 나와 주었다. 이렇게 되면 소은은 집에 택시를 타고 가지 않는 이상 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선 환우도 소은도 특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근처 술집에 들어가 마주 앉는 두 사람.
어색하다….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어색했다. 환우는 말없이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고, 소은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긴장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결국 소은이 밝은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연다.
“…벌써 어디서 한잔하고 왔구나?”
“어? 응….”
환우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다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말없이 술만 따라 마시는 두 사람….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소은이었다.
“…은빈이랑은 잘 사귀고 있어?”
“…방금 헤어지고 왔어….”
놀라는 소은.
“갑자기 왜?”
“그냥…. 그럴 일이 있었어.”
대답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환우인지라 소은은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응. 그렇구나….”
“미안해.”
갑자기 환우가 뜬금없이 사과를 한다.
“응?”
“너한테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환우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그렇게 계속해서 소은에게 사과를 했다.
“에이. 아냐…. 예전 일인데….”
소은은 웃는 낯으로 환우의 사과를 받아준다. 분명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웃음이지만 환우 앞에서 슬픈 기색은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는 그녀였다.
소주 한 병을 비웠을 무렵 환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돌아갈 수 있을까?”
“뭐?”
무언가 분명히 들었지만 자신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에 다시 한 번 반문하는 소은. 환우는 그런 그녀를 위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명확한 내용을 담아서….
“나 너한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소은도 이번엔 무슨 말인지 확실히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놀람으로 커다래진 소은의 두 눈에 촉촉이 물기를 만들었다.
놀란 것도 잠시, 이내 눈물이 가득 고인 소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짧은 시간 이었지만 난 항상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는걸. 아니…. 혹여 그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해도 난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소은의 말에 환우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오늘 소은과 만나고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본 것이다. 커다란 두 눈에 눈물 한 가득 고인 채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 천사의 모습이 따로 있을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바로 천사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환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
놀란 소은은 환우의 옆자리로 와 다독였다.
“왜 울어 바보야….”
소은이 다독이자 환우의 감정이 더욱 북받쳐 오른다. 이내 소은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펑펑 울어버리는 환우….
“바보….”
소은도 자신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쉼 없이 닦아낸다. 환우가 돌아와 준 기쁨의 미소만은 잃지 않으며….
그날 소은은 환우의 집에서 자고 갔다. 예전처럼 밤새도록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뜨겁게 뜨겁게….
덕분에 다음 날 집에 들어간 소은은 부모님에게 엄청나게 혼났다며 환우에게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려야 했다.
그리고 환우는 소은이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은빈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 잠깐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환우는 소은과 다시 사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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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음편부터 시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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