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이 해 겨울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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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여름, 이 해 겨울 >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그런 일을 겪게 마련이다. 방금 막 닫힌 지하철 문 앞에서 아쉬워 할 때, 숨을 헐떡이며 내 뒤에 달려온 사람이 고등학교 동창친구이거나, 약속도 없는 주말, 문득 찾아간 극장 매표소에서 다른 사람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옛애인을 만난다거나, 언젠가 한 번 쯤은 겪어 봤을, 혹은 앞으로 한 번 쯤은 겪게 될 그런 우연. 창석이 그날 하필 그 편의점에 들어간 것도, 웬일인지 그날따라 그 우유에 손이 간 것도, 어찌보면 그런 흔한 우연이었다. '풋-. 9년이 지나도 그대로네....' 피식 웃으며 창석이 막 우유를 집어 들었을 때, 그 우유만큼이나 하얀 손이 창석의 뒤를 이어 우유를 집어들었고, 묘한 느낌에 창석이 바라본 그 손의 주인은, "저....혹시, 다혜 누나?" 그녀였다. "네?.....아! 창석이!" 9년 전 처럼 해맑게 웃는 그녀의 미소는, 그 흔한 우연을 기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때맞춰 눈이라도 내려준다면 너무 영화같을까 어색했는지, 유난히 화창한 그 한겨울의 오후에, 두사람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추억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 안간다고요~." 고등학교2학년 남자아이의 투정은 무서웠다. "이 엄마가 볼때는 말이다. 네가 성적이 떨어지는게 다 믿음이 없어서야. 응? 네가 지은 죄가 좀 많니?" 물론, 어처구니가 어이와 야반도주를 한 듯한 어머니의 설득은 그런 투정 정도는 가볍게 무시했다. '성당'이라는 단어를 알아듣고, '싫어'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을때부터 끊임 없이 이어져왔던 이 싸움을, "엄마, 나는 나를 믿는다고요. 네?" 창석은 한마디로 끝내버리고는 자기 방 문을 열었다.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셔..... 한 번만, 엄마랑 같이 가주면 안될까?" 10년이 넘게 성당에 같이 가자던 어머니는, 항상 장난 반, 진심 반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온전히 진심이라는 걸, 창석은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창석이라도, 어머니의 그 말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아빠도 가신대요?" 무심한 듯 말하며 돌아선 창석을, 어머니가 꼭- 안아 주었다.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냥, 엄마만 따라하면 돼." 그 말만 믿고 왔는데, 미사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많고, 손동작도 이러저러하고, 그나마 미사책을 뒤적이는 완전히 굳어버린 아버지의 우스운 표정이, 창석에게 자그마한 위안이 되고 있었다. '풋-.' 아버지를 바라보며 피식- 웃는 창석에게 어머니가 살짝 눈치를 주었다. '흠흠. 그래, 할머니께서 빨리 나으시라고 진심으로 기도를 드려야지.' 마음을 고쳐먹은 창석은 한눈팔지 않고 차분하게 미사에 집중했다. 이제는 제법 미사책을 보며 눈치껏 따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운명같은 한마디가 들려왔다.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앞뒤, 양옆으로 돌아가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남들처럼 그렇게 인사를 나누며 창석이 뒤를 돌았을 때, 그곳에 그녀가 서있었다. "평화를 빕니다." 머리에 쓴 하얀 미사보 보다 더욱 새하얀 그녀의 얼굴과, 체리에이드 처럼 붉은 그 입술이 조각해낸 미소에, 창석의 머리는 한없이 평화로워져 갔다. "펴, 평화를 빕니다." 창석은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성당이고,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며, 거기서 지금 자기는 천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는 걸.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럴거였지만, 창석은 확신 할 수 있었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자신의 증거로 그녀를 내놓을 것이라는 걸.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게 느껴졌다. '두근-, 두근-' 그 심장이 점점 뒤로, 뒤로 그녀에게 뛰어가고 있었다. '누구지? 우리 동네 저런 여자애가 있었나?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최근에 이사를 온걸까?'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으로 그녀를 향해 뛰어가면서, 창석은 쉴새없이 생각들을 토해냈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예의가 아니란 것도 알았지만, 신부님의 뒤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대신 그녀의 얼굴이 비쳐보였다. 단 몇 초의 시간과, 단 한마디의 인사로, 열여덟살 창석의 인생 제일 꼭대기에 그녀가 올라섰다. '아놔-.' 불꺼진 방안 침대 위에서 창석은, 여전히 내려오지 않고 있는 꼭대기의 그녀와 한시간째 씨름중이었다. '이름은 다혜였어. 분명히 다혜.....'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빠져나올 때, 친구인 듯한 여자애가 그녀를 부르는 이름을, 창석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 하얀 천사의 이름과, 그 눈부셨던 얼굴 빼고는, 창석이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외우고 외워도 여전히 가끔 헛갈리는 주기율표와 달리, 단 한 번에 기억을 파고들어 온 그녀의 미소는 놀라울 정도로 또렷했다. '한 번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창석은 지금 사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주일. 창석이, 그녀의 이름이 류다혜이며, 한 달 전쯤 이 동네로 이사온 고등학교 3학년 이라는 걸 알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꿈속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에 우울했던, 그녀의 그 얼굴을 다시 보는데 걸린 시간도 일주일이 었다. '아~. 자리가 안좋아 자리가.....'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흘깃거리는 창석은 애가 탔다. 보지 못할 때는 보기만 하면 살 것 같았는데, 막상 보고나니 더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는게 안타깝기만 했다. '저번에도 혼자인 것 같던데, 가족끼리 오는 건 아닌가 보구나.' 할머니의 쾌유를 비는 아들의 대견스러움에 마냥 뿌듯한 어머니의 마음과 달리, 창석이 지금 드리는 건 미사가 아니라 그녀였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던 그 분이라면, 이런 자신의 버릇없음을 귀엽게 봐주시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창석이었다. 미친척 하고 한 번 말을 걸어볼까? 아니야, 동갑도 아니고 더군다나 고3인데, 분명 냅다 차이겠지? 뭐, 어때. 나 정도면 준수하잖아? 바보야, 사람은 자기 얼굴이 다섯 배는 잘생겨 보인다는 거 몰라? 가만, 그럼 저 누나는 거울을 보면 대체 얼마나..... 혼자 용기를 내보았다가, 혼자 망설이기도 하고, 혼자 고민하다가, 혼자 궁금해 하기도 하며, 그렇게 미사시간이 금방 지나버렸다. 그녀라는 영화를 감상하기에, 그 한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다시 일주일. 창석은 어렵게 알아낸 그녀의 집앞에서 매일 아침마다 서성거렸다. 이사를 왔음에도, 고3에게 전학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아는 그녀는, 차로만 꼬박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매일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렇게 남들보다 일찍 집을 나서는 그녀를, 그보다 더 일찍 부터 나와 기다리는 창석이었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지만, 혹시 들킬까 조심조심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만 했지만, 그녀로 시작되는 하루는 창석의 인생에 그 어떤 날들 보다도 아름답기만 했다. 그렇게 다시 일요일이 돌아왔고, 창석은 운좋게 그녀의 바로 뒤에 앉을 수 있었다. '하-. 어떻게 뒷통수도 이렇게 예쁘냐....' 하얀 미사보에 가려진 새까만 머리카락에서 피어오르는 그녀의 아찔한 향기는, 아직 풋내 나는 창석의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평화를 빕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그녀와의 두번째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창석은 진심으로 신께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창석의 기도가 쉽사리 이뤄질리가 없었고, 그렇게 미사시간은 끝이 났다. 그녀라는 꽃을 음미하기에, 그 한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또 다시 일주일, 매일 보는 그 모습이지만, 매일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가방을 메고, 똑같은 신발을 신은 그 모습이지만, 창석에게 그녀는 매순간이 새롭기만 했다. 급하게 나왔는지, 어깨를 조금 넘는 생머리가 촉촉히 젖은 다혜를 보며, 창석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꽉- 끌어 안아주고 싶었다. '하-. 내가 이제 미쳐가는구나...' 미치기는 애진작에 미쳐있었다. 매일 아침 '5분만 더' 를 입에 달고 살던 그가, 새벽같이 일어나 목욕재개를 할 때부터, 아니 그녀의 그 빨간 입술이 "평화를 빕니다." 라고 그의 머리를 아주 평화롭게 지워줬을 때 부터, 창석은 그녀에게 미쳐있었다. 더이상 미쳐버리기 전에 용기를 내야겠다고 창석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 잠깐 친구를 만난다며 미사가 끝나자 마자 부모님과 헤어진 창석은, 곧바로 그녀를 찾아나섰다. 그녀의 집이 어딘지도 알고 있었고, 당연히 그녀가 집으로 가려면 어떤 길을 지나야 하는 지도 알고 있었다. '창석아. 아빠가 그랬잖아. 어차피 인생 한방이라고. 그치? 힘내자 한창석.' "후우-." 쇼윈도우에 자신을 비춰보며 길게 숨을 고른 창석의 눈에, 저 멀리서 걸어오는 그녀가 보였다. '뚜벅-, 뚜벅-' 그녀의 발걸음 소리에 맞춰, '두근-, 두근-' 창석의 심장이 뛰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선명해지고, '하나....둘....' 창석은 속으로 숫자를 셌다. 마침내 그녀가 바로 눈앞까지 왔을 때, '셋!' 창석은 3주를 닫아두었던 그 입을 열었다. "좋아해요." "네?" 다혜는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자기 집앞에서 그렇게 서성이는 남자애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한 다혜가 아니었다. 미사시간에 자기를 힐끗거리던, '평화를 빕니다.' 그 한마디를 그렇게 버벅거리는 남자애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한 다혜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몇 주를 알짱거리다가, 불쑥 꺼낸 첫마디가, '좋아해요.' 라니, 다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그의 한마디는, 하지만, 아무런 조미료도 첨가 되지 않은 마음 그대로의 담백함을 지니고 있었다. "안될까요? 제가 좋아하면 안될까요?" 속으로 얼마나 연습했을지 알 수 있을만큼, 한자, 한자가 뚜렷하고 선명했다. '정말이구나....' 다혜는 지금 이 아이가 진심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늘 따라다니는 고3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아니면, 미처 머리를 다 말리지 못하고 집을 나오던 자신의 모습에 수줍게 양볼을 붉히던 그 얼굴이 떠올라서였을 수도 있다. 아니, 그냥 단지 순수하고 착해 보이는 한 사람의 마음에, 굳이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을 수도 있다. "괜찮..겠죠? 괜찮지 않을까요? 좋아해도......" 다혜의 그 대답처럼 눈부신 햇살이, 두사람을 비춰주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죠?" 정확히 9년하고도 12일 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과연 그녀도 그걸 기억할까 궁금한 창석이었다. "글쎄....한 9년? 그래, 9년이나 됐네 벌써...." 의외로 쉽게 다혜는 9년이란 세월을 맞췄다. 아마, 고3이라는 특별한 시간 때문이었겠지만, 창석은 다혜의 그 대답이 마치, '난 9년 동안 한 번도 널 잊은적이 없어.' 처럼 들렸다. 9년만에 다시 미치기 시작한 창석이었다. "잘 지냈...." "잘 지내셨...." "....지?...." "....어요?...." 동시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9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서로에게 닿기에는, 아직 두 사람이 마주 본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 우유 여전히 좋아하시나 봐요?" 그 잠깐의 어색한 침묵을 깨며, 창석이 우유를 들어보였다. 그냥 하얀 우유곽에 상표만 덩그러니 찍힌 그 우유를, 순수해 보인다며 다혜는 참 좋아했었다. 다혜의 빨간 입술에 촉촉히 묻어있던 그 우유 냄새가, 아련하게 창석의 기억속에서 피어올랐다. "어? 누나 입술에 우유 묻었어요."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창석이, 다혜를 보자마자 그녀의 입술을 가리켰다. 다혜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스으윽-' 입술을 한 번 손등으로 훔쳤다. "누나, 누나. 이번 주말에 뭐해요?" "뭐하긴, 공부하지." 다혜에게 창석이 첫마디를 건네는 데 3주가 걸렸듯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가까워지는 데도 3주 밖에 걸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주는 창석의 정성과, 쉬는 시간마다 문자를 보내주는 그 마음은, 금세 다혜를 무장해제 시켜놓았다. "에이~. 오늘부터 방학도 시작인데, 우리 영화나 한 편 같이 안볼래요?" "영화? 내가 너랑? 왜? 무슨 이유로? 어떤 근거에서?" "왜긴요~? 좋아하는 사이니까 그렇죠~. 막 좋아하는 사이는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고 그러는거 아니에요?" 버스 정류장을 코앞에 두고 다혜는 걸음을 멈췄다. "너, 웃긴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좋아하는 사이가 절대, 결코, 네버, 아니야. 그냥 너가 날 좋아하는 거지. 오케이?" "에이~. 사실 누나도 나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매일 이렇게 아침마다 데이트도 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창석은 특유의 그 순수한 듯 능글거리는 기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아-. 됐거든~. 그리고 너랑 나랑 한 살차이 밖에 안나요. 근데 왜 자꾸 존대세요? 누가 보면 나를 아주 아줌마 로 보겠다." "아니, 누가 교복입은 여고생을 아줌마로 봐요? 물론, 교복 벗으면 또 혹시...." 다혜의 살기어린 눈빛에 창석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흠흠. 그건 그렇고, 제가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개념은 없어도 예의는 있는 놈이거든요. 누나랑 나랑 생일 차이가 정확히 272일 차이 나니까, 밥공기로 따지면, 816 그릇, 아, 아니다. 누나는 하루 다섯끼는 먹을 몸매니까, 1360 그릇이나 되네~. 이야~. 밥으로 산을 만들겠네요. 산을..." "호호호~. 네가 아주 오늘 검색어 1위를 장식하고 싶구나? 그치? 우리 같이 시원하게 매스컴이나 한 번 타볼까? 호호호~." 뒷맛이 사나운 그 웃음소리에 창석은 주춤 물러섰다. "어? 버스온다. 그럼 잘가요, 누나. 문자할게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펄쩍펄쩍 뛰며 손을 흔드는 창석이 다혜는 싫지 않았다. "너, 아직 나를 기억하는구나?" 9년이란 시간은, 설혹 누군가의 얼굴이 기억난다하더라도, 그 사람의 버릇까지 기억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다. 우유를 들어보이는 창석의 눈빛을 바라보며 다혜는, 어쩌면 그는 단 한순간도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요? 아니요. 기억은 과거에게 하는거죠. 누난 언제나 제게 현재였는데요?" 장난처럼 진담인 듯 대답하는 창석의 미소는 9년전 그대로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그 어떤 우울한 일도 잠시 잊을 수 있게 해주던 그 미소가, 다혜를 9년전의 여고생으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옥상, 옥상. 급해요. 나 죽어요, 누나.' 여름방학동안 창석은, 다혜가 다니는 독서실을 쫓아다녔다. "야, 넌 공부도 안할거면 그냥 집에나....." 빙긋 웃으며 창석이 건네주는 캔커피에 다혜는 말을 멈췄다. "으음-. 뭐, 고맙다." '딸깍-' 캔커피 뚜껑 따지는 소리가, 어둑어둑한 여름 밤하늘에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누나, 아직 전공 못 정했어요?" 옥상 난간에 기대며 창석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글쎄, 뭐. 그냥 점수 맞춰서 가야지. 딱히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리고 왜, 또, 나 정도 생긴 애들은....." "지인~짜~.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데. 막 코피 쏟고, 앰뷸란스 실려가고, 죽네 사네 막....." 천천히 자기에게 다가오는 다혜의 표정을 살피는 창석은 재빨리 독서실 옥상의 높이를 계산했다. "아니, 누나...저...그, 그게....."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다혜에게 창석은 당황했다. "넌 무슨 학과 갈건데? 전공 정했어?" 그 큰눈을 더욱 크게 뜨며 묻는 다혜의 숨결이 창석의 턱에 닿았다. "저, 저야...당연히 류다혜 전공.....ㅤ훕-." 어머니와의 뽀뽀는 접어두자. 초등학교 입학 전, 뭣 모르던 시절, 유치원 짝꿍과의 뽀뽀도 그냥 넘어가자. 그건 분명 첫키스였다. 입술과 입술이 닿고,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종은 울리지 않았지만, 심장이 절절히 울리는, 그런 첫키스였다. 여름방학의 끝을 얼마 남기지 않은 그날 밤, 독서실 옥상에서 그들은 그렇게 사랑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디가서 저녁이나 같이 할까요?" 편의점을 나오면서 창석은 조심스럽게 다혜에게 물었다. 할 말도, 물어볼 말도 많았고, 이대로 그녀와 헤어지기엔 너무나 아쉬운 창석이었다. 이미 9년전에 그녀를, 한마디 말도 못해보고 떠나보냈던 창석은, 다시 한 번 가슴 아픈 9년을, 아니 어쩌면 가슴 아픈 평생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럼, 그럴까?" 잠시 망설이던 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이제 그만 지워버리자던 상처를, 다시 떠올리게 될까 두려웠지만, 그녀에게도 창석과의 이 순간이 마지막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가 버티기의 연속이었던 고3의 그 뜨거운 여름날 속에서, 청량한 바람처럼 불어왔던 창석의 농담섞인 말투와 미소는 여전히 그녀의 기억속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어쩌면 이 추운 겨울날엔, 그 청량했던 바람이 따뜻한 온기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다혜였다. "내 말 이해하지?" 방학의 마지막날,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고,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다혜와의 데이트를 하고 난 창석은, 문득 이 한마디가 생각났다.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물론 창석은 다혜가 하는 말을 잘 알아 듣고, 잘 이해 하고 있었다. 내가 너의 인생에 큰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사실 내 공부에 너가 조금은 방해가 되고 있다는 말도, 약간은 억울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요. 대신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해요." 그럴거면 왜 내 입술의 순결을 빼았았냐며 따지고도 싶었지만, 그럴거면 왜 날보고 그렇게 웃어줬냐며 울며 떼를 쓰고도 싶었지만, 결국 창석은 덤덤하게 웃으며 현실을 받아 들였다. 수능날 밤, 성당 앞에서 만나자는 그 약속 하나에 의지한 채,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는 창석이었다. "하하하하-. 맞아요. 맞아. 기억나요. 하하하-." 추억에 취하는지, 그녀에게 취하는지, 창석은 왠지 몽롱해져갔다. 9년전 체리에이드 같던 다혜의 입술이, 지금은 농익은 와인 빛깔처럼 느껴지는 건, 단지 자기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하아-. 넌 정말 하나도 안변했다." 여전히 개구쟁이 같은 창석의 그 모습에 다혜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요~. 저야 아직 마음만은 순수한 고등학생인데요." "아이구~. 너나 나나 내일 모레 서른이거든요~?" "어? 원래 ㅅ받침 들어간 20대는 그런 걱정 안하는 거예요.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일곳, 스물여덧, 스물아홋..." "풋-" 9년전 여름에도, 지금 이 겨울에도, 여전히 창석은 다혜를 웃게 만들었다. 어떻게 지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9년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그들의 시계는 빨리도 돌아갔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이야기는 하나 밖에 없었다. "그날....기다렸었는데....." 오늘 그녀가 본 표정 중에서 가장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창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끝끝내 버틸 수 있었던 그 유일한 이유였던 그날의 약속을, 창석은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 하루의 기다림이 9년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날이구나....' 이제 겨우 딱지가 굳은 그 상처를, 다혜는 조금씩, 조금씩 뜯어내고 있었다. 미처 새살이 돋지 못한 그 상처는, 뜯어지는 딱지 사이로 새빨간 피를 흘려대고 있었다. 마치 어젯일처럼 선명하게 붉게 물드는 그날의 기억이 다혜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흐음~." 수능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거울 앞에 선 다혜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아직 채점도 해보지 않아서 정확한 점수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수많은 시험과 모의고사를 치뤘던 대한민국 고3인 그녀가 느끼기에, 그녀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치뤘다. 이정도면 부끄럽지 않게 창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에 대한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렇게 매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약간이나마 줄 것 같았다. '훗-. 조금만 더 기다려. 내가 지금 가니까....' 집을 나서는 다혜의 발걸음은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아랑곳없이 가볍기만 했다. '아~. 그냥 집 앞에서 기다릴 걸 그랬나?' 꽃 한 다발을 손에 쥔 창석은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초조하게 다혜를 기다렸다. 두달이 넘게 기다려온 그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의 1초가 더 길게 느껴지는 창석이었다. '혹시....시험을 망쳤을까?' 분명 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다혜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자, 문득 창석은 불안해졌다. 자기와의 약속을 잊어먹을 다혜가 아니었다. '안되겠다.' 창석은 참고 참았던 휴대폰에 번호를 눌러갔다. 받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걸어봤다. 역시 받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겨우 번호를 눌렀을 때는,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왜?' 이건 알면서도 피하는 거였다. 처음부터 꺼져있던 것도 아니고, 세번째에 꺼져있었다는 건, 두번의 통화를 통해 자기라는 걸 확인하고 일부러 껐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어째서?' 아무리 혼자 생각해봤자 답이 나올리 없는,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창석은 하염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래도 혹시 그녀가 나타날까봐, 만에 하나 그녀가 왔을때 자기가 없으면 안될까봐, 십년 넘게 그자리를 지키고 있던 성모상처럼, 그렇게 굳은 자세로 창석은, 멍하니 차디찬 바람을 맞고 서있었다. "왜, 왜이러세요?" 다혜는 자기를 둘러싼 세 명의 남자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이러세요는 무슨....딱 보니, 나랑 동갑 같은데...너 오늘 수능봤지? 그치? 씨발, 내가 이래서 인문계 것들을 졸라 싫어해요....." "뷰웅신~. 니가 인문계 것들을 싫어하냐? 고삐리는 다 싫어하지. 크크크크크." "야, 긴말 할 거 없고, 오늘 우리가 기분이 좀 좆같거든? 무슨 수능치는게 벼슬이라고 말이야....니네들 수능칠때 우린 씨발 조또 딸딸이 쳤거든~." "크크크크, 저새끼 쪽팔리게 딸딸이가 뭐냐 딸딸이가....크크크크." "이, 이러지 마세요..아악~." 조금이나마 빨리 가겠다고 선택한 골목길이, 영영 가지 못할 길이 되어버렸다. '철거' 라는 붉은 글씨가 써진 건물 안으로 질질 끌려간 다혜는, 살거죽을 드러내고 달겨드는 늑대들에게, 갈갈이 찢겼다. "헉-. 헉-. 씨발 이년 처음인가봐. 헉-. 헉-." 반쯤 정신을 잃은 다혜의 위에 올라탄 녀석은, 자신의 자지에 무참히 뚫리며 벌름거리는 고통을 토해내는 그녀의 보지에서 조금씩 새어나오는 피를 느낄 수 있었다. "아~ 어쩐지 내가 가위바위보 꼭 이기고 싶더라니...." 혹시 누가 오나 망을 보던 녀석이 못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야, 씨발, 좀 빨리 끝내. 아놔..." '푸욱-' '푸욱-' '푸욱-'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연신 다혜의 보지에다 좆질을 해대는 친구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던 녀석이 못참겠다는 듯, 바지춤을 내렸다. "우후-웁-" 그는 자신의 그 더럽고 구역질나는 자지를, 보지가 찢어지고 아랫배가 타오를 듯한 고통에 헐떡이는 다혜의 애처로운 입술 속으로 쑤셔넣었다. "씨발년, 이빨 세우면 얼굴에 기스 제대로 난다. 헉-. 헉-." '쭈욱-' '쭈욱-' '쭈욱-' 다혜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쥔 채, 그는 강제로 그녀의 입속에다 좆질을 해댔다. "흐웁-. 으후읍-" 몸서리쳐지는 그 흉물에 입이 막힌 다혜는, 강한 콧김을 내뿜었다. "크크크크. 씨발년, 좋냐? 좋아?" 다혜의 입을 보지 다루듯이 하던 녀석이 징그럽게 웃었다. '푸욱-' '푸욱-' '푸우욱-' 마지막까지 처녀의 보짓살을 맛보겠다며 버티던 녀석은, "헉-. 헉-. 헉-. 허어억-." '푸우우욱-' 이미 그 순수함을 잃어버린 다혜의 보지 깊숙이 자신의 자지를 쑤셔박으며 절정을 뱉어냈다. "우흐우웁-" '안돼....안돼....제발.....' 속으로 울부짖는 다혜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의 끈적한 정액은 거침없이 그녀의 자궁속을 파고 들어갔다. '흑흑흑-. 창석아.....' "후우-. 아~. 졸라 뿌듯하네. 크크크크. 씨발 너희 아직 아다 못먹어 봤지. 크크크크." 몸을 부르르 떨어가며 다혜의 몸속에 그 마지막 한방울의 더러움까지 뿌려낸 녀석은, 그제서야 다혜의 몸에서 일어났다. "아우~. 씨발, 야, 야. 너 빨리 망봐. 이제 우리 차례야." 다혜의 입속에서 한껏 자지를 놀려대던 녀석이 바로 그녀의 보지속에 자지를 찔러넣었다. '푸우우욱-'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다혜의 여린 보지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되살아나는 고통에 빨갛게 부어올랐다. "하으악-" 신음을 내뱉으며 다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푸욱' '푸욱-' '푸욱-' 다혜의 보지를 처참하게 짓밟고 들어오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그것은, 그저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오~. 졸라 쪼여. 꽉꽉 물어 아주. 걸레같은 년. 헉-. 헉-." 아직 채 피지도 못한 꽃을 꺽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의 용서받지 못할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없어 보였다. "오예~. 이제 그럼 나도....." 다혜의 처녀를 빼앗은 녀석이 망을 보러 오자, 그제껏 망을 보던 녀석은 바로 다혜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입속에 다짜고짜 자지를 박아넣었다. "흐우우웁-" '쭈욱-' '쭈우욱-' '쭈욱-' 다혜를 인간으로 생각지도 않는 듯이, 머리를 흔들어대며 좆질을 해대는 녀석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크크크크. 씨발 이년 가만 보니 졸라 예쁘다. 크크크크. 그래, 먹어도 이런년을 먹어야지. 크크크크크." '푸욱-' '푸우욱-' '푸우욱-' 다혜의 가랑이 사이에서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녀석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 갔다. '위이~잉~' 바로 그때 다혜의 휴대폰이 울렸다. '차, 창석아....' 다혜는 직감적으로 그게 창석일 거라 생각했다. '제발...도와줘....제발....' '우ㅤㅎㅜㅂ-. 후으웁-" 끊임없이 구멍을 파고들어오는 늑대들의 자지를 느끼면서, 다혜는 애타게 창석을 불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애타는 마음은 안타깝게도 창석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위이~잉~' "헉-. 헉-. 헉-. 씨발, 졸라 신경쓰이네. 야, 저거 꺼. 씨발, 내가 쌀 수가 없다. 졸라. 헉-. 헉-." '푹-' '푹-' '푹-' '푹-' 휴대폰과 함께, 다혜의 정신도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기다림이 길어져서였는지, 면도날처럼 에여오는 바람 때문이었는지, 창석은 차가워졌다. '내가, 누나한테 뭘 잘못했나요?' 그저 자기는 바보처럼 기다린 것 밖에 없는데,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 안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고 싶다 안하고, 그냥 시키는 대로, 꾸역 꾸역 오늘까지 기다린 것 밖에 없는데, 그런 그에게 돌아온 건 차가운 바람 뿐이었다. 왜 이토록 슬픈지, 창석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내가 뭘 잘못했지?' 늑대들이 떠나고, 처참하게 유린당한 몸을 추스리는 다혜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세상에 못할 짓을 했었나요?' 그저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온 그녀였는데, 이제껏 살면서 남한테 손가락질 당할 일 한 번 안하고 살아온 그녀였는데, 그냥, 창석에게 빨리 가고 싶은 마음 하나로 그 길에 들어선 그녀였는데,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앞으로 어찌 견뎌낼지 알 수 없는 악몽만이, 그녀에게 남아버렸다. 왜 이토록 슬픈지, 다혜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날은....정말 미안했어." 딱지가 뜯긴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눌러가며, 다혜는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차마, 창석에게까지 자신의 그 고통을 지우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괜찮아요. 뭐. 이렇게라도 만났으면 된거죠." 괜히 말을 꺼냈나 싶은 창석은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해졌다. 창석은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고 싶은게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그날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얼마나 기다렸었는지, 투정이라도 한 번 부리고 싶은 것 뿐이었다. 아마, 그날의 진실을 알게된다면, 자기가 다혜에게 얼마나 못할 질문을 한건지 평생을 괴로워 할지도 모를 창석이었다. "혹시, 애인....있으세요?" 둘 사이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창석은 꾹꾹 눌러뒀던 질문 하나를 조심스레 던졌다. "아니." 그날 이후, 남자라면 겁부터 났던 다혜였다. 당연히 그녀는 외롭게 그 암흑의 시간을 보내왔었다. "너는?" "저야 당연히...없죠." 다혜 외에는 여자라고는 생각도 안해본 창석이었다. 당연히 그도 9년이라는 그 시간을 혼자서 지켜왔었다. "풋-. 우리 참 바보 같구나......" 다혜는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으로 창석을 바라 보았다. 너도 나만큼 외로웠겠구나. 너도 나처럼 힘들었겠구나. 우리는 참 바보같이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들이 다혜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다시는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다시는 사랑같은 건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9년만에 다시 본 창석에게서, 그녀는 분명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창석의 한결같은 그 말투는 약이 되고, 한결같은 그 미소는 반창고가 되어서, 다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를까봐, 억지로 참아왔던 9년이란 시간이, 어쩌면 참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드는 다혜였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좋아해요." 그 침묵의 강을 노저으며, 9년 전, 여름의 문턱에서 했던 그 말을, 지금 이 겨울의 가운데에서 창석이 다시 하고 있었다. "안될까요? 제가 좋아하면 안될까요?" 다혜에게 처음으로 고백하던 날, 그 때 처럼 창석은 한없이 순수한 눈빛이었다. 그 어떤 첨가물도 없는, 마음 그대로의 마음. "괜찮..겠지? 괜찮지 않을까? 좋아해도......" 거짓말처럼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같이 눈 맞아 보기는 처음이구나?" 다혜는 펑펑 내리는 눈송이를 손으로 잡아 보았다. "이렇게 추운날 만나는게 처음이죠. 우린 항상 뜨거웠다고나 할까요?"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창석은 다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학-" 갑작스런 창석의 행동에 다혜는 놀라 몸을 빼냈다. "미, 미안해요. 전 그냥 추우실까봐...." 그저 어깨에 팔을 올린 것 뿐인데, 예상치못한 다혜의 반응에 창석은 당황했다. "아, 아니야. 그냥 좀 놀라서......" 다혜도 창석 못지 않게 당황했다. 그럴려고 그런게 아닌데,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날의 악몽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창석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과 달리, 몸은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한 듯 보였다. "흠흠-. 저, 댁이 어디세요? 바래다 드릴게요." 창석은 어색한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괜찮아. 택시타고 가면 돼." "에이~. 집 안다고 아침마다 기다리거나 하지 않을테니까, 같이 가요. 차 금방 빼올게요." 창석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내가 잘하는 걸까? 아니,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다혜는 문득 자신에게 의심이 들었다. 그 모든 악몽을 이겨내고 평범하게 살아갈 자신이 아직 없는 그녀였다. '그래도, 창석이라면.....' 9년 전 그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었던 창석이라면, 지금의 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다혜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거짓말이었다. 창석은 매일 아침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 "아니, 오늘은 저....왜 누나 회사 앞에 거래처를 갈 일이 있어서요. 흠흠-." "좋아. 앞으로 아침에 기다린다고 뭐라고 안할테니까, 하나만 약속해." 안전벨트를 맨 다혜는 단단한 말투로 창석을 쳐다보았다. "네? 뭐를요?" "누나라고 하지 않고, 존댓말도 쓰지않기." "네? 그, 그건 두갠데요....." 다혜는 아무말없이 안전벨트를 풀렀다. "아, 알았어요. 아니 알았어. 알았어." 창석은 차에서 내리려는 다혜를 다급하게 말렸다. "아~. 아가씨 성격있네. 예전엔 안그랬는데, 아줌마 나이가 돼서 그런가?" 시동을 걸며 창석이 농을 걸었다. 창석의 그 모습에 피식- 웃는 다혜였다. 언제나 자기를 웃게 만드는 그가, 다혜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근데, 그럼 뭐라고 불러요...가 아니라 불러? 다혜씨? 다혜야?" "음...천사? 여신? 뭐 이런거 어때?" "우리 그만 만나자." "너 이씨~."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둔 그날, 두사람은 다시 한 번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억울해도 할 수 없고, 서러워도 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가 모든 연인들의 축복의 날이라는 것 정도는 쿨하게 인정해줘야 한다. 그리고 여기 그 축복의 날에 두사람이 있었다. "흠흠-. 이제 그만 들어가봐야지?" 나이를 잊고 방방뛰었던 콘서트가 끝나고, 차에 올라탄 창석은 괜한 헛기침을 해보였다. "그러게....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으음-." 뭐가 어색한지, 다혜도 괜히 차창밖을 둘러봤다. 시동만 켜놓고 아직 악셀을 밟지 못하는 창석과,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창석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다혜 사이에 묘한 기운이 맴돌았다. "저...." "저...." 잠깐의 침묵 뒤에,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에게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늦어도 될 것 같은데....." 떨리는 다혜의 목소리에, 창석이 드디어 악셀을 밟았다. "너, 솔직히 말해. 여기 미리 예약했지?" 오늘같은 날, 이런 호텔방을 예약없이 올 수 없을거라는 것 정도는 다혜도 알고 있었다. "어? 아니, 뭐....난 그냥....ㅤ훕-." 다혜의 입술이 창석의 변명을 막아섰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악몽을 기억해 내려 하는 몸을 달래며 다혜는 창석의 입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뭐야? 이거 또 내가 당하는....' '츄르릅-' '츄르릅-' 입속으로 밀려들어온 다혜의 혀를 창석이 강하게 휘감았다. "후웁-"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창석의 입술이 숨겨놓은 거칠음을 느끼며, '털썩-' 다혜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하아-. 나 사실은....후우웁-" 다혜의 말이 아닌 몸이 듣고 싶다는 듯, 창석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덥쳤다. '츄루릅-' '츄룹-' 9년전의 체리에이드가 아닌, 지금의 아찔한 와인을 빨아마시며, 창석은 다혜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하아-. 그래, 이제 괜찮아...이제 괜찮을 거야....' 조금씩 다혜의 몸은 두려움이 아닌 쾌감에 떨려오기 시작했다.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창석의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어느새 뽀얗게 드러난 젖가슴을 통해 전해졌다. '쪽-' '쪽-' '쪽-' 다혜의 목덜미에서 쇄골까지, 부드럽게 입술을 찍어주며, 창석은 그녀의 젖가슴을 살짝 움켜 쥐었다. "하윽-" 저릿한 그 감각에 다혜는 슬며시 상체를 꺽어 보였다. '쪽-' '쪽-' '쪽-' 다혜의 가슴에서 아랫배까지 입술로 길을 낸 창석은, '쭈읍-' '쭈읍-' 서서히 고개를 드는 그녀의 젖꼭지를 빨아올렸다. "하아~. 아흥~." 창석의 혀놀림에 다혜는 달아오르고 있었다. "나,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깨끗하지 않아.....하욱-." 젖가슴을 문지르며 배꼽을 핥아주는 창석에게 다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그의 마음을, 이미 처참하게 더럽혀진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녀의 마음이 왠지 모르게 아려왔다. "괜찮아.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널 사랑하니까." '스으윽-' 창석은 그녀의 마지막 남은 팬티를 벗겨 내렸다. '쪽-' '쪽-' '쪽-'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다혜의 보짓살에 창석의 입술이 닿았다. "아후응~. 하아응~." 다혜는 본능적으로 창석의 머리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할짝-' '할짝-' 그녀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벌리며, 창석은 그 가운데에 피어오른 꽃잎을 길게, 길게 맛보았다. 창석의 그 혀를 따라, 다혜의 보지가 품고 있던 그날의 그 더러움들이 눈녹듯 사라져갔다. "후우-. 사랑해. 너도 모르는 너의 그 모든 곳을 다, 사랑해주고 싶어." 다혜의 가랑이에서 속삭이던 창석의 입술은 어느새 위로 올라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고마워.....정말...." 창석을 꼭 껴안는 다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동안의 고통과, 그동안의 악몽이 그 눈물을 따라 씻겨내려갔다. '푸우우욱-' 다혜의 눈물에 입을 맞추며, 창석은 자신의 끓어오른 자지를, 그녀의 수줍은 보지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후으윽-" 창석의 사랑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다혜는 곱게 뻗은 양다리로 그의 단단한 엉덩이를 감았다. '푸욱-' '푸욱-' '푸욱-' 자신의 가슴에 눌린 다혜의 보드라운 젖가슴을 느끼면서, 창석은 서서히 허리춤을 췄다. 뜨겁게 창석의 자지를 감싸오는 다혜의 보짓살과 질벽은 한없이 달콤했다. "하아~. 사, 사랑해. 아흥~." 보지속 깊숙이 파고들었다가, 그 거대한 귀두로 질벽을 긁어내려가는 창석의 자지를 느끼며, 다혜는 연신 사랑을 속삭였다. '츄르룹-' '츄르릅-' 다혜의 사랑에 창석은 키스로 대답했다. '푸우욱-' '푸욱-' '푸욱-' '질꺽-' '질꺽-' '질꺽-' 그 긴시간을 고통속에 메말라있던 다혜의 보지가, 창석의 사랑으로 촉촉히 젖어들어갔다. 지금 이순간, 다혜의 보지를 들락거리는 창석의 자지는, 사랑과 동시에 치유였다. "헉-. 헉-. 헉-." 그토록 오래기다렸던 그녀와의 교감을 이룬 창석은 쉽게 절정을 향해 내달았다. '푸욱-' '푹-' '푸욱-' 점점 더 빨라지고, 점점 더 강해지는 창석의 좆질에, "아흥~. 하응~. 하웅~." 다혜가 내뱉는 신음도 잦아져갔다. "헉-. 헉-.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헉-. 헉-." 자신의 사랑에 흠뻑 빠진 듯한 다혜의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창석은 9년전 그녀를 처음 본 때를 생각했다. "평화를 빕니다." 그 한마디에 한없이 평화로웠던 그 때처럼,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창석이었다. "하윽~. 나는 이미, 하아-. 네 안에 멈췄는 걸. 아후응~" 다혜는 창석의 양볼을 부드럽게 손바닥으로 감쌌다. '푹-' '푹-' '푹-' 푹-' 세상의 마지막날처럼 다혜의 보지를 몰아붙이던 창석은, '푸우우욱-' 그녀의 그 여리고 소중한 곳 깊숙이 자신의 자지를 밀어넣은 채, "허어억-" 격렬한 사랑을 토해냈다. "하으우으앙~~~~." 자신의 상처에 모든 치료를 끝내고, 마지막 남은 약처럼 스며들어오는 창석의 정액을 느끼며, 다혜는 길고 긴 탄성을 내질렀다. 이제 더이상 울지 않으리라. 이제 더이상 고통받지 않으리라. 이제 더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자신에게 모든 걸 쏟아부은채 쓰러져내린 창석의 등을 토닥이며, 다혜는 다짐했다. "하아-. 9년...9년이나 걸렸구나...." "후우-. 그 9년을 보상하려면 더 자주 사랑해야겠죠?" '츄루릅-" 창석의 입술이 다혜의 입술을 파고 들어갔다. 차가운 겨울의 한가운데인 크리스마스에, 그들은 그렇게, 9년전 여름처럼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그런 일을 겪게 마련이다. 첫 눈에 보자마자 영혼을 빼앗겨 버린다거나, 결코 지워낼 수 없을 것 같았던, 고통이 누군가에 의해 한순간에 지워진다거나, 언젠가 한 번 쯤은 겪어 봤을, 혹은 앞으로 한 번 쯤은 겪게 될 그런 기적. 흔한 우연으로 시작해 흔한 기적으로 끝난 이 이야기는 당신에게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똑같은 인간이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모두에게 축복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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