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로리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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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녀, 청년을 만나다
“...그렇게 되었단다. 오늘부터 당분간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일은 없을 거야.”
“결국 그렇게 됐네요. 흥, 어차피 잘 뵙지도 못하던 분인걸요. 엄마도 마찬가지지만.”
“어쨌거나 너한텐 미안하게 됐구나.”
“하나도 안 미안하면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진짜 미안하면 이런 일은 없었어야죠!”
“아니 얘가…”
“왜 이런 얘길 전화로 해야 해요?! 정말 미안하면 두 분이 집에 와서 얘기하셔야죠!
흑… 난 뭐에요? 난 뭐냐구요?!!”
“…….”
“엄마도 아빠도 다 싫어! 싫다구요!!!!”
(쾅)
“흐윽… 흑…”
전화를 끊고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우리 집 개판인 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좀 너무들 한다. 오늘로 엄마랑 아빤 완전히 따로 살기로 한 것 같다.
남들이 부러워할 큰 집이지만 나한텐 귀신 나오는 집이나 다를 바 없다.
가정부 아줌마가 나 학교에서 올 때쯤 저녁 지어 놓고 나가버림, 이 큰 집에 남는 것은 나 혼자뿐이다. 엄마가 일찍 오셨을 때가 언제였던지 기억도 안 난다. 토요일인데도 엄만 회사에 가 있다. 엄마한테 중요한 건 일, 일뿐이다. 내가 딴 집 애들처럼 엄마한테 반말 못 쓰는 것도 엄마가 넘 차가워서일지도 모른다.
절대 용서할 수는 없지만, 아빠가 다른 여자랑 사는 것도 가끔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할머니, 할머니가 계실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언제나 날 따뜻하게 안아주시던 할머니.
(할머니… 보구 싶어… 흑… 흑…)
……
그대로 집을 나왔다. 집 안에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았다. 다리가 아파질 때쯤 정신을 차려보니 신촌이었다. 버스로도 예닐곱 정거장은 될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걸었나 보다.
토요일의 신촌은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행복해 보이는 남녀들이 많이 보인다.
아빠 엄마 별거했다고 무작정 걸어 나온 여고생은 나말곤 없을 거야.
인파에 치이면서 더욱 비참해졌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수시로 내 팔을 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난 불평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은 바쁘고,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나한테는 그 사람들을 욕할 권리가 없다.
괜히 또 눈물이 난다.
앗 차가워. 갑자기 목에 왠 물방울이… 아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우산을 펴들고 있다. 일기예보에 나왔나 보지.
아무 생각 없이 나와서 우산도 뭐도 없는 나. 낮에 좀 덥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11월. 셔츠 한 장 걸치고 나온 애한테 비까지 내리면 너무 가혹하다.
택시라도 타고 돌아갈까…
아니, 그 어둠 속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시 혼자 있긴 싫어.
어차피 지금 돌아가도 엄마는 없다.
그 어둠 속에 혼자 있느니 인파 속에서 무의미하게 걸어다니는 편이 좋아.
일단 비를 피해서 가까운 피시방으로 들어갔다.
새삼스레 싸이를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의 나 역시 거리에서처럼 무의미하게 이곳 저곳을 헤매고 있었다. 여전히 목적지는 없다.
네이버 뉴스 게시판에서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청소년 성매매 인사 공개’
몇 달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 아저씨도 이번에 명단에 올랐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아저씨들은 원조를 계속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얼마나 간 큰지 한번 볼까. 전에 들어갔던 채팅 사이트가 뭐더라.
‘신촌에서 소녀와 만나 주실 분’
…방제가 넘 노골적인가. 어쨌거나 어떤 간 큰 아저씨가 들어오나 한번 보자.
의외로 재미있네 이거. 원조교제 아저씨들 이름이 인터넷에 떴다는 기사 위에 뜬 원조교제 채팅방 창이라.
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젖은 머리를 가다듬었다.
(Soulstealer님 입장!)
“……!!”
말세도 유분수지. 방 만든지 10초도 안 지나서 굶주린 중년이 들어온다. Soulstealer? 왠 겉멋든 아저씨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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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stealer 안녕
소녀2 하이여
Soulstealer 혹시… 원조?
소녀2당3져
Soulstealer 얼마
소녀230
Soulstealer 좋아요. 신촌역 밑 버거킹 알죠?
소녀2네
Soulstealer 8시 정각에 그 앞에서 봐요
소녀2저기여
(Soulstealer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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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다. 돈 얘기도 한 마디도 안하고 장소랑 시간 정하고 나가다니. 난 어떻게 알아보려구? 하긴 그러니까 이런 때 원조하겠다고 들어왔겠지. 대한민국 중년 아저씨들의 성욕은 정말 대단하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잠깐 재미있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집에 갈까? 그렇게 하기엔 아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피시방 들어온 지30분 지났을 뿐이니까.
담배냄새가 너무 심하다. 빗줄기도 가늘어진 것 같고… 일단 나가자.
……
내 발걸음은 우산 속을 헤치고 신촌역으로 향하고 있다. 시간은 8시 10분 전.
원조교제를 또 할 생각은 없다. 거지 같은 기억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용돈이 아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엄마 아빠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웃기는 돈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명품을 좋아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브랜드에 목매는 주변 애들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부 만큼이나 욕망도.
이 어수선한 때 원조하겠다고 나서는 간 큰 아저씨 얼굴이나 한 번 보고 가야겠다.
맞다. 시침 뚝 떼고 그 응큼한 아저씨 면상에다가 망신이나 주고 올까.
마치 남친 기다리는 순진한 여고생이 억지로 치근대는 중년을 만난 것 처럼… ㅎㅎ 재미있을지도.
조금 있으면 닥칠 흥미진진한 상황에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뭐라고 쏘아붙이면 좋을까?
“…원조라뇨?”
아니 좀더 세게.
“아저씨 원조교제해요??!?”
으음… 뭔가 더 강력한 말이 필요해. 난 버거킹 앞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만지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아 와라… 추악한 중년이여!
“저기… 혹시…?”
“…?”
“그게… 여기서 8시에 만나기로 하신 분이세요?”
나의 시야에 들어온 하고많은 중년 아저씨들 대신에,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샤프한 인상의 대학생이었다.
“…?! 채팅한…오빠…예요?”
“……아, 예.”
이런, 이런, 이러~언!!!!!!!!!!!!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원조녀라는 걸 인정해버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난 애써 당황한 걸 숨기며 말했다.
“와, 이렇게 젊은 오빠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아니, 뭐… 고마워요.”
세상에, 원조교제하는 대학생도 있다니. 난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세상이 희한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근데 자세히 보니 나름대로 잘 생겼네. 키는 보통이지만.
이런 오빠가 뭐하러 돈 내고 원조를 할까?
“흐음…”
“…….”
눈길을 돌린다. 부끄러워하긴. 너무 뜯어봤나 보다. 남자를 수줍어하게 만들다니. 이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걸. 이쯤에서 그만 괴롭힐까.
난 좀 허탈한 느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데로 가요. 비도 오고…”
“아, 그러죠.”
불러냈으니 얘기 상대 정도는 해야겠지. 나도 어차피 갈 데도 없다.
“비… 맞고 왔어요?”
“네. 조금요.”
양친에게 버림받고 비 맞은 원조녀. 내 신세를 생각하니 새삼스레 비참해졌다.
처음 보는 남자의 기계적인 배려에조차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역 밖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그와 함께 우산을 썼다. 큰 우산이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내 쪽으로 쏠리게 잡고 있다. 뭐, 괜찮은 걸.
그는 굉장히 경직된 상태로 말없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같은 우산 속에서 난 자연스럽게 그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걸까. 스타벅스? 민토?
앗.
…순간적으로 난 내가 지금 원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행선지는 당연한 거 아닌가~?!!!
(말해야 해…)
일이 커지기 전에 얘기를 해야 되는데. 엄청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죄송한데 전 원조녀가 아니에요. 원조교제 한 번 한 적은 있긴 하지만… 아, 이 말은 필요없지. 아니… 그럼 아까 채팅방에서 한 건 뭔가. 장난이었다고 얘기하면 심하게 화를 내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우린 큰길로 접어들었다.
신호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아까 나를 치고 지나가던 목적지가 있는 사람들.
“아… 조,조심해요.”
“아…”
그가 나를 감쌌다. 내게 우산을 씌우고, 사람들의 물결을 막고 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까 내가 걷던 곳에서, 한 시간 남짓 지난 지금 난 혼자가 아닌 것이다. 그의 손이 스친 어깨가 불에 데인 듯이 뜨겁다. 애써 무심히 말했다.
“…친절하시네요.”
“아니, 뭘요.”
뭐, 뭐야.
그는 내 남친도 뭣도 아닌데.
원조교제를 목적으로 나온 중년스러운(?) 남자일 뿐인데.
왜 설레이는 거야…
하지만 아까의 비참한 산책에 비하면 지금은 머랄까. 훈훈하다.
적어도 이 순간, 내게는 목적지가 있다.
내가 따스한 분위기에서 깨어난 순간, 난 그와 함께 모텔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분위기에 휩쓸려 여기까지 와버렸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으면서 계속해서 되뇌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떨리는 손으로 몸을 닦고 대충 옷을 껴입으면서 생각했다.
관두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대학생이 씻으러 들어간 다음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어두운 집구석이 다시 떠오른다.
돌아가기 싫어.
전화 한 통 없는 걸로 봐선 아직도 엄마는 안 왔을 거야.
아니, 왔어도 신경도 안 쓸 걸…
좀 더… 좀 더 이 개운하고 포근한 느낌 속에 있고 싶어…
어둠 속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벌컥)
순간 눈이 떠졌다. 에혀, 이런 상황에서 자 버리다니.
대학생 오빠가 수건 한 장 걸치고 나오고 있다.
그럭저럭 봐 줄 만한 몸이다. 피부가 거의 나만큼 하얀 거 같은데.
“저기… 원래 돈 먼저 달라고 안 해요?”
와, 계속 존대말. 거기다 내 돈까지 챙겨준다. 그렇지. 난 지금 원조교제를 하고 있었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에, 맞다. 주세요.”
“…….”
대학생 오빠는 봉투를 내민다. 고지식한 것도 유분수지 봉투라니. 이런 상황에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다행히 그는 눈길을 피하고 있어서 내 웃음을 보지 못했다. 이것으로 계약 성립인가. 나는 체념하는 심정으로 봉투를 가방에 던져 넣었다.
엄마는 아직도 연락이 없다. 엄마, 엄마 딸 지금 원조하고 있어.
딸이 첨 만난 남자랑 자고 있다구!!
그의 손길이 다가온다. 아까 거리에서 날 감싸준 그 손길. 그게 내 어깨를 감싸안자 그 때의 떨림이 되살아났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가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묻는다.
“저기… 이름이…?”
“…….”
헉, 이름.
사실 난 이름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열나 쪽팔리는데… 웃을 텐데…
내가 말하지 못하고 주저하자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뭐, 나중에.
그는 조심스레 정성껏 내 몸을 매만졌다.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그의 손에 정신을 차렸을 땐 난 어느새 알몸이었고, 별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역시… 따뜻해…)
나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처음엔 잠깐만 참자는 생각에 질끈 감고 있던 것이었지만, 이젠 은은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갑자기 내가 입고 있었던 곰돌이 팬티가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우아 창피해.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행동이 내 머리 속의 곰돌이를 날려버렸다.
“…아?! 거기?! 더러워요!!”
그가 다리 사이로 입을 가져다 댄 것이다. 헉…
“아… 싫어… 이상해… 더러운데…”
“안 더러우니까 걱정 말아요.”
나는 수치심과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그럼…”
“…….”
얼마 후 그가 자신의 몸을 서서히 눌러왔다.
“하윽!!”
아, 역시 아프다. 아직도 난 사람들이 이 행위에 목매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종전까지의 좋은 분위기를 돌려줘!
그는 내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몸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것 같다.
“아…윽…”
“헉……”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 아…! 아……”
“억…헉헉…이제…”
나는 빨리 끝내주기만을 바라면서 고통의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크게 한번 경련하더니 동작을 멈추고 내 위로 쓰러졌다.
“하……아…”
“…헉…헉…”
와… 끝났다…
잘 참았어… 내 자신에게 부질없는 칭찬을 해 본다.
역시 아까 도망가는 편이 좋았을까? 난 왜 이 고생을 해야만 했을까?
그는 잠시 멈춰 있다가 내 몸에서 떨어지며 티슈로 내 몸을 닦았다.
부끄러웠지만 보드라운 손길에 몸을 맡겼다.
아픈 건 똑같지만 지난 번의 악몽과는 꽤나 다르네.
내 곁에 돌아와 누운 그가 팔을 뻗다 만다. 뭔가 망설이는 것 같다.
소심하긴. 이런 사람이 어쩌다 원조를 한다고 나섰을까?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그의 손을 잡아 내 어깨 위에 올렸다.
따뜻한 손.
아아, 난 이 분위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
뭔가 물어보고 싶지만 분위기가 너무 어색하다.
땀에 젖은 몸을 씻으러 일어났다. 아후. 가랑이가 진짜 쑤신다.
“저, 저기…!”
“……네...?”
그가 드디어 침묵을 깬다.
“내일 영화나 같이 보지 않을래요?”
“…….”
어쩌자는 거지? 이건 무슨 뜻일까?
원조교제 한 번 더 하자는 말일까? 그건 싫은데.
“뭐… 그러죠.”
일단 난 이 남자한테 궁금한 게 많다. 하지만 오늘은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군.
무엇보다 내일… 일요일이라고 해도 할 일도 없으니까.
그와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렇게 서로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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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었단다. 오늘부터 당분간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일은 없을 거야.”
“결국 그렇게 됐네요. 흥, 어차피 잘 뵙지도 못하던 분인걸요. 엄마도 마찬가지지만.”
“어쨌거나 너한텐 미안하게 됐구나.”
“하나도 안 미안하면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진짜 미안하면 이런 일은 없었어야죠!”
“아니 얘가…”
“왜 이런 얘길 전화로 해야 해요?! 정말 미안하면 두 분이 집에 와서 얘기하셔야죠!
흑… 난 뭐에요? 난 뭐냐구요?!!”
“…….”
“엄마도 아빠도 다 싫어! 싫다구요!!!!”
(쾅)
“흐윽… 흑…”
전화를 끊고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우리 집 개판인 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좀 너무들 한다. 오늘로 엄마랑 아빤 완전히 따로 살기로 한 것 같다.
남들이 부러워할 큰 집이지만 나한텐 귀신 나오는 집이나 다를 바 없다.
가정부 아줌마가 나 학교에서 올 때쯤 저녁 지어 놓고 나가버림, 이 큰 집에 남는 것은 나 혼자뿐이다. 엄마가 일찍 오셨을 때가 언제였던지 기억도 안 난다. 토요일인데도 엄만 회사에 가 있다. 엄마한테 중요한 건 일, 일뿐이다. 내가 딴 집 애들처럼 엄마한테 반말 못 쓰는 것도 엄마가 넘 차가워서일지도 모른다.
절대 용서할 수는 없지만, 아빠가 다른 여자랑 사는 것도 가끔 이해가 가기도 한다.
할머니, 할머니가 계실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언제나 날 따뜻하게 안아주시던 할머니.
(할머니… 보구 싶어… 흑… 흑…)
……
그대로 집을 나왔다. 집 안에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았다. 다리가 아파질 때쯤 정신을 차려보니 신촌이었다. 버스로도 예닐곱 정거장은 될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걸었나 보다.
토요일의 신촌은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행복해 보이는 남녀들이 많이 보인다.
아빠 엄마 별거했다고 무작정 걸어 나온 여고생은 나말곤 없을 거야.
인파에 치이면서 더욱 비참해졌다.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수시로 내 팔을 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난 불평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은 바쁘고,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나한테는 그 사람들을 욕할 권리가 없다.
괜히 또 눈물이 난다.
앗 차가워. 갑자기 목에 왠 물방울이… 아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우산을 펴들고 있다. 일기예보에 나왔나 보지.
아무 생각 없이 나와서 우산도 뭐도 없는 나. 낮에 좀 덥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11월. 셔츠 한 장 걸치고 나온 애한테 비까지 내리면 너무 가혹하다.
택시라도 타고 돌아갈까…
아니, 그 어둠 속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시 혼자 있긴 싫어.
어차피 지금 돌아가도 엄마는 없다.
그 어둠 속에 혼자 있느니 인파 속에서 무의미하게 걸어다니는 편이 좋아.
일단 비를 피해서 가까운 피시방으로 들어갔다.
새삼스레 싸이를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인터넷에서의 나 역시 거리에서처럼 무의미하게 이곳 저곳을 헤매고 있었다. 여전히 목적지는 없다.
네이버 뉴스 게시판에서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청소년 성매매 인사 공개’
몇 달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 아저씨도 이번에 명단에 올랐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아저씨들은 원조를 계속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얼마나 간 큰지 한번 볼까. 전에 들어갔던 채팅 사이트가 뭐더라.
‘신촌에서 소녀와 만나 주실 분’
…방제가 넘 노골적인가. 어쨌거나 어떤 간 큰 아저씨가 들어오나 한번 보자.
의외로 재미있네 이거. 원조교제 아저씨들 이름이 인터넷에 떴다는 기사 위에 뜬 원조교제 채팅방 창이라.
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젖은 머리를 가다듬었다.
(Soulstealer님 입장!)
“……!!”
말세도 유분수지. 방 만든지 10초도 안 지나서 굶주린 중년이 들어온다. Soulstealer? 왠 겉멋든 아저씨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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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stealer 안녕
소녀2 하이여
Soulstealer 혹시… 원조?
소녀2당3져
Soulstealer 얼마
소녀230
Soulstealer 좋아요. 신촌역 밑 버거킹 알죠?
소녀2네
Soulstealer 8시 정각에 그 앞에서 봐요
소녀2저기여
(Soulstealer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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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다. 돈 얘기도 한 마디도 안하고 장소랑 시간 정하고 나가다니. 난 어떻게 알아보려구? 하긴 그러니까 이런 때 원조하겠다고 들어왔겠지. 대한민국 중년 아저씨들의 성욕은 정말 대단하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잠깐 재미있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집에 갈까? 그렇게 하기엔 아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피시방 들어온 지30분 지났을 뿐이니까.
담배냄새가 너무 심하다. 빗줄기도 가늘어진 것 같고… 일단 나가자.
……
내 발걸음은 우산 속을 헤치고 신촌역으로 향하고 있다. 시간은 8시 10분 전.
원조교제를 또 할 생각은 없다. 거지 같은 기억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용돈이 아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엄마 아빠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웃기는 돈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명품을 좋아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브랜드에 목매는 주변 애들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부 만큼이나 욕망도.
이 어수선한 때 원조하겠다고 나서는 간 큰 아저씨 얼굴이나 한 번 보고 가야겠다.
맞다. 시침 뚝 떼고 그 응큼한 아저씨 면상에다가 망신이나 주고 올까.
마치 남친 기다리는 순진한 여고생이 억지로 치근대는 중년을 만난 것 처럼… ㅎㅎ 재미있을지도.
조금 있으면 닥칠 흥미진진한 상황에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뭐라고 쏘아붙이면 좋을까?
“…원조라뇨?”
아니 좀더 세게.
“아저씨 원조교제해요??!?”
으음… 뭔가 더 강력한 말이 필요해. 난 버거킹 앞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만지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아 와라… 추악한 중년이여!
“저기… 혹시…?”
“…?”
“그게… 여기서 8시에 만나기로 하신 분이세요?”
나의 시야에 들어온 하고많은 중년 아저씨들 대신에,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샤프한 인상의 대학생이었다.
“…?! 채팅한…오빠…예요?”
“……아, 예.”
이런, 이런, 이러~언!!!!!!!!!!!!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원조녀라는 걸 인정해버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난 애써 당황한 걸 숨기며 말했다.
“와, 이렇게 젊은 오빠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아니, 뭐… 고마워요.”
세상에, 원조교제하는 대학생도 있다니. 난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세상이 희한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근데 자세히 보니 나름대로 잘 생겼네. 키는 보통이지만.
이런 오빠가 뭐하러 돈 내고 원조를 할까?
“흐음…”
“…….”
눈길을 돌린다. 부끄러워하긴. 너무 뜯어봤나 보다. 남자를 수줍어하게 만들다니. 이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걸. 이쯤에서 그만 괴롭힐까.
난 좀 허탈한 느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데로 가요. 비도 오고…”
“아, 그러죠.”
불러냈으니 얘기 상대 정도는 해야겠지. 나도 어차피 갈 데도 없다.
“비… 맞고 왔어요?”
“네. 조금요.”
양친에게 버림받고 비 맞은 원조녀. 내 신세를 생각하니 새삼스레 비참해졌다.
처음 보는 남자의 기계적인 배려에조차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역 밖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그와 함께 우산을 썼다. 큰 우산이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내 쪽으로 쏠리게 잡고 있다. 뭐, 괜찮은 걸.
그는 굉장히 경직된 상태로 말없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같은 우산 속에서 난 자연스럽게 그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걸까. 스타벅스? 민토?
앗.
…순간적으로 난 내가 지금 원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행선지는 당연한 거 아닌가~?!!!
(말해야 해…)
일이 커지기 전에 얘기를 해야 되는데. 엄청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죄송한데 전 원조녀가 아니에요. 원조교제 한 번 한 적은 있긴 하지만… 아, 이 말은 필요없지. 아니… 그럼 아까 채팅방에서 한 건 뭔가. 장난이었다고 얘기하면 심하게 화를 내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우린 큰길로 접어들었다.
신호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아까 나를 치고 지나가던 목적지가 있는 사람들.
“아… 조,조심해요.”
“아…”
그가 나를 감쌌다. 내게 우산을 씌우고, 사람들의 물결을 막고 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까 내가 걷던 곳에서, 한 시간 남짓 지난 지금 난 혼자가 아닌 것이다. 그의 손이 스친 어깨가 불에 데인 듯이 뜨겁다. 애써 무심히 말했다.
“…친절하시네요.”
“아니, 뭘요.”
뭐, 뭐야.
그는 내 남친도 뭣도 아닌데.
원조교제를 목적으로 나온 중년스러운(?) 남자일 뿐인데.
왜 설레이는 거야…
하지만 아까의 비참한 산책에 비하면 지금은 머랄까. 훈훈하다.
적어도 이 순간, 내게는 목적지가 있다.
내가 따스한 분위기에서 깨어난 순간, 난 그와 함께 모텔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분위기에 휩쓸려 여기까지 와버렸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으면서 계속해서 되뇌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떨리는 손으로 몸을 닦고 대충 옷을 껴입으면서 생각했다.
관두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대학생이 씻으러 들어간 다음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어두운 집구석이 다시 떠오른다.
돌아가기 싫어.
전화 한 통 없는 걸로 봐선 아직도 엄마는 안 왔을 거야.
아니, 왔어도 신경도 안 쓸 걸…
좀 더… 좀 더 이 개운하고 포근한 느낌 속에 있고 싶어…
어둠 속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벌컥)
순간 눈이 떠졌다. 에혀, 이런 상황에서 자 버리다니.
대학생 오빠가 수건 한 장 걸치고 나오고 있다.
그럭저럭 봐 줄 만한 몸이다. 피부가 거의 나만큼 하얀 거 같은데.
“저기… 원래 돈 먼저 달라고 안 해요?”
와, 계속 존대말. 거기다 내 돈까지 챙겨준다. 그렇지. 난 지금 원조교제를 하고 있었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에, 맞다. 주세요.”
“…….”
대학생 오빠는 봉투를 내민다. 고지식한 것도 유분수지 봉투라니. 이런 상황에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다행히 그는 눈길을 피하고 있어서 내 웃음을 보지 못했다. 이것으로 계약 성립인가. 나는 체념하는 심정으로 봉투를 가방에 던져 넣었다.
엄마는 아직도 연락이 없다. 엄마, 엄마 딸 지금 원조하고 있어.
딸이 첨 만난 남자랑 자고 있다구!!
그의 손길이 다가온다. 아까 거리에서 날 감싸준 그 손길. 그게 내 어깨를 감싸안자 그 때의 떨림이 되살아났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가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묻는다.
“저기… 이름이…?”
“…….”
헉, 이름.
사실 난 이름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열나 쪽팔리는데… 웃을 텐데…
내가 말하지 못하고 주저하자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뭐, 나중에.
그는 조심스레 정성껏 내 몸을 매만졌다.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그의 손에 정신을 차렸을 땐 난 어느새 알몸이었고, 별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역시… 따뜻해…)
나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처음엔 잠깐만 참자는 생각에 질끈 감고 있던 것이었지만, 이젠 은은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갑자기 내가 입고 있었던 곰돌이 팬티가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우아 창피해.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행동이 내 머리 속의 곰돌이를 날려버렸다.
“…아?! 거기?! 더러워요!!”
그가 다리 사이로 입을 가져다 댄 것이다. 헉…
“아… 싫어… 이상해… 더러운데…”
“안 더러우니까 걱정 말아요.”
나는 수치심과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그럼…”
“…….”
얼마 후 그가 자신의 몸을 서서히 눌러왔다.
“하윽!!”
아, 역시 아프다. 아직도 난 사람들이 이 행위에 목매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종전까지의 좋은 분위기를 돌려줘!
그는 내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몸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것 같다.
“아…윽…”
“헉……”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 아…! 아……”
“억…헉헉…이제…”
나는 빨리 끝내주기만을 바라면서 고통의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크게 한번 경련하더니 동작을 멈추고 내 위로 쓰러졌다.
“하……아…”
“…헉…헉…”
와… 끝났다…
잘 참았어… 내 자신에게 부질없는 칭찬을 해 본다.
역시 아까 도망가는 편이 좋았을까? 난 왜 이 고생을 해야만 했을까?
그는 잠시 멈춰 있다가 내 몸에서 떨어지며 티슈로 내 몸을 닦았다.
부끄러웠지만 보드라운 손길에 몸을 맡겼다.
아픈 건 똑같지만 지난 번의 악몽과는 꽤나 다르네.
내 곁에 돌아와 누운 그가 팔을 뻗다 만다. 뭔가 망설이는 것 같다.
소심하긴. 이런 사람이 어쩌다 원조를 한다고 나섰을까?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그의 손을 잡아 내 어깨 위에 올렸다.
따뜻한 손.
아아, 난 이 분위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
뭔가 물어보고 싶지만 분위기가 너무 어색하다.
땀에 젖은 몸을 씻으러 일어났다. 아후. 가랑이가 진짜 쑤신다.
“저, 저기…!”
“……네...?”
그가 드디어 침묵을 깬다.
“내일 영화나 같이 보지 않을래요?”
“…….”
어쩌자는 거지? 이건 무슨 뜻일까?
원조교제 한 번 더 하자는 말일까? 그건 싫은데.
“뭐… 그러죠.”
일단 난 이 남자한테 궁금한 게 많다. 하지만 오늘은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군.
무엇보다 내일… 일요일이라고 해도 할 일도 없으니까.
그와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렇게 서로를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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