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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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져와 난 흡연실로 들어가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었다. 깊게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폐 깊숙이 빨아들여 내 뿜으니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그 먹먹함이 담배연기에 빨려 나가는 느낌이다. 연거푸 두 개비의 담배를 피우고서야 가슴이 진정되자 난 사무실로 다시 나왔다. 세면장에서 얼굴을 보니 눈자위가 벌겋게 되어있었다. 고개를 세차게 한번 흔들고 옛 기억들을 공중에 흩날리고서 바깥으로 나오니 여성위원장님이 앉아 있다. “아이고 위원장님이 이 시간에 웬일로요?”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박 비서님 심심하실까봐.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피곤하긴 요?” “눈자위가 벌건 게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 것 같으신데?” “아. 아닙니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 “제가 탈게요. 박 비서님도 드실 거죠?” “제가 언제 커피 담배 거절하는 것 보셨습니까?” “하긴 그러네요. 우리 박 비서님 커피는 몰라도 담배는 좀 줄이셔야 하는데.” “그게 쉽겠습니까. 포기했습니다.” “자. 드세요.”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무슨 일이세요?” “어제 보니 사무실에 먼지도 많고 해서 청소나 좀 하고 가려고요.” “어차피 당분간은 저 혼자 있는데 제가 알아서 할게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손님이라도 오시면?” “선거 진 정당에, 그것도 중앙당도 시당도 아닌 지역위원회 사무실에 누가 오겠습니까?” “아무튼요. 그런데 청라언니 사무실에 자주 나오세요?” “요즘 갑자기 이따금 나오십디다.” “나와서 뭐하고 있어요?” “그냥 게임이나 하다가, 뜨개질도 하고 그러다 가던데요.” “박 비서님 오해하실 수 있겠지만 이 말씀 드리려고 오늘 온 거예요.” “무슨?” “그냥 청라언니 조심하세요. 소문이 별로 좋지 않거든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서울 올라가신 서 비서하고 좀 좋지 않은 이야기가 있어서요. 박 비서님이야 워낙 정치판 생활을 오래하셨으니 잘 알아서 하겠지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결국 멍청하게 나만 몰랐었던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이 정치판만큼 말이 많은 곳이 없는데 그것을 주위에서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조만간 나에 대해서도 내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뒷말이 돌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그 또한 내가 책임져야 할 짐일 뿐. 여성위원장님은 한 동안 여러 가지 지역에서 있었던 일들과, 후보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걱정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무실을 떠났다. 청라에 대한 이야기만 아니었더라면 편한 마음으로 저녁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보냈어야 했는데 지은 죄가 있는 내가 뻔뻔하게 여성위원장님 앞에서 웃으며 밥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여성위원장님이 사무실을 떠나고 한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나 역시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을 나서 차에 올랐지만 집으로 가기에는 마음이 답답했고, 그렇다고 마땅하게 갈 곳이 없었다. 결국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고속도로에 올렸다. 아무생각 없이 밟은 고속도로는 경주를 지나고 대구를 지나 결국 상주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랜턴을 꺼내 산을 올랐다. ‘잘 있었냐? 내가 너무 오래 당신을 보러 오질 못했네.’ ‘.....’ ‘당신도 잘 알겠지만 애들 다 잘 살고 있어. 오늘 민영이 전화 받고 당신 생각이 많이 나더라. 당신에게 미안해. 내가 조금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 ‘그냥 여기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거기서 잘 살고 있어. 바람 피워도 나중에 안 따질 거니까 마음에 맞는 놈 있거든 바람도 피우고 살고. 알았지?’ “거기 누구요?” 갑자기 누군가 내 얼굴을 향해 랜턴을 비춘다. “혹시 박 서방인가?”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이 사람아. 이 밤중에 여기까지는 뭐 하려고?” “어쩌다 보니 오게 되었습니다.” “내려가세.” “아뇨. 잠시 여기 있다가 부산 가야죠. 형님께선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못 보던 차가 있기에 누구 차인가 하다가 산에서 불빛이 비치기에 올라와 봤네.” “예. 죄송합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하나. 아직까지 지은이를 잊지 않고 여기까지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고마운데.” “제가 지은이를 좀 더 잘 돌봤어야 했었는데.” “아니 자네는 할 만큼 했네. 사람 목숨이야 하늘에 달린 건데. 지은이도 자네에게 고맙게 느낄 걸세.” 조용히 지은이만 만나고 가려다 형님에게 들켰다. 내 손을 억지로 잡아끄시는 것을 밤중에 내가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괜한 불편만 끼쳐드릴 것 같아 형님의 손을 뿌리치다시피 하면서 상주를 떠났다. 고속도로 입구에서 담배를 한 개비 피우고서 고속도로에 올랐다. 지은이를 만나고 온 기분 탓인지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 진 느낌이었고 부산으로 오는 길은 편안했다.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서니 여성위원장님과 청라가 함께 와 있었다. “아이고 두 분 아침 일찍 웬 일들 이십니까?” “아. 집에서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출근하려고요.” “위원장님께서 출근하시겠다면야 저야 편하고 좋지만......” “저도 매일 나와도 되죠?” “당원이 지역위원회 사무실에 나오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그럼 저도 매일 사무실에 나올래요.” 분위기가 ‘싸~’하다. 여성위원장님은 청라의 행동에 대해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었다. 나름 청라를 견제하기 위하여 사무실 출근을 강행하실 모양인데 한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둘 사이에서 곡예를 벌여야 할 생각에 피곤함이 몰려온다. “박 비서님 커피 드실래요?” “예. 땡큐~ 합니다.” 여성위원장님이 커피를 두잔 타서 내 자리로 가지고 와 내 옆에 앉으신다. 청라에게는 묻지도 않고. “박 비서님 그제 얘기하던 당원확보문제 신경 좀 써야 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전 별 내키지 않습니다. 어차피 명단뿐인 당원 숫자가 많아봐야 무슨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당에서는 요구하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 후보경선 전에 각 후보들이 알아서 명단을 뭉텅이로 들이밀 거고 그러다 자칫하면 엉뚱한 사람이 후보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 그런데 또 그 일을 하려면 당직자들이 고생을 하셔야 하니 그게 걱정이지요.” “당직자들 걱정은 왜 하세요. 당직자들이 그런 일하기위해서 있는 건데요.” “그래도 그렇죠. 예전에야 상근하시는 분들에게 월급이라도 나갔지만 요즘은 아예 그것조차 되지 않으니, 솔직히 출근하시는 것조차 전 부담이 됩니다.” “아무튼 전 앞으로 매일 출근할거니까 박 비서님은 신경 쓰시지 않아도 돼요. 아셨죠?” “위원장님께서 출근하시겠다는데 말릴 방법도 없고, 말려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여성위원장님의 속내를 알만은 했다. 당원명단 확보야 지금당장 해야 할 시급성이 없는 일임은 누구나 뻔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그 속을 왜 짐작하지 못하겠는가? 여성위원장님과 청라 사이에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었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선 여사님 가시려고요?” “예.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언니 잘 가세요.” “그럼 선 여사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 여성위원장님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청라가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심 불편하기도 했으리라. 청라가 사무실을 나간 후 여성위원장님은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무언가를 뒤적이고 있었고, 난 나대로 해야 할 일을 찾아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위원장님 점심식사나 하러 가시죠?” “예.” “혹시 선 여사님 하고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은요. 그냥 제가 언니에 대해 좀 많이 알고 있으니 언니가 불편해하는 거죠.” “그게 무슨......?” “언니 욕심 엄청 많은 사람이니 알아서 잘하세요.” “제가 잘하고 못하고 할 일이 있겠습니까?” “언니가 박 비서님 혼자계시는 사무실에 저렇게 나올 때는 다 이유가 있어요. 지금은 요가를 하러 가거나 절에 올라가야 하는 시간인데.” “요가요? 그런 것도 해요?” “예. 여자들 몸매 관리한다고 하는 요가 프로그램이 있어요?” “아. 전 인도 사람들 하는 그 요가인 줄 알았더니.” “그냥 자기 멋에 하는 것일 수도 있죠. 웬만한 규모 아파트 앞에는 다 한둘씩은 있으니까요. 그냥 헬스 하러 다니는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원래 좀 있다고 하면서 사는 여자들 낮에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커피숍에 모여 앉아 수다 떨고, 요가를 하러 가거나 마사지 숍에 가서 시간 때우고 그러잖아요.” “팔자 좋은 사람들이네요. 병원비 없어서 아파도 병원에도 못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세세상인데. 그렇게 어울리려면 한 달에 그 비용도 제법 나갈 건데 그 신랑들 웨만큼 돈 벌어 와서는 힘들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하고 어울리면 어쩔 수 없어요. 한번 그런데 발 들여놓으면 그 다음에는 그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못하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나름 신분이 상승되었다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들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저 양반들보다 좀 더 잘살아도 그렇게는 하고 살지는 않던데.” “아무튼 언니는 허영심이 좀 많은 편이거든요. 박 비서님도 유혹하려 할 거예요.” “저 같은 놈을 유혹해서 어디 써 먹으려고……. ㅎㅎ” “그냥 ‘나 이런 사람을 사귄다.’ 그런 거죠.” “유부녀가 그런 걸 자랑하고 다녀요?” “여자들끼리는 애인 자랑 많이 해요.” “와~ 그거 정말 어리석은 행동인데.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무슨 뒷감당을 해요?” “바람을 피우려면 비밀이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친구들에게 발설하면 비밀이 유지가 되나요?” “친구끼리인데 뭐가 걱정이에요?” “친구는 입 없답디까?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래도 사내는 내 뱉지 말아야 할 말은 숨기고 가는데 여자들이 흥분하게 되면 아예 끝까지 가게 되니까 비밀을 지키기 힘들어요. 그래서 아무리 친해도 친구들에겐 자신의 결정적 약점은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무튼 박 비서님은 언니에게 넘어가지 않으실 거죠?” “선 여사가 저를 꼬드길 이유도 없습니다. 백수에다 얼굴도 못생기고 돈도 없는 걸 뻔히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걱정하시지 마세요.” “그렇지만 여자들은 달라요. 돈 많고 잘생긴 남자들이야 자기가 예쁘면 얼마든지 유혹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고 그만하지요. 그런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서.” 여성위원장님은 내가 청라의 유혹에 넘어갈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밥을 먹는 시간 내내 청라에 대한 이야기가 그 대부분을 차지했다.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를 정리한 후 난 여성위원장께 사무실을 부탁하고 나왔다. “아빠 안녕하셨어요?” “응. 민지도 잘 지내고 있지?” “네. 우리 딸 뭐 마실래?” “커피요.” 오랜만에 민지를 만났다. 거의 두 달 만이다. 지은이를 보내고 난 이후에 이따금 집에는 들렀지만 혜진이의 존재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여 거리를 두기시작하자 자꾸 그 기간이 길어져 가고 있었고, 이젠 민지나 윤희의 전화를 받기 이전에는 아예 찾아갈 생각조차 잊고 사는 그런 나날들이 되었다. 윤희나 민지에게는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일인데. “엄마는 요즘 어떻게 지내?” “그걸 제게 물어보시면 어떻게 해요. 아빠가 직접 물어보셔야지.” “하긴 그렇긴 하네. 아무튼 집에 별일은 없지?” “예. 언니가 어제 전화 드렸다면서요?” “응.” “아빠는 저희들이 불편하세요?” “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린 가족인데.” “그런데 요즘은 집에도 잘 안 오시고.” “아빠가 바빠서 그래.” 민지와 커피를 마시고, 민지 학교로 가서 캠퍼스도 함께 거닐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민지도 이제 다 큰 처녀티가 확연했다. “민지는 사귀는 남자친구 없어?” “예. 아직은 없어요.” “이렇게 예쁜 놈을 왜 그냥 혼자두지? 이 학교 사내들 전부 시력검사 다시 해봐야 하는 거 아냐?” “아뇨. 전부 애들 같아서 시시해요.” “임마. 니 나이 또래가 다 그렇지.” “그래도요. 나중에 아빠 같은 남자 나타나면 그때 인사 시켜드릴게요.” “아빠 같은 놈 만나면 안 돼. 키도 크고, 얼굴도 좀 생기고, 앞으로 비전도 있어야지.” “피~ 아빠가 어때서요? 일단 전 아빠처럼 마음씨 착한 남자를 만날 거거든요.” “요즘 세상에 마음만 좋아선 굶어죽는다. 일단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남자 중에서 우리 민지를 아껴주고 사랑해줄 그런 남자를 찾아야지. 차 서방 같은 남자 있나 잘 살펴봐라.” “형부는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어요.” “아무튼 일단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남자를 찾아야 해.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라면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법이거든.” “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중에 아빠 질투나 하시지 마세요.” “우리 딸이 신랑감 데려오는데 아빠가 질투를 왜하냐?” “피~ 전에 형부 좀 미워하시는 것 같으시던데.” “이놈 봐라. 아빠 놀릴 거야?” 민지와 캠퍼스를 걷다가 강의시간이 되어 강의동 입구까지 데려다 준 후, 학교를 빠져나왔다. 건축 공학과를 선택한 민지의 결정이 의아했지만 어쩌면 세심한 민지의 성격에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남자들이 대부분인 학과에서도 민지는 씩씩하게 잘 버텨내고 있었다. 학기말 성적표를 봐도 괜찮기도 하고, 후일 학교를 졸업해서 건축기사 자격증을 따고,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후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다면 웬만큼 밥벌이는 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민지에게도 어울릴 그런 일이 될 것이다. "자기 어디야?" "장전동인데." "바빠?" "바쁜 일은 없고. 무슨 일 있어?" "아니 오늘 자기 봤으면 해서." "왜 땡겨?" "그것도 있고." "알았다. 어디서 볼래?" "내가 전철타고 그리로 갈게." 그럼 연산동 역에서 내려. 거기쯤이면 비슷하게 도착할거니까." "응." 연산동에 도착해서 차를 골목에 세우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내가 위치를 알려주자 골목으로 찾아왔고 난 그녀를 태우고 토곡으로 향했다. 로터리 주변은 아는 사람들과 맞부딪힐까 그것도 걱정이 되고 별로 깨끗하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기에.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옷을 벗어젖히고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자기 들어와." "아니 당신 씻고 나오면 들어갈게." "피~ 남자가 뭐 그래. 들어와." "그냥 씻어. 나 담배 한 대 피우고 올 테니까." 도대체가 이번이 두 번째인데 부끄러움조차 보이질 않는다. 진짜 내가 대단한 선수에게 걸린 느낌이다.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니 그녀는 시트로 몸을 가리고 앉아있었다. 나도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자기 전화~" "응. 금방 나갈 거니까 그냥 둬~" 난 후다닥 씻고 대충 몸을 닦으면서 문을 열었다. "예. 박 진호입니다." "OO동 사는 김 형철이라고 하는 사람 안사람인데요." "예. 사모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저희 남편이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해요." "무슨 일로요?" "모르겠어요. 무슨 집시법 위반이 어쩌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어느 경찰서랍니까?" "부산진 경찰서요." "예.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 형철이라면 지난 영도에서 자주 만났던 인물이다. 특별히 집시법 위반 운운할 일이 없는데 무슨 이유로 연행이 되었는지? 난 시경 정보관에게 일단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냈다. "각하! 박 진홉니다. 추~웅~성!!!" "아따~ 또 무슨 일 있으십니까? 갑자기 이러시는 것을 보니." "진서에 김 형철이란 양반이 임의동행인지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고 일단 확인 좀 해봐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 그렇지. 박 비서님 저 난리 치실 때 알아 봤습니다. 일단 서로 가실 거죠?" "예. 가봐야죠." "그럼 제가 담당자 확인하고 부탁은 해놓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충~성!!!" "마 됐습니다. 충성은 무신." "암튼 잘 부탁드립니다."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다시 나가야겠다." "무슨 일인데?" "지역구민 하나가 경찰서에 구인된 모양이야. 아마 지난 번 영도 H중공업 때 문제 때문인 것 같은데 가봐야 알지." "자기가 꼭 가야해?"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가?" "그냥 전화 해줬으면 끝난 거잖아." "전화만 해주면 끝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좋겠다. 하지만 그 가족들 생각해봐. 갑자기 집안의 가장이 회사에서 일하다가 잡혀갔다는데 얼마나 놀랬겠어." "그게 자기랑 무슨 상관인데?" "당신 그 말은 좀 심하다. 내가 정치판에 있는 이유가 뭔데? 정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있는 거야. 배지를 단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럼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 나는 뭔데?" "미안해. 내 입장이 그런데 어떻게 하냐. 당신이 나를 좀 봐줘라." "……." 한참을 설득하여 그녀를 일으켜 옷을 입히고 모텔을 나섰다. 그녀와 함께 경찰서를 찾을 수 없는 노릇이기에 후다닥 그녀의 아파트에 그녀를 데려다 주고 경찰서로 향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채 형사님이 어느 분이십니까?" "어디서 오셨습니까?" "예. OO당 OO구 OOO님 사무실의 박 진호라고 합니다." "아~. 그러지 않아도 허 정보관 전화를 받았습니다. 김 형철 씨 건으로 오셨지요?" "예. 갑자기 구인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아서요." "일단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했습니다." "영도 건 때문인가요?" "예. 맞습니다." "아직 그 건이 남아있었나 보네요. 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김 형철씨 같은 경우에는 사안이 좀 그렇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가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당시 해동병원 집회당시 전경버스를 손괴한 혐의가 포착되었거든요." "혹시 저도 영상 확인이 가능합니까?" "예. 얼마든지요. 여기 보세요." 담당형사인 채 형사는 자신의 노트북에 영상을 올렸다. 거기엔 차벽 앞으로 달려가 전경버스를 흔들고 있는 시위대가 있었고, 김 형철 이사람 역시 그 속에 포함된 사실이 확실히 보였다. 증거는 이로써 충분한 셈이다. 여기에다 이전의 행적들을 찾아서 더 한다면 자칫 벌금형이 아닌 실형을 언도받을 가능성도 충분할 것이니까. 한숨이 나왔다. "채 형사님 담배는 태우십니까?" "형사가 담배 안 피우고 형사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나가서 담배나 한 대하고 오시죠."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휴~ 허 정보관 전화를 받고 저도 답답합니다. 우리도 실적은 잡아야 하고, 그렇다고 허 정보관과 모르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편리 좀 봐주세요. 이미 끝이 나다시피 한 사건이고, 지금 저 양반도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 열심히 먹고살고 있잖습니까." "제가 봐주고 말고 할 게 있습니까? 어차피 법대로 할 뿐인걸요." "아이고 잘 아시면서 그러십니다. 제가 후일 꼭 오늘 이 빚 갚을 테니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채 형사님 조서 쓰기에 달린 일이잖습니까. 선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허 정보관 전화만 아니었더라도……."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증거가 나온 이상 무혐의는 불가능합니다. 벌금형은 감수 하셔야 합니다." "예. 그거야 당연하지요. 아무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잘 되시면 제 부탁도 좀 들어주셔야 합니다." "잘 된다면 분명 그 빚은 갚아 드려야죠. 언제 날 잡아서 허 정보관님과 함께 식사나 한 번 하시지요." "예. 연락 한번 주세요." 아무튼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조서를 쓰고 나면 김 형철씨는 방면 될 것이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니 생업에는 지장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난 채 형사님의 양해아래 잠시 김 형철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를 안심시키고 사무실을 나왔다. "박 진호입니다. 어디 계십니까?" 내가 전화를 하자 김 형철씨의 부인은 자신의 아들과 함께 경찰서 현관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하긴 일반서민에게 경찰서란 장소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으리라. 일단 현관에서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거기에서커피를 사서 그들에게 내밀고, 자리에 앉혔다. "박 진호입니다." "예. 비서님. 저희 남편은요?" "그렇게 크게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담당형사님과 이야기가 잘되었으니 걱정 마세요." "정말요? 그럼 감옥은 안가도 되는가요?" "예. 벌금형은 받으셔야 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한 일이 뭐 있나요? 나중에 조서 다 쓰면 나오실 테니 그때 담당형사님께 고맙다고 인사나 하세요." "예. 비서님 정말 고맙습니다." "30분쯤은 걸릴 거니까 밖에 계시지 마시고 여기 그냥 계세요." "예. 비서님은 가셔야 되죠?" "아뇨. 나오시는 것 보고 가야죠. 담배나 피우러 가려고요." "예." 난 그들 모자를 식당에 앉혀둔 채, 매점으로 가서 음료수를 두 박스 샀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 채 형사님 앞에 내려놓았다. "뇌물입니다. ㅋㅋ" "아이고 비싼 뇌물 가지고 오셨네요." "김 형철씨 부인께서 드시라고 건네주십디다." "전 박 비서님께 받은 겁니다." "넵!" 난 박스를 뜯어 사무실에 있는 형사들의 책상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하나씩 음료수를 나눠드렸다. '채 형사 잘 마실게.' '아이고 고맙습니다.'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인사를 던지며 모두가 캔을 뜯는다.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덕분에 피의자로 구인된 김 형철씨도 마음이 좀 놓이는지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감돈다. 잠시 후 피의자 심문조서 작성이 끝이 나고, 그것을 김 형철씨와 내가 함께 검토를 마친 후 김 형철씨가 조서에 손도장을 찍으면서 모든 서류업무가 끝이 났다. 내가 김 형철씨를 인도하여 식당으로 내려오자 그때서야 김 형철씨 부인과 아들이 그에게 달려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비서님 고맙습니다." "아뇨. 제가 한 일 별로 없습니다. 일단 조서도 김 선생님에게 별로 불리하지 않게 작성되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일단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은 받게 되실 것이지만 검찰에 가셔도 오늘 진술하신 정도로만 진술하시면 벌금형으로 마무리 될 것이니까 크게 걱정하지 마세요." 김 형철씨와 부인, 그리고 아들을 다시 사무실로 올려 보냈다. 인간적인 면이 필요한 시간이었으니까. 사무실에서 나온 그들의 얼굴은 밝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후일 나올 벌금형이야 그들이 감내할 몫이지만 단 얼마간이라도 인신구속을 당하지 않고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들에겐 중요한 일이었으니 오늘 저녁은 식구들끼리 모여 오붓하게 삼겹살 파티라도 벌이는 것도 괜찮은 일이리라. 저녁을 같이하자는 그들의 청을 뿌리치고 난 경찰서를 떠났다. 그들 덕분에 난 오늘 밥값을 하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거들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는 임의동행자 신분에서, 이미 경찰 자체적으로 수집한 증거를 기초로 하여 영장을 청구하게 되면, 그 순간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변호사 비용만으로도 충분히 그 벌금 이상의 금액을 지출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내가 그들에게 밥 한 끼 얻어먹지 않았어도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한 보상이 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표를 얻기 위해서라도 이런 종류의 민원을 고맙게 여겨야 하는 내 신세이니……. 아무튼 뿌듯한 기분으로 경찰서를 나서면서 허 정보관에게 전화를 했다. "충~성!!!" "일 잘 해결되셨습니까?" "각하 빽 믿고 씩씩하게 해결했습니다." "아따~ 자꾸 와 그러십니까. 아무튼 잘 해결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채 형사님하고 잘 아시는 사이셨던 모양입니다." "예. 입문 동기거든요." "아무튼 덕분에 구속을 면했습니다. 날 잡아서 제가 저녁이나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채 형사님하고 시간 한번 맞춰주세요." "우리 박 비서님 저녁 얻어먹다가 체하면 우짭니까?" "놀리지 마시고요. 아무튼 오늘 덕분에 후련합니다." "암튼 언제 한번 뭉치지요." "예. 꼭 연락 주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허 정보관과 통화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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