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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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 그대를 만나기 전...
덜컹거리는 긴 숨을 토해 놓으며 기차가 산인역에서 정차한다.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무심한 시선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새삼스레 무료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동안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의 시선은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있는 승객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나와 연고가 없는 그들은 어느 누구도 나의 무심한 눈길과 마주치지 않고 사라지고 있다.
내 시야에는 온통 낯선 사람뿐이라는 사실에 마악 고개를 돌리려는 바로 그때, 그들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져 혼자 걷고 있는 여인이 시선에 들어왔다.
순간, 나의 무료함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옆모습밖에 볼 수 없으나 그 여인은 틀림없이 박순애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열차의 차창을 마구 두드렸다. 그러나 차창의 유리가 너무 두꺼워 전혀 나를 알릴 수가 없다.
더구나 창을 열 수 없도록 아예 통유리로 끼워져 있어, 그저 마음속으로 부르짖기만 해야 했다.
기차는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이제 그녀의 뒷모습만 간신히 볼 수 있게 돼 버린다.
순간, 나는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나 뒷칸으로 계속 뛰어갔다.
그러나 열차가 제 속도를 내는 바람에, 그저 창 밖 풍경이나 망연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열차 승무원의 조작에 의해 수동으로 개폐되는 출입문이 아니었다면,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렸을 것이다.
자리로 다시 돌아온 나는, 순애의 출현을 안타까워하며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오랫동안 품고 있어야 했다.
조금 전의 현실은 나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매정하고, 잔인했다.
순애가, 순애가... 왜, 왜, 거기에 있는 것인가.
그제사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하지만 절대 그럴리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과 4 년 동안이나 살을 맞대고 살아온 아내를 몰라 볼 수가 있을까.
어쩌면 영영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그 낮선 도시에서 발견되다니....
분명 순애는 항도 한복판에서 나와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장면이 있어야하는데, 전혀 엉뚱한 장소에서 마치 꿈의 모습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느듯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열차는 힘을 쏟아 내달린다.
나는 긴 한숨을 토하며 눈을 감았다.
순애가 꼬옥 닫힌 내 눈꺼플을 열고 들어선다.
그 황금빛 말쑥한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옷깃을 세운 채 돌아선 뒷모습. 나는 도리질을 치며 순애를 내몰았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고 내 머릿속에서 걸어가고 있다. 회한과 함께 진하디 진한 그리움이 차례로, 나의 가슴속을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 * * *
회상의 수레바퀴는 8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 멀리 도심의 휘황한 불빛 너머로 자연의 파노라마가 시작되는 얕으막한 언덕이 보인다.
밤 하늘을 수 놓은 별빛이 하나, 둘, 희미하게 비치는 숲속.
반보다 조금 더 부풀어 오른 달이 고즈늑한 그 곳에 마치 고래등처럼 웅크리고 있는 고루 거각들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자리잡고 있다.
요정 <자미정>
이제는 현대적인 유흥문화에 밀려 사양길을 걷고 있는 요정 자미정,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유서깊은 전통 때문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조금은 이른 시간에 이곳 자미정에 왔었다.
힘들게 반입한 물건들이 제대로 처리되자, 공철주 형님이 크게 한턱 낸다고 내게 사전예약을 지시했다.
예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주머니에 돈 있다고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일반적인 술집이 아니었으니까.
음식준비 때문에 하루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둬야한다.
그 동안 세월따라 변화가 많았지만 요리와 함께 무제한 제공되는 주류를 아직도 전통주로 고집하는 고루함. 그리고 무늬 뿐이지만 기생 흉내를 내는 여자들이 시중을 든다는 것은 아마도 마지막 남은 요정의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
임금님 잔칫상에 버금가는 40 여 가지의 산해진미, 해묵은 백화주, 떡 벌어지게 차려진 교자상을 마주한 우리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들을 한 사람씩 꿰차고 부어라, 마셔라, 노래 불러라, 춤을 춰라, 난리법석을 떨어댔다.
형님 시중은 월선 누나가, 내 곁에는 평소 자미정에서 콧대 높기로 유명한 설향 누나가 앉았다.
이화 누님(마담)은 인사치레만 하고는, 내게 눈화살을 몇 대 쏘아주고 나갔다.
"술맛 떨어지게, 눈치는 주고 그래..."
장고춤, 부채춤, 가야금 병창에 흘러간 노래들, 신세대는 취향에 맞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근사근 술 시중을 들어주고, 조근조근 말 대답을 해주는 아리따운 기녀와 향기 그윽한 백화주를 마시며, 마치 그 옛날 어느 한량처럼 풍류를 즐기는 기분도 나름대로 과히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술이라면 넌더리가 날 설향 누나에게 잔을 권하는 대신 내 입으로 털어넣는 술잔의 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졌다.
내심 작정을 하고 일부러 그렇게 마신거다.
묵묵히 술잔만 비우고 있으니 설향 누나가 내 옆구리를 콕! 꼬집는다.
“왠일이래? 날나리 건달이 오늘은 얌전히 술잔만 붙들고 있구...”
“날나리 건달이라니?”
“그럼 아냐? 아무리 자미정이 기울어진 달이지만, 손에 피나 묻히고 다니는 패거리들 술판에 이게 뭐야? 자존심 상하게 바람둥이 애숭이 술잔이나 치고 있으니...”
설향누나는 무언가 꼬인 게 있는 듯 내 옆에 찰싹 붙어앉아 비위를 슬슬 긁어왔다
철주 형님은 한복을 입은 월선 누나를 껴안고 블루스를 춘다고 비척거린다. 갓쓰고 말 탄 꼴이지만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자존심 세우고 콧대만 높이니 단골 손님이 줄어들지. 근데 .바람둥이라니? 누나가 봤어?”
“입술에 침이나 묻히시고 시치미를 떼시지...소문 다 났더라”
“소문이라니? 내가 여기 발걸음 하지않은 게 삼개월이 다 되는데 무슨...”
“흥, 소혜... 그 기집애 밖에서 만났다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맞기는 맞나 보다.
“그, 그건...우연히, 그래 우연히 온천 입구에서 만났는데 마침 저녁시간이고 해서 밥 한끼 얻어 먹었어...뭐, 그게 잘못된 거야? 바람둥이라니...”
“잘 한다. 그래...어디 얻어 먹을데가 없어서어린 기생년 속주머니를 털어, 내 잔도 채워줘, 혼자만 마시지 말구...”
“아, 씨...내가 낸다는 걸 지가 밥값 내는데 그럼, 도루 물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티각태각하는 와중에 철주 형님이 노래를 부르라고 성화다. 분위기에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대학가요제 입상곡 하나를 신명나게 불렀다.
여흥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누나의 술잔을 다시 채워주면서 은근하게 사인을 보냈다.
이미 알딸딸하게 취기는 올라있었고, 방은 시끄러우니 잠깐 바깥에서 할 애기가 있다고 반쯤 마시고 남은 술을 내 셔츠 앞자락에 슬그머니 쏟아 붓고는 화장실 가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일행들은 여흥에 빠져 누가 나가는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온 나는 담배를 빼 물다말고는 얼른 화장실 세면대로 달려갔다.
가르르 입가심을 하고는 대충 지퍼만 열고 끄트머리를 물에다 씻었다.
약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곳을 벗어난 나는, 때마침 방에서 나온 설향 누나를 사정없이 난짝 들어 안아버렸다.
“얘가, 미쳤어? 이거 안 내려...푸흡!”
소리치려는 누나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무엇으로? 그래, 그거다.
하필이면 그때, 다른 손님들을 배웅하고 별채쪽으로 들어오던 이화 누님이 우리를 발견했나보다.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쳤지만 나는 술에 취한 척, 아예 못 들은 척, 후원으로 통하는 작은 출입문으로 쏘옥 숨어버렸다.
“하~흐읍! 숨 막혀...이 자식아...!!”
“어?...미, 미안”
설향 누나가 내 목덜미를 움켜쥔 채 두 다리를 버둥거려, 나는 그제서야 누나의 입술을 해방시켜 주었다.
*********
눈에 익숙한 장짓문을 밀치자, 화라락 일렁이는 촛불의 긴 그림자.
"사람도 없는데 불은 켜져있네..."
고향에 돌아온 듯 안온함이 물씬 묻어나오는 그 방에는 이부자리까지 펼쳐져있다.
설향누나를 던지다시피 그 곳에 내려놓자 풀썩 소리가 난다.
“아퍼. 아야...너! 이 나쁜....”
“.............”
나는 술김에 콧대높은 설향누나를 겁탈하려는 것이다.
밀치고, 발로 차고, 몸을 웅크리고, 누나는 고사리같은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마구 두드렸지만, 나는 일체의 불필요한 동작을 배제한 채 곧장 얼굴을 묻어갔다.
두어 번 도리질치는 누나의 얼굴을 와락 가슴패기 안으로 끌어당기며 한 손으로 저고리 고름을 풀렀다.
사르륵 천과 천이 스치는 부드러운 소리. 젖가슴위로 단단하게 동여 매어진 치마끈.
한 손을 등 뒤로 밀어넣으며 더욱더 누나의 얼굴을 가슴팍으로 끌어안았다.숨막혀 반항하지 못하도록.
80근(1근은 600 그램)될 듯 말 듯한 여자가 130근 나가는 남자 힘을 어떻게 당하나? 벌떡거리는 누나의 심장박동이 내 가슴에 느껴졌다.
가늘고 긴 목덜미를 따라 나는 입술로 궤적을 그리며 치맛단이 풀러져 뽀얗게 드러난 젖무덤이 반쯤 눈에 들어올 때 압박시켰던 힘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하아, 하아, 헉!”
가쁜 숨결을 토해내던 누나의 입에서 짧고 강한 한마디 신음성이 터졌다.
껍질 벗긴 사과를 반으로 쪼개 엎어놓은 듯한 유방, 정점의 알맹이는 물에 불린 대두알 보다도 작았다.
얇은 속치마 밑으로 한 손을 넣어 밀가루 반죽처럼 보들보들 말랑말랑한 허벅다리를 손가락 더듬이로 촉수를 세워 슬금슬금 쓸어올리며 오디같이 오돌토돌한 젖꼭지 하나를 입술끝에서 발딱 일으킨 것 같은데, 왼쪽에 있는 또 다른 유두를 혀끝으로 맛을 보기도 전에 나는 힘없이 한쪽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움찔거리던 누나의 아랫도리 어느 부분에 여전히 나의 한 손이 깊이 들어가 있는 채,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고있는 자세로 누나의 가슴위에서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덜컹거리는 긴 숨을 토해 놓으며 기차가 산인역에서 정차한다.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무심한 시선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새삼스레 무료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동안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의 시선은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있는 승객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나와 연고가 없는 그들은 어느 누구도 나의 무심한 눈길과 마주치지 않고 사라지고 있다.
내 시야에는 온통 낯선 사람뿐이라는 사실에 마악 고개를 돌리려는 바로 그때, 그들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져 혼자 걷고 있는 여인이 시선에 들어왔다.
순간, 나의 무료함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옆모습밖에 볼 수 없으나 그 여인은 틀림없이 박순애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열차의 차창을 마구 두드렸다. 그러나 차창의 유리가 너무 두꺼워 전혀 나를 알릴 수가 없다.
더구나 창을 열 수 없도록 아예 통유리로 끼워져 있어, 그저 마음속으로 부르짖기만 해야 했다.
기차는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이제 그녀의 뒷모습만 간신히 볼 수 있게 돼 버린다.
순간, 나는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나 뒷칸으로 계속 뛰어갔다.
그러나 열차가 제 속도를 내는 바람에, 그저 창 밖 풍경이나 망연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열차 승무원의 조작에 의해 수동으로 개폐되는 출입문이 아니었다면,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렸을 것이다.
자리로 다시 돌아온 나는, 순애의 출현을 안타까워하며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오랫동안 품고 있어야 했다.
조금 전의 현실은 나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매정하고, 잔인했다.
순애가, 순애가... 왜, 왜, 거기에 있는 것인가.
그제사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하지만 절대 그럴리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과 4 년 동안이나 살을 맞대고 살아온 아내를 몰라 볼 수가 있을까.
어쩌면 영영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그 낮선 도시에서 발견되다니....
분명 순애는 항도 한복판에서 나와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장면이 있어야하는데, 전혀 엉뚱한 장소에서 마치 꿈의 모습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느듯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열차는 힘을 쏟아 내달린다.
나는 긴 한숨을 토하며 눈을 감았다.
순애가 꼬옥 닫힌 내 눈꺼플을 열고 들어선다.
그 황금빛 말쑥한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옷깃을 세운 채 돌아선 뒷모습. 나는 도리질을 치며 순애를 내몰았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고 내 머릿속에서 걸어가고 있다. 회한과 함께 진하디 진한 그리움이 차례로, 나의 가슴속을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 * * *
회상의 수레바퀴는 8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 멀리 도심의 휘황한 불빛 너머로 자연의 파노라마가 시작되는 얕으막한 언덕이 보인다.
밤 하늘을 수 놓은 별빛이 하나, 둘, 희미하게 비치는 숲속.
반보다 조금 더 부풀어 오른 달이 고즈늑한 그 곳에 마치 고래등처럼 웅크리고 있는 고루 거각들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자리잡고 있다.
요정 <자미정>
이제는 현대적인 유흥문화에 밀려 사양길을 걷고 있는 요정 자미정,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유서깊은 전통 때문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조금은 이른 시간에 이곳 자미정에 왔었다.
힘들게 반입한 물건들이 제대로 처리되자, 공철주 형님이 크게 한턱 낸다고 내게 사전예약을 지시했다.
예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주머니에 돈 있다고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일반적인 술집이 아니었으니까.
음식준비 때문에 하루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둬야한다.
그 동안 세월따라 변화가 많았지만 요리와 함께 무제한 제공되는 주류를 아직도 전통주로 고집하는 고루함. 그리고 무늬 뿐이지만 기생 흉내를 내는 여자들이 시중을 든다는 것은 아마도 마지막 남은 요정의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
임금님 잔칫상에 버금가는 40 여 가지의 산해진미, 해묵은 백화주, 떡 벌어지게 차려진 교자상을 마주한 우리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들을 한 사람씩 꿰차고 부어라, 마셔라, 노래 불러라, 춤을 춰라, 난리법석을 떨어댔다.
형님 시중은 월선 누나가, 내 곁에는 평소 자미정에서 콧대 높기로 유명한 설향 누나가 앉았다.
이화 누님(마담)은 인사치레만 하고는, 내게 눈화살을 몇 대 쏘아주고 나갔다.
"술맛 떨어지게, 눈치는 주고 그래..."
장고춤, 부채춤, 가야금 병창에 흘러간 노래들, 신세대는 취향에 맞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근사근 술 시중을 들어주고, 조근조근 말 대답을 해주는 아리따운 기녀와 향기 그윽한 백화주를 마시며, 마치 그 옛날 어느 한량처럼 풍류를 즐기는 기분도 나름대로 과히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술이라면 넌더리가 날 설향 누나에게 잔을 권하는 대신 내 입으로 털어넣는 술잔의 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졌다.
내심 작정을 하고 일부러 그렇게 마신거다.
묵묵히 술잔만 비우고 있으니 설향 누나가 내 옆구리를 콕! 꼬집는다.
“왠일이래? 날나리 건달이 오늘은 얌전히 술잔만 붙들고 있구...”
“날나리 건달이라니?”
“그럼 아냐? 아무리 자미정이 기울어진 달이지만, 손에 피나 묻히고 다니는 패거리들 술판에 이게 뭐야? 자존심 상하게 바람둥이 애숭이 술잔이나 치고 있으니...”
설향누나는 무언가 꼬인 게 있는 듯 내 옆에 찰싹 붙어앉아 비위를 슬슬 긁어왔다
철주 형님은 한복을 입은 월선 누나를 껴안고 블루스를 춘다고 비척거린다. 갓쓰고 말 탄 꼴이지만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자존심 세우고 콧대만 높이니 단골 손님이 줄어들지. 근데 .바람둥이라니? 누나가 봤어?”
“입술에 침이나 묻히시고 시치미를 떼시지...소문 다 났더라”
“소문이라니? 내가 여기 발걸음 하지않은 게 삼개월이 다 되는데 무슨...”
“흥, 소혜... 그 기집애 밖에서 만났다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맞기는 맞나 보다.
“그, 그건...우연히, 그래 우연히 온천 입구에서 만났는데 마침 저녁시간이고 해서 밥 한끼 얻어 먹었어...뭐, 그게 잘못된 거야? 바람둥이라니...”
“잘 한다. 그래...어디 얻어 먹을데가 없어서어린 기생년 속주머니를 털어, 내 잔도 채워줘, 혼자만 마시지 말구...”
“아, 씨...내가 낸다는 걸 지가 밥값 내는데 그럼, 도루 물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티각태각하는 와중에 철주 형님이 노래를 부르라고 성화다. 분위기에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대학가요제 입상곡 하나를 신명나게 불렀다.
여흥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누나의 술잔을 다시 채워주면서 은근하게 사인을 보냈다.
이미 알딸딸하게 취기는 올라있었고, 방은 시끄러우니 잠깐 바깥에서 할 애기가 있다고 반쯤 마시고 남은 술을 내 셔츠 앞자락에 슬그머니 쏟아 붓고는 화장실 가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일행들은 여흥에 빠져 누가 나가는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온 나는 담배를 빼 물다말고는 얼른 화장실 세면대로 달려갔다.
가르르 입가심을 하고는 대충 지퍼만 열고 끄트머리를 물에다 씻었다.
약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곳을 벗어난 나는, 때마침 방에서 나온 설향 누나를 사정없이 난짝 들어 안아버렸다.
“얘가, 미쳤어? 이거 안 내려...푸흡!”
소리치려는 누나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무엇으로? 그래, 그거다.
하필이면 그때, 다른 손님들을 배웅하고 별채쪽으로 들어오던 이화 누님이 우리를 발견했나보다.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쳤지만 나는 술에 취한 척, 아예 못 들은 척, 후원으로 통하는 작은 출입문으로 쏘옥 숨어버렸다.
“하~흐읍! 숨 막혀...이 자식아...!!”
“어?...미, 미안”
설향 누나가 내 목덜미를 움켜쥔 채 두 다리를 버둥거려, 나는 그제서야 누나의 입술을 해방시켜 주었다.
*********
눈에 익숙한 장짓문을 밀치자, 화라락 일렁이는 촛불의 긴 그림자.
"사람도 없는데 불은 켜져있네..."
고향에 돌아온 듯 안온함이 물씬 묻어나오는 그 방에는 이부자리까지 펼쳐져있다.
설향누나를 던지다시피 그 곳에 내려놓자 풀썩 소리가 난다.
“아퍼. 아야...너! 이 나쁜....”
“.............”
나는 술김에 콧대높은 설향누나를 겁탈하려는 것이다.
밀치고, 발로 차고, 몸을 웅크리고, 누나는 고사리같은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마구 두드렸지만, 나는 일체의 불필요한 동작을 배제한 채 곧장 얼굴을 묻어갔다.
두어 번 도리질치는 누나의 얼굴을 와락 가슴패기 안으로 끌어당기며 한 손으로 저고리 고름을 풀렀다.
사르륵 천과 천이 스치는 부드러운 소리. 젖가슴위로 단단하게 동여 매어진 치마끈.
한 손을 등 뒤로 밀어넣으며 더욱더 누나의 얼굴을 가슴팍으로 끌어안았다.숨막혀 반항하지 못하도록.
80근(1근은 600 그램)될 듯 말 듯한 여자가 130근 나가는 남자 힘을 어떻게 당하나? 벌떡거리는 누나의 심장박동이 내 가슴에 느껴졌다.
가늘고 긴 목덜미를 따라 나는 입술로 궤적을 그리며 치맛단이 풀러져 뽀얗게 드러난 젖무덤이 반쯤 눈에 들어올 때 압박시켰던 힘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하아, 하아, 헉!”
가쁜 숨결을 토해내던 누나의 입에서 짧고 강한 한마디 신음성이 터졌다.
껍질 벗긴 사과를 반으로 쪼개 엎어놓은 듯한 유방, 정점의 알맹이는 물에 불린 대두알 보다도 작았다.
얇은 속치마 밑으로 한 손을 넣어 밀가루 반죽처럼 보들보들 말랑말랑한 허벅다리를 손가락 더듬이로 촉수를 세워 슬금슬금 쓸어올리며 오디같이 오돌토돌한 젖꼭지 하나를 입술끝에서 발딱 일으킨 것 같은데, 왼쪽에 있는 또 다른 유두를 혀끝으로 맛을 보기도 전에 나는 힘없이 한쪽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움찔거리던 누나의 아랫도리 어느 부분에 여전히 나의 한 손이 깊이 들어가 있는 채,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고있는 자세로 누나의 가슴위에서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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