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바람소리 - 2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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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제 24 부 : 판도라의 잃어버린 뚜껑



윤택은 어리버리한 그 녀석을 업고 비상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사람의 인적이 뜸해지자, 그는 녀석의 품속에서 핸폰을 찾아 꺼냈다.



‘아쭈구리, 요 자슥 보게?’



핸폰에서 전번만을 따려다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다행히 비번설정이 되어 있질 않아서 내용을 살펴 볼 수 있었는데, 그 자식은 이름도 괴상망측한 전번을 수두룩허니 갖고 있었다.



‘알았쓰…..니 뒤가 무척 구리다 이 말이쥐?’



전번을 대강 기억해 놓은 뒤에, 윤택은 놈의 기혈이 서서히 풀려가도록 조치를 취하고 일어났다.



‘몸이 쬐께 지리리 헐 것이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진검사에게 전화를 해야 할까 싶기도 했지만, 경황이 없을 것 같아 관두기로 했다.



‘띵동….띵동….나 왔네!’



‘열려있어….’



문이 열리고, 아내가 반겨줄 쭐 알았지만, 습관적으로 문이 잠겨 있다고 생각하고 누른 초인종의 손가락이 민망한 순간 이었다.



‘너 또 애 가지고 장난 떨래?’



거실에는 초등학교 3학년생, 아들내미가 가부좌를 튼 채로 팔꿈치로 지탱하는 요가의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있었다.



‘어허 수련중에 왠 고성? 안되겠구만…..’



아내 상군은 아들내미 비선이의 귀 뒤쪽 몇 군데를 눌러 버렸다. 그건 주위의 소음을 차단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윤택이 마누라와 열나 고함을 지르며, 싸울 때나, 밤중에 신나게 소리쳐 가며, 떡칠때 마누라가 잘 쓰는 방법이었다.



‘잠깐, 잠깐, 잠깐, 거기 스톱 쫌 허시지? 어딜 기냥 슬그머니 들어가시려구?’



‘왜?’



‘이 집 안에 코때기 달린 사람치고, 당신 몸에서 뻗어나는 피비린내 못 맡는 종자 있스믄 나와 보라구 해. 어디가서 뭘 하고 돌아다녔길래 그 지경이래? 그 나잇살에 쌈질 허고 댕기시나?’



‘하여간 코는 개코라니깐! 아니야, 그게 아니구……’



‘자기 또, 그 놈의 진검산지, 진간장인가 만나고 왔쥐? 내 그 사람 만나지 말라고 했쓰, 안했쓰…..아쭈? 요 자식이 애비 닮아서리 요령 피워? 너 비선이, 한팔로 할테야?’



상군은 집안의 남자란 남자는 한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상황이었다.



‘상군아, 고만 쫌 허지? 그러다 비선이 대가리에 피 몰려서 눈까리 다 튀어 나오겠다.’



‘그럴려고 수련허는데, 뭔 참견? 그건 그렇고 밥은 먹고 댕기남? 대가리 뒤의 후광이 좇또 후까시 빠진 걸 보니, 밥도 못 얻어먹고 댕기는 모냥이네….으이그 내가 미쳐. 저기 선식 있으니 챙겨 먹으셈.’



‘상군아, 우리도 남들처럼 찌게에, 반찬….뭐 이런거 먹으면 안되냐?’



‘아니, 주구장창 화식으로 살면 누가 명쭐 연장시켜 준데? 고마운 줄 알아야쥐, 원…..요즘 자기 밖에서 뭔 일하고 다니니?’



‘뭐 그냥, 허는 일이 맨날 똑같쥐…..’



그러나, 귀신같은 마누라를 속이기는 정말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윤택이었다. 아내는 첫만남에서부텀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맞선이라고 보러 나간 자리에서 기겁을 하고 놀란 것은 둘째치고, 도무지 자리를 뜨질 않는 지금의 장모 때문 이기도 했다. 같이 나간 어머님도, 아무런 얘기도 없이 얼굴을 빤히 쳐다 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상대측 모친의 기이한 행동으로 옆구리를 계속 찔러댔기에…..



‘얘, 윤택아,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갑다. 어여 뜨자….이거야 원…..’



죽어드는 목소리로 멀찌감치 화장실을 다녀 온다며, 카페의 입구에서 어머니와 나눈 그 짧은 대화…자리로 돌아온 두 사람에게 지금의 장모는 웃으며 말을 텄다.



‘괜찮습니다. 우린 정신 멀쩡하구여, 하도 댁의 자제분이 탐이 나서 안 그럽니까? 너그러이 용서 하세여. 기골이 정말 좋아! 뭘 가르쳐도 쑥쑥 잘 따라 허겠네….안그러냐, 상군아?’



윤택은 마담 뚜가 알려준 상희라는 이름이 아니라, 남자 이름 같은 상군이라는 이름이 장모될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와 깜짝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니, 그럼 본명이 상군? 장군, 멍군하는 그 상군이여?’



‘이름이 쫌 그렇져?’



‘아녀, 많이 그래여.’



‘돌아가신 우리 그이가 본배필을 만나기 전까진, 진짜 본명을 밝혀서는 안된다는 유언을 내리고 입적하셔서…..’



‘아니, 입적 이라녀? 그럼 아버님이 스님? 나 이거야 원….’



‘아효. 스님만 입적하나여? 도량이 높은 분들도 입적이란 말을 쓰져. 서서 돌아가셨거덩여.’



윤택은 서서 운명하셨다는 상대측 모친의 얘기에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이런 정신나간 집안에게는 퇴짜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뭐, 파계승 부친에다, 정신 모지란 모친, 한마디 말도 없는 맞선 상대….



‘저…… 윤택씨는 기자가 되려고 하시져?’



‘아니 그걸 어떻게? 뚜쟁이 아주머니가 내 심사까지 전달했남? 그럴리는 없을텐데….’



‘그리구…..무협지 좋아 하시고, 학교 때 꿈이 이소룡처럼 쌍절곤 잘 돌리는 게 소원 이셨고….또 말해 드려여?’



윤택은 순간, 앞에 앉은 여자 두 사람이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아내는 자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번 만져 보세여.’



윤택은 아무런 생각없이 손을 내밀어 아내의 손을 붙들었다.



‘으그그그그…….’



그건 어릴쩍 많이 하던 손바닥 전기놀이의 느낌과 너무도 흡사했다. 손바닥을 통해 어깨까지 지리리 할 정도로 전해지는 그 놀라운 침투력……그렇다고 뺄 수도 없었다. 그 느낌은 흡사 자신의 내장 속까지 온통 훑어대고 다시 그녀의 몸으로 무언가를 쓸어 내가는 것처럼 여겨졌다.



‘밥을 너무 자주 거르시네, 기자 시험 몇번 떨어졌다고, 맨날 라면만 드시면 속 버려여. 이렇게 무언가 깊이 통하는 사람, 본 적 없어여.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말씀 하시던 배필이 분명한 거 같네여.’



그 날부터 이어진 아내와의 만남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의 현장실습이 되고 만다. 지금의 도력을 갖추게 된것은 오로지 아내인 상군의 혹독한 수련 덕이었고, 지금도 윤택은 아내 상군에 비하면, 새발의 때도 못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곤 했으니 말이다. 같은 동시대를 살아오고, 남들과 같이 대학을 나오고, 평범하게 살아왔었을 아내였음에도, 아내가 갖고 있는 놀라운 지식과 능력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기는 어떻게 그렇게 아는 게 많아? 언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다니?’



‘그거 별거 아니라넹….남들이 이른바, 속독이라고 하는거, 나한테는 식은죽 먹기보담 쉬워. 그건 속독이 아니라, 우리끼리 부르는 말로는 안련술(眼鍊術)이라고 허지.’



‘그게 뭔데?’



‘이름하야, 눈까리를 단련허는 거지, 뭐겠어? 글짜 뿐만이 아니야. 사람의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뇌로 전달될 때는 그 형태와 색체, 움직임에 따라, 아주 미세한 차이의 뇌파로 구분되어 기억되고, 구분되어지는 거거덩? 만일 영화를 보면서, 그걸 시험공부 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하면서 보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영화의 한장면도 놓치는 법이 없이 머릿속에 동영상처럼 완벽허게 기록된다구. 그러니, 평범한 사람들과 영화의 장면에 대한 얘기를 하면, 어? 그런 장면이 있었나 허면서 대가리 갸우뚱 허거든…..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색각을 자신이 맘 먹은 대로 조절해서 품목분류를 한다는 거이야. 책은 읽는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쉽게 얘기허자면, 디카로 기냥 찍어대는 거지. 소가 되새김질을 허는 것처럼 나중에 시간날때, 사진처럼 꽝 찍혀서 머리속에 들어간 페이지를 하나하나 현상하듯 열어 보면서 천천히 읽어가는 거쥐. 나 맘만 먹으면 일주일 안에 국립 도서관에 있는 책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할 자신 있어. 이해가 안 가서 그렇쥐. 내 머리로 천체물리학이네, 고등수학 공식이네, 그런거 기억한다고 이해 가겠어?’



그런 그녀 였다. 그녀의 추궁에는 목소리에 강한 염력과 더불어, 내공이 실려, 어쩔 수 없이 토설을 할 수 밖에 없는 지경이 될 거이 뻔하니, 윤택도 두손 두발 다 들지 않을 순 없었다. 집으로 오기전에 녀석의 핸폰 내용을 훑어 기억하고 온 것도 그 안련술의 작은 부분 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 선밴가 뭔가가 남긴 찌끄래기로 고심허고 사니? 그거 자기 일 아니거덩여?’



‘하지만, 진검사랑 관련이 되는 거 같아. 친구 사이에 나 몰라라 헐수도 없잖니?’



‘그건 알겠는뎅, 어떻게 사람들이 나뭇가지는 보면서, 숲은 못볼까 싶넹……한 두사람 목숨 달린 일, 아니라고 내가 잊어 먹으랬지? 이렇게 가면쓰고 사는 게 편하지 않나?’



아내는 항상 윤택에게 본업이 기자질일 망정, 그 가면의 소중함을 항상 잊지 말라고 조언해온 것을 기억해 냈다. 먹고 사는데에 바쁜 그 기자라는 직업을 가면으로 쓰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가면이 어떤 때는 자신을 위기에서 지켜주는 버팀돌이 된다는 것이 아내의 주장 이었다.



‘자기야, 내가 몇 번을 얘기허니? 가면을 왜 쓰고 사는데? 어디 타이거 마스크가 마스크 벗는 날 꿈꾸면서 레슬링 허대? 그 가면이 있기에 자신의 레슬링이 빛나는 거고, 그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가면서, 가면을 벗고나면 알아보지 못하는 주변을, 살곰살곰 알게 모르게 도와 갈 수 있는 거라구. 나 누군뎅, 실은 나 진짜루 얘기허면 누군뎅 허면서 뜸 들여 봐. 가면을 쓰고 있던 말던, 신비감은 커녕, 멀쩡한 본색에 미친 지랄 났다고 가면쓰고 살고 있네 허면서 비호감만 잔뜩 받지, 더 뭘 바라겠어?’



‘그렇다고 뭔가 냄새가 징허게 나는데, 가만 있으라구? 사회정의가 뭔데? 지 혼자 잘났다고 도만 딲고 있스믄 뭔 해결이 난데?’



‘모든 건 하늘이 해결하는 거 몰라? 지구 상에 인간을 멸종 시키지 않는 담에야, 언제고 계속되는 그 짓거리…..멈출리 있겠수? 하늘이 지구의 회전축을 왜 옆으로 틀어 놨는데? 세차운동의 결과로 때가 되면, 착한 넘, 나쁜 넘 할 거 없이, 주기적으로 싸그리 청소 해대시는 하늘의 뜻을 몰라서 물어? 전승신화나, 마야력, 피라밋에도 나와 있는 그 기정사실을 왜 애써 외면하고 사실까? 다 때가 되면, 지 스스로의 힘으로도 어쩔 도리 없이, 판을 갈아 어푸시는 하늘의 뜻을 조금치라도 이해헌다면, 지금 빨개벗고 나서서 영웅질 쫌 했따구, 누가 상 줄까봐? 예끼 여보슈!...정신 차리고 설랑….진지나 자시셔…..얘기허다 깜빡 잊었네…내내 이럴 쭐 알았어. 누구 아들 아니랠까봐, 물구나무 서서 코 골고 자는 것 쫌 봐.’



물구나무를 서서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코를 골고 있는 아들 비선이의 모습이 우습기만 했다.



‘한가지만 알려주께. 오늘 진검산지 진간장인가가 그 집으로 데려왔다던 그 여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면, 어여 우리 집으로 데불고 오라고 해, 얼릉? 목숨이라도 붙어 있어야 서로 살아질 꺼 아닌감?’



‘왜?’



‘아니, 대한민국 검사 집에 그렇게 독을 품고 쳐 들어 오는 인간들이 한번으로 만족헐꺼 가터? 시도 때도 없이 그 여자 잡아가다니, 인질삼아 진검사 후두를 꺼 아냐?’



듣고 보니, 그도 그럴 듯한 얘기였다.



‘으이그, 그러니, 평소에 화식 쫌 절제허고, 담배도 그만 쫌 펴 대라고 내가 몇번을 얘기허니? 색안경에, 안대까정 허고, 맑은 하늘에 깜장 우산까지 받쳐 댄채루 세상을 보니, 언제 영안(靈眼)이 될까 싶넹. 그렇게 살고 있으니, 앞날이 벼룩만큼도 눈에 안들어오지? 지 몸뚱아리랍시구 맘대로 굴리라고 누가 그랬는뎅? 그러고서도 뭔 잘나빠진 개뼉따구 처럼 남들 앞에서 대장질?’



‘내가 언제?’



‘술 처먹고 속경술 쓸라치면, 그 내용 속에 끄윽하는 술트림도 쫌 빼지, 왜 그 놈의 트림까정 섞어서 남의 대가리를 어지럽게 허남? 내가 자기 만나자 마자, 우선 진검사 여자부텀 정리 시키라고 했쥐? 뭔 일을 하려면 나처럼 삶에 보탬이 되게 허등가, 이건 밑도 끝도 없이…..당신이 그 여자 돕겠다고 해서 카드 한도에다, 돌려막기까지 허면서 혼자 끙끙대는 거, 내 모를 줄 알았지? 다 그게 잘 되자고 허는 고생이라서 알면서도 놔 뒀거덩! 남을 도우려면 그렇게 해야지, 쓸데없는 영웅심리로 나섰다간 발모가지 뿌러지는 거 예삿일 이라구.’



‘하여간 마누라 허고는, 사생활이 없어여….’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그녀의 투시력은 윤택의 생활을 사진처럼 환하게 꿰차고 있었고, 마음 속의 변화조차 바뀌면 바뀌는대로 읽어대는 그녀의 능력이었다. 곧이어, 진검사가 성자를 데리고, 가방 하나도 없이 윤택의 집으로 도착했다.



‘저 밤늦게 폐가 많습니다.’



‘뭘요. 이리 들어 오서여. 성자씨도 얼릉 들어오지?’



‘아니, 윤택이 너, 벌써 다 얘기 한 거야?’



‘얘기허긴?....이제까지 내가 너에게 해준 얘기들이며, 조언들…그리고 성자씨를 도와준 일들, 다 우리 마누라가 나보고 하라고 시킨 거라니깐?’



‘아, 그러세여? 저는 그것도 모르고..암튼 고맙습니다. 이렇게 도와 주셔서…..’



‘모르겠네여. 이게 잘허는 짓인지, 뭔지……세상 일 모두 다 안다고는 말 못해도 어느 정도는 꿰차고 있는데, 이번 일은 쫌 아니네여. 일이 잠잠해 질때까지만, 제가 성자씨 보살펴 드릴께여.’



‘그래주시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제가 일을 나가고 나서, 그 녀석들이 다시 들이닥치면, 성자가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 않한 거 아닙니다.’



‘언제나 있어 왔던 돈지랄에, 쌈지돈 노름에 눈까리 뒤집힌 것들 틈에서 허송 세월 허덜 말고, 발 빼라고 그렇게 얘기 했건만, 저 양반이 듣지를 않네여.’



진검사는 무속인의 앞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는 기분 이었다.



‘다 그게 북악을 지고 터를 튼 나라 꼴 때문인데…..지금은 은둔의 시대라 허는 말, 이해가 가질 않으시겄져? 그러니, 명인 보다 악인이 판치는 시절인 것을….아이구, 내 정신 좀 봐 손님 초대해 놓고설랑, 차도 안 내오고 딴소리는….’



진검사는 차를 마시면서 궁금한 것을 좀 더 묻기로 했다. 평소에 보던 것과 다르게 장엄한 어조로 말을 흘리는 윤택의 처에게서 진검사는 얻어 들을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가 요즈음 하는 일을 두고 윤택이 이 친구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성자 일도 그렇고, 저에게 뭐 할 말은 없으신가 해서…..’



‘다 겉만 보고는 모르져. 성자씨도 겉만 봐서는 여자로 바로 보겠습디까? 그 심성에 감추어진 이면을 볼 쭐 알아야 진가를 느끼는 거지여. 이번 일, 첨부터 실수허덜 않으시려면 청계천 물줄기 부텀 공부허셔야 헐겝니다.’



‘청계천 이라니여?’



‘글쎄, 시간 잡아 먹는다고 생각지 마시고 설랑, 어째서 이즈음에 청계천의 물꼬가 터졌는가를 잘 한 번 찾아 보시란 거져.’



진검사는 어째서 윤택의 처가 그런 화두를 던지게 되었는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글쎄여. 척 들어서는 어디서 부텀 어떻게 감을 잡아야 할런지……제 앞에는 이미 칼이네, 몽둥이에다 서슬이 퍼런 종자들이 들락이고 있는 판국에 청계천 이라녀? 이거 돌아가도 너무 멀리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사람들은 병이 나고 나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병증에서 해방되고자 헙니다. 그러나, 세상 이치는 그렇지 않습져. 예를 들어, 7년에 걸쳐 병의 원인이 제공되고, 증이 환으로 탈바꿈해서 신체를 들이치고 난 후라면, 적어도 그 정도의 연한이 소모되면서 치료가 되어야, 몸에 무리가 없는 것인데, 사람들은 7년이 아니라 7개월조차 기둘리질 못하고 안달을 떨게 되지여. 작금에 벌어진 일들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10분의 9가 바닷속에 잠겨 있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빙산의 꼭지만 보고서 그 전체를 짐작할 수 있겠는지여? 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주변의 흩어진 부스러기 부텀 차근차근 챙겨가야, 중심에 기어이 바로 설 수 있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 입니다. 결코 손해되는 장사는 아니니 맘 놓고 질러나 보시져.’



‘그렇다고 청계천이 무신 범행증거도 아니고, 동기는 더더욱이나…..저 지금 살인 사건 용의자 쫓고 있거덩여?’



‘말씀 잘하셨네여. 동기라고 허셨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나, 고의적 계획살인이나, 우발적으로 울컥하며 저지르는 살인이나 간에 살인이라는 결과만 두고 보자면 그 범인들은 모두 살인자가 분명허져. 그러나, 그 살인을 일으키게된 동기에 주목한다면, 판결은 정상참작, 정당방위, 극형등 다양한 결론이 나오질 않습니까? 구지 살인이라고, 누가 누굴 죽였네에 시선을 모으다 못해, 사팔뜨기로 앉아 계시진 말라고 드리는 말이져.’



‘제 생각도 조금은 그렇습니다. 이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무언가 뒤에 버티고 있는 원인제공자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무언지 아직 감이 없어놔서…..’



‘이걸 항상 명심하시면 됩니다. 이건 세상일이고, 천지가 개벽할 것도 아닌, 악인들의 기본식단 이라는 것을…그럼 뭐가 있겠습니까? 썩은 돈과 부패된 권력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라는 거지요. 다만, 지금의 상황이 뚜껑이 날아갔다는 것 이외에는…’



‘아니, 뚜껑이 날아가다녀?’



‘판도라의 뚜껑이 분실되었다는 말입니다. 희망이라는 마지막 물건을 붙들 새도 없이, 모든 것들이 공중으로 흩어져, 제각기 나쁜 짓을 위해, 포진해 버렸다는, 아니 이미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이 옳겠지여.’



‘그걸 어떻게 장담하시져?’



‘장담이여? 이런 여자의 머리로도 가늠이 되는데…..역사니까여…..언제나 있어왔던 그렇고 그런 시시껍쩔한 얘기들……이미 썩을대로 썩어서 들어내기도 힘들어, 그냥 내버려 두느라, 고름냄새가 등천을 해도, 그걸 향내라 주장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월….우린 그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청계천이 도움이 될까여?’



‘글쎄여. 어떻게 생각하기 나름 이겠져. 몸에 약이 된다고 여기면, 비상조차 보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인데….’



‘하여간, 한번 해보져……그럼 이만 돌아가렵니다. 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제 더 이상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묻지 마십시오. 이미 너무 많은 걸 알려 드렸어여. 성자씨 한 사람 지키는 것도 어려워지는 이 판국에…’



‘하긴 그렇네여. 폐 쫌 끼치 겠습니다. 윤택아, 나 간다. 성자야. 아주머님, 많이 도와 드리구, 내가 자주 오께. 일 쫌 정리되면, 어찌 합쳐 보자. 알았지?’



돌아간다는 진검사의 말에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지는 성자…..진검사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현관에서 배웅을 하는 윤택이나, 윤택의 처나 간에 마음이 무겁기는 매한가지 였다.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려는 순간,



‘조용히 차나 모시지….검사양반!’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차가운 단검의 날이 뒷좌석으로부터 진검사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다.



‘질문도 필요없고, 모가지에 숨구멍 내기 싫으면, 시키는대로 허는게 좋아.’



‘날 죽여서 좋을 게 없을텐데….’



‘안 죽여도 좋을 건 없쥐, 안그래? 잘 알면서…..어서 가지…..밤도 깊었는데….’



뒤를 돌아다 보지도 못했지만, 살기가 등등한 그 칼의 날이 살을 조금씩 파고 들어서, 피까지 조금씩 배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자 이쯤에서 멈추시고…..마중나온 사람들, 저기 있구만…..’



차가 정지하자, 눈 앞에 대기하고 있던 두세명의 청년이 차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



‘너희들…이러다 경치느 ㄴ….웁’



차 문을 열고 그들은 다짜고짜로 진검사에게 재갈을 물리고, 양손을 결박한 뒤에, 머리 위로는 두건을 번개같이 잡아 씌웠다. 자신의 승용차를 나와 다른 차로 갈아 타게 하고는 어디론가로 가고 있었지만, 진검사는 두 눈이 가려져 있어서 방향감각을 상실한지는 벌써 오래전 이었다. 한 40여분 인가를 가다가 차는 멈추고, 그들의 인도에 이끌려, 걸음을 떼어 놓게 되었다. 바닥이 푹신하고, 풀벌레 소리에다, 숲의 냄새가 짙은 것으로 보아, 시내는 아닌 것 같았다. 어떤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혀진 진검사…..



‘재갈은 풀어 드리지, 답답 하실텐데…..’



‘푸하…..휴…….당신 누군데…이렇게 사람을 막무가내로 잡아오는 거여? 보통 사람 이라면 몰라도, 내가 누군지나 알고 그러는 거여?’



‘보통 사람이라? 요즈음 보통 사람으로 살다가 빛 볼일 있을까? 가뜩이나 어려운 이 시절, 누구 말 마따나 보통 사람으로 살아대면 믿어주는 사람도 없을텐데, 안 그런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린데….’



‘벌써 잊으시면 곤란허지…..제보자를 잊으시면 섭하기도 허구……’



‘당신은 대체 뭐요? 뭐길래, 나를 이렇게 들고 흔드는지 이유나 압시다. 우리 혹시 같은 편 아니요? 그렇지 않고서야 당신이 나를 돕고자 제보 따위를 할 리가 없지 않겠수?’



‘같은 편이라….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그런 말도 있잖수? 내가 편하고자 하면, 당신은 동지가 되어 주어야 하고, 내가 피곤해 지려면 당신과 맞서 싸워야 하니, 쫌 아리까리 하지? 하도 정신을 못차리는 거 같아서, 내가 이렇게 면담 쫌 하려고 모셔 왔는데, 불편 허신가?’



‘이게 면담이우? 얼굴 가리고, 무신 한밤중에 라디오 청취허는 것도 아닌 담에야….’



‘내가 질문 하나 허지. 무언가 일이 생각보담 잘 흘러가는 와중에 꼬추가루를 뿌리면서, 개판 지기는 빙충이가 나타나면, 검사양반은 어찌 하겠수?’



‘글쎄,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소?’



‘어떤 일이냐에 따라…..그것도 말은 되네. 상대적이긴 해도……, 나쁜 놈들 측면에서 보면 착한 녀석이 악당이 될테니……그럼 이건 어떨까? 대세가 굳혀놓은 일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대세라고 하면, 대외적 명분이 있으니, 어찌 해야 될꼬?’



‘대세라고 주장하는 자들과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겠지여.’



‘까다롭구만……그럼 아무도 비토를 걸던 일이 없던 대세라면 어떻겠나?’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평가되지도 않고 오래도록 흘러가는 대세? 그건 부정이 틀림이 없쥐. 다 같이 잘 살자는 뻔한 명제로 겉을 치장한…..’



‘그럴까? 암튼….스무고개까지 갈 생각은 없으니, 질문은 이쯤에서 하고…..그 년놈 잡아 들이라는 제보자의 작은 소망은 어찌 됐누? 민주 시민의 간곡한 신문고를 듣고서도 두 귀를 막을 리는 없을 텐데…..’



‘그걸 당신에게 말해 줘야할 의무가 없다고 보는데, 세금 낸다고 모든 걸 다 알려고 허면 다치지, 안그런가?’



‘허어, 그래? 그럼 이거 한번 들어보실라우?’



‘찰칵….’



‘네…네…여부가 있겠습니까? 진검사야 제 수한데, 위에서 직급으로 눌러도 제가 우위에 있고, 여러모로 봐도 제가 기득권이 있는 마당에,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 되도록 다그치겠습니다. 네….네…..뭐 두 년놈만 잡아서 그렇쿠 , 저렇게 엮어 버리면, 입막음이야 충분헐꺼 같구여….네…..네……’



‘찰칵’



녹음기 같은 곳에서 흘러 나온 음성은 눈 감고도 알 수 있는 부장 검사의 쉰 목소리 였다. 진검사는 윗선도 대충 엮이어 들어가 있다는 판단이 들고 있었다.



‘감상이 어떠 하신가?’



‘뭔 감상?’



‘이런게 이른바 대세 아닌가? 알게 모르게 주위가 모두 까마귀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니 놈 혼자만 백로랍시고 고개 빼고 있다가는, 니 눔 스스로 판 함정에 디리 빠져서 허우적 거리게 된다는 뽀빠이 아저씨의 말씀..히히히….자뻑도 자뻑 나름이지……세상 일이란게 끝을 봐야 허는 것도 있지만, 대충 넘어가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지. 그 두 년놈을 잡아 족치는 건, 끝을 봐야 하지만, 그 이상의 한계는 대강, 설렁설렁 넘어가도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야그쥐, 어때, 진검사….내 말이….대세에 대한 나의 견해가 말이야.’



‘뭔 놈의 견해? 내 여기서 나가기만 허면….’



‘나가기만 허면? 어쩔건데? 주위에 다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깨갱댈 꺼라구? 그래? 그런거야?’



‘다치긴 누가 다친다구?’



‘어허, 사랑하는 님을 친구 집에 숨겨 놓았다구, 영원히, 안전하게 보관될 줄 아나보지? 이쯤 얘기 허면 알아들을 대가린데, 요즘은 아무나 고시 패스 시키나? 이렇게나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야….’



‘내 너그 놈들 가만 두지 않을 것이야. 악바리 돈빨 검사가 어떤 건지, 아주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게 요절을 내주마. 내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리…..’



‘그래? 어후 무서워서 어쩌징? 그 이빨로 씹어두 너무 많아서 이빨이 닳고 닳아, 잇몸이 피가 날 때까지 씹어도 꺼리가 넘쳐 날텐데, 이걸 어쩐다? 우리 검사님 의치락두 해드려야지…..얘들아? 새 이빨 박아 넣으려면, 헌 이빨 부터 뽑아야지? 안 그러냐?’



‘네….’



머리에 씌운 두건을 코끝까지 감아 올리고서, 우악시런 손으로 진검사의 고개가 고정되면서 입에는 구강을 확장시킬 때 사용하는 틀이 끼워졌다. 그리고나서,



‘우리 진검사님 금이빨로 몽조리 해드릴라면, 폼나게 앞 이빨부텀 뽑아 드려야쥐…얘들아, 얼릉 뽑아드려라. 얼마나 금으로 해 넣고 싶으시겠냐? 아님 티타늄으로 해드리까?’



‘…………’



그러나, 진검사는 비명이나 신음조차 지르질 않았고, 자신의 이빨이 죽고 싶을 만큼 격한 통증을 일으키면서 뽑혀져 나가기 시작하면서도, 입 안으로 가득차 목구멍을 넘어가는 핏물 덩어리를 천천히 세알리고만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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