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시트콤 - 4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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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시트콤 제4부 제3장 작은사기꾼
PC방 주인은 걱정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 날이 밝기 무섭게 PC방을 살피러 왔다간 빈 자리 하나 없이 꽉찬 모습을 보곤 눈이 휘둥그렇게 커진 채 비명 가까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김형, 어떻게 이런 일이!!.”
“쥔양반, 내 뭐라했소. 컵라면이랑 음료수까지 동 나는 바람에 애태웠수.”
“삼만원 벌어서 알바 이만삼천원 주고 나면 만원벌이도 시원찮았었는데...”
“약속대로 5만원하고 라면값 3만원이랑 과자값 4만원이랑 음료수값 5만원 여기있수.”
“허, 어제까지만 해도 과자값은커녕 음료수 도둑 맞은게 얼마였는데....”
“믿기지 않수? 마음먹기에 달린거유. 합쳐 17만원 여기 있구, 알바비 2만원은 돌려주슈.”
“김형, 꿈이요. 생시오.”
“알바비 빼구 십구만원 챙겼수. 쥔 양반보다 더 챙긴 셈인데 괜찮겠수?”
“김형, 뭔 소리요. 귀인을 만난게 복이지.”
“교대시간 되면 나갈테니까 음료수랑 과자 같은 걸 많이 쟁겨놓으시우.”
“하도 과음료가 안 팔려서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하룻밤만에 재고가 떨어지다니...”
“생각같아선 낮에두 봐주고 싶은데 몸이 철인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구려.”
“비방이 뭡니까?”
“서비스. 큰 돈 들이지 않고 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보슈.”
“굽신거리고 인사하면 됩니까?”
“서비스란 비굴하지 않은 마음에 우러나는 행동을 말하지 인사 잘한다고 서비스 되겠수?”
“간단명료하게 찝어주시죠.”
“난 재떨이에 담배 세까치 이상 쌓이면 무조건 갈아줬수. 들락거리는 사람 발자국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대걸레질을 했수. 많은 사람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놀 수 있도록 부지런히 문을 열고 닫으면서 환기시켰수. 그냥 카운터에 앉아서 돈만 챙긴다면 뭔 서비스가되겠수.”
“돈만 된다면 뭘 못하겠습니까. 장사가 안되다 보니까 몸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었지요.”
“몇일 해보고 계속 잘될 것 같으면 쥔 양반과 한판 승부수를 걸고 싶소.”
“뭐든지 말해요. 다 들어줄테니까.”
“하루 매상을 갖고 흥분할 일은 없수.”
“궁금해 죽겠네.”
“장사 되는걸 봐서 동네 제일 허름한 PC방 아도쳐서 밤에만 운영할 생각이유.”
“그럼 우리PC방이랑 경쟁하겠단 말입니까?”
“경쟁은 무슨. 이 동네 PC방 모두 잘 살아야지 않겠수?”
“안됩니다. PC방 경쟁으로 거덜난 사람인데 손님 몰구 떠나면 더 망할텐데 말도 안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얘기하잖건데, 거참 성질 급하긴.”
“당장, 우리 PC방 관리 전속 계약 합시다.”
“쥔 양반 속 끓일라구 하는게 아니고 돈 벌게 해 줄려는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때가 되면 알게 될테니 숨이나 돌리시우.”
몇일 PC방 운영을 해 본 후 돌아가는 추세가 파악되면 길거리에서 오돌오돌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들을 몽창 데려올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회 밑바닥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 바에는 낮엔 햇살 있으니 얼어죽지 않을 정도만 되면 부지런히 동냥질을 하고 밤엔 이가 부딪힐 정도로 한파에 시달리며 사는 것 보담 따뜻한 PC방으로 몽창 데려올 생각이었다.
희망을 포기한 그들에게 부지런히 일하라고 등떠미는 것만큼 어리석은 정책은 없다. 그냥 그들이 사는 방식을 인정하면서 낮엔 낮대로 살고 밤엔 밤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추위에 떨며 하루를 지겹게 보내는 그들에게 쉴 공간을 확보해 줌으로써 그들이 새롭게 접하는 컴퓨터를 통해 몇 명이라도 현실 타개의 기회를 주고 싶다.
황건적에게 녹차 한봉지를 뺏긴 분노로 유비가 나라를 세웠다면 믿겠냐만은 철호나 강호의 처지가 사회로부터 버림 받고 살았던 만큼 그 사회를 향해 적대적으로 대하며 신세 한탄만 하고 살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거대한 세력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개방 장로처럼 흩어져 부랑자로 떠도던 사람들에게 이 땅에 태어난 사명감을 찾아 줌으로써 일상의 노숙생활 자체도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과 무리지어 뚜껑당, 만두당, 딴따라당, 노가리당 등과 함께 대등한 힘을 갖는 거대한 거렁뱅이 당을 만들고 싶다. 권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나라를 물 말아먹는 인간들의 끊없는 욕심을 대신하여 궁핍하고 절망적이던 사람들이 점차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작은 움직임이 비록 큰 힘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결국은 사회를 움직이는 한 축이 될 수 있는 날을 만들고 싶다. 그 날이 오면 거렁뱅이 국회의원, 거렁뱅이 청와대 비서관, 거렁뱅이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장수천에 목욕탕을 만들면 거렁뱅인들 깨긋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테니까.
“김형, 식사나 같이 합시다.” 쥔 양반이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유비형님, 저 왔어요.” 관우가 샐죽해진 얼굴로 PC방에 고개를 들이 밀며 말했다.
“일찍 왔구나?”
“식당일이 새벽에 시작된데요.”
“돈이 모자라진 않았구?”
“남았어요. 여기...”
“네가 갖고 써라. 그걸 밑천삼아 뭔가 할 일도 찾아보고.”
“절 주시는거에요?”
“철호놈도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만 채팅에 미쳐있으니 걱정이구나.”
“어릴 땐 다 그런거죠.”
낮근무 알바에게 인계인수를 마친 일행은 쥔 양반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문주 김동수에겐 약속대로 이만원을 쥐어주며 몇일 더 애써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와, 어제부터 아침밥 챙겨먹는 습관이 몸에 베네.” 철호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한다.
“든든이 먹어야 일도 힘들지 않지.”
“행님은 밤샘해서 힘들텐데 괜찮아요?”
“난 종일 일꺼리가 있어서 힘든지 모르겠던데 넌 유리창 쳐다봤는데 눈 아프지?”
“신났어요. 행님이 그렇게 수단이 좋다는건 첨 봤걸랑요.”
“강호도 뭔가 일꺼리를 찾을 모양인데 넌 계속 채팅만 할래?”
“행님요, 한건만 건지면 손 뗄라구예.”
“그 과부?”
“아삼삼한게 눈에 밟히걸랑요.”
“아직 젊으니까 맘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해.”
“잔소리 듣기 싫어서 이 생활하는데 또 괴롭힌다.”
“너랑 꼭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말야.”
“일이 싫타니까예. 놀구 먹을 수 있음 좋겠는데...”
쥔 양반이 사준 아침밥을 먹고 헤어진 세사람은 강호라고 예외는 아니겠지만 나와 철호는 PC방에서 한 잠도 못잔체 알밤을 깐 탓에 피곤해서 사우나탕을 들락거리다 휴게실에서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공간에서 돈내고 맘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이왔다.
“내가 누구요?” 강제로 병원을 쫒겨나며 흰까운을 걸친 사내에게 물었다.
“김갑수. 넌 보호자랍시고 돈 넣은거 떨어졌거든.”
“보호자가 누구요?”
“몰라, 정 뭐시라던데, 이젠 널 찾아 오지도 않거든.”
“집엘 데려다 줘.”
“넌 집도 절도 없는 놈이야. 그냥 꺼져.”
힘이 억세기 좋은 두 남자가 양쪽 겨드랑이를 잡아 끌며 한 여름 뙤약볕에 나를 던져 버렸다. 나는 그 길로 노숙자들에게 이끌려 십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노련하게 밥얻어 먹는 기술만 익히며 살았다. 젊은 철호가 내겐 유일한 동료였다. 꾀많은 철호는 버르장머리는 없지만 나이들어 보이는 나를 형처럼 따르며 삼년이 넘는 생활을 함께 했다. 기억해 낼 일이 없었다. 철호 나이쯤 되는 아이가 있었던 어렴풋한 기억 때문에 낯설지 않은 간섭이라고 믿었을 뿐이다. 지하철 역사를 배회하며 잠자리를 챙기려 할 때 순라를 돌던 의무경찰의 몽둥이나 호루락 소리에 놀라 튀는게 전부였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 었을 뿐이다. 온갖 세상일에 시시콜콜 메달려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던 시간들이었다.
“행님아, PC방 알바 하러가야제.”
“벌써 그렇게 됐니?”
“응, 배 고프다.”
몇시간을 잠들었는지 벌써 어둑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리는 강호와 처음 만났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사우나를 빠져나왔다.
“관우행님아, 괜찮겠나.” 철호가 장난 스럽게 물었다.
“암, 괜찮구 말구.”
“그래, 경우 엄마를 이해하고 나니 너도 편치?”
“예. 식당 여잔 좋은 여자였어요.”
“화끈하든가?”
“따뜻한 여자더라.”
“결혼해야지?”
“네. 종전처럼 무역에 손 댈라구요. 그 여자랑 함께 중국쪽에 손 댈까 해요.”
“잘 생각했다. 요즘은 남녀가 따로 없다. 힘을 합칠수록 큰 일을 할 수 있는 법이지.”
“그러게요. 하룻밤 자고나니 세상이 달라졌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관우야. 일 구상하기 전에 몇 달만 나랑 일하자.”
“무슨일하려구요?”
“세상을 구해보자. 너를 하룻만에 구했듯이 다른 사람도 구해야되잖니.”
“유비형님, 정말 큰 뜻을 갖고 계셨군요.”
“삶과 죽음은 백지 한 장 차이다. 밝고 어둠도 손바닥 뒤짚기일 뿐이다. 일상을 잊고 살던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분화구를 찾지 못한 활화산처럼 언제든지 불끈 감정에 몸이 상할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제각각의 몫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형님,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도울께요.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인걸요.”
식당 아줌마 이영자는 우리 일행이 식당문을 들어서자 뛰듯 달겨들어 자리를 권했다. 다정한 눈초리로 강호를 바라보는 것이 여간 시샘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험한 역경을 딪고 살았던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 된 것이 기쁘기 한량 없었다.
“강호씨, 오늘 밤도 갈께요.” 이영자가 강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조용히 말했다.
“형님, 어쩌죠?”
“얌마, 날밤까서 번 돈으로 네 놈 잠자리 대주다 거덜나겠다.”
세 사람은 일제히 까르르 웃었다.
“아저씨, 손님이 별루라서 인계할 돈이 만원 뿐이에요.” 알바 학생이 내게 돈을 넘겼다.
“뭐? 만원뿐이라니. 난 어젯밤 이십육만원이나 벌구 음료수값만 오만원 벌었는데.”
“그게 아니구요. 아까 낮에 쥔어른 심부름이라면서 십만원 가져간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데?”
“급한 전화가 왔었는데, 쥔 아저씨가 사고났데요. 사람 보낼테니까 십만원 주라고 하던걸요.”
“그 사람 쥔 목소리 맞아?”
“몰라요. 다급하게 말해서 그런줄 알았죠.”
“누군가 왔었어?”
“전화 받았지? 하면서 급히 뛰어들어온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십만원 준거야?”
“어떻해요, 쥔 아저씨가 사고났다는데.”
“쥔 아저씨 핸드폰 번호 알아 몰라?”
“알죠.”
“확인 전환 해봤어?”
“아뇨.”
“어휴, 병신이 따로 없구먼.”
“......”
“과음료는 어딨어?”
“창고에 쌓아놨어요. 개봉도 안한걸요.”
“알았다. 내가 꺼내놀테니까 가봐.”
웃기는 놈이다. 일할 때 물건이 들어왔으면 당연히 빈 냉장고에 구색을 맞춰서 음료수를 가득 채워놔야 정상이고, 컵라면이야 알밤까는 사람이 먹더라도 과자뿌스러기 정도는 진열대에 가지런히 정리해 놔야 할 것 아닌가. 요즘 놈들은 이기적이라서 주인이 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제 할 일 조차도 찾아 하는 것이 없다.
“관우랑 장비 창고에 가서 과음료 몽창 꺼내와.”
나는 빈 진열대에 과자를 수북히 쌓아놓기 시작했다. 빈 냉장고도 어느 틈에 빼곡이 음료수가 들어서면서 버젓한 PC방으로 변하고 있었다.
“행님요, 저 놈 뭐랍니까?”
“사기 당했단다.”
“뭔 사기?”
“그런게 있어.”
작은 사기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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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주인은 걱정 때문에 잠을 설쳤는지 날이 밝기 무섭게 PC방을 살피러 왔다간 빈 자리 하나 없이 꽉찬 모습을 보곤 눈이 휘둥그렇게 커진 채 비명 가까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김형, 어떻게 이런 일이!!.”
“쥔양반, 내 뭐라했소. 컵라면이랑 음료수까지 동 나는 바람에 애태웠수.”
“삼만원 벌어서 알바 이만삼천원 주고 나면 만원벌이도 시원찮았었는데...”
“약속대로 5만원하고 라면값 3만원이랑 과자값 4만원이랑 음료수값 5만원 여기있수.”
“허, 어제까지만 해도 과자값은커녕 음료수 도둑 맞은게 얼마였는데....”
“믿기지 않수? 마음먹기에 달린거유. 합쳐 17만원 여기 있구, 알바비 2만원은 돌려주슈.”
“김형, 꿈이요. 생시오.”
“알바비 빼구 십구만원 챙겼수. 쥔 양반보다 더 챙긴 셈인데 괜찮겠수?”
“김형, 뭔 소리요. 귀인을 만난게 복이지.”
“교대시간 되면 나갈테니까 음료수랑 과자 같은 걸 많이 쟁겨놓으시우.”
“하도 과음료가 안 팔려서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하룻밤만에 재고가 떨어지다니...”
“생각같아선 낮에두 봐주고 싶은데 몸이 철인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구려.”
“비방이 뭡니까?”
“서비스. 큰 돈 들이지 않고 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보슈.”
“굽신거리고 인사하면 됩니까?”
“서비스란 비굴하지 않은 마음에 우러나는 행동을 말하지 인사 잘한다고 서비스 되겠수?”
“간단명료하게 찝어주시죠.”
“난 재떨이에 담배 세까치 이상 쌓이면 무조건 갈아줬수. 들락거리는 사람 발자국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대걸레질을 했수. 많은 사람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놀 수 있도록 부지런히 문을 열고 닫으면서 환기시켰수. 그냥 카운터에 앉아서 돈만 챙긴다면 뭔 서비스가되겠수.”
“돈만 된다면 뭘 못하겠습니까. 장사가 안되다 보니까 몸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었지요.”
“몇일 해보고 계속 잘될 것 같으면 쥔 양반과 한판 승부수를 걸고 싶소.”
“뭐든지 말해요. 다 들어줄테니까.”
“하루 매상을 갖고 흥분할 일은 없수.”
“궁금해 죽겠네.”
“장사 되는걸 봐서 동네 제일 허름한 PC방 아도쳐서 밤에만 운영할 생각이유.”
“그럼 우리PC방이랑 경쟁하겠단 말입니까?”
“경쟁은 무슨. 이 동네 PC방 모두 잘 살아야지 않겠수?”
“안됩니다. PC방 경쟁으로 거덜난 사람인데 손님 몰구 떠나면 더 망할텐데 말도 안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얘기하잖건데, 거참 성질 급하긴.”
“당장, 우리 PC방 관리 전속 계약 합시다.”
“쥔 양반 속 끓일라구 하는게 아니고 돈 벌게 해 줄려는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때가 되면 알게 될테니 숨이나 돌리시우.”
몇일 PC방 운영을 해 본 후 돌아가는 추세가 파악되면 길거리에서 오돌오돌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들을 몽창 데려올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회 밑바닥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 바에는 낮엔 햇살 있으니 얼어죽지 않을 정도만 되면 부지런히 동냥질을 하고 밤엔 이가 부딪힐 정도로 한파에 시달리며 사는 것 보담 따뜻한 PC방으로 몽창 데려올 생각이었다.
희망을 포기한 그들에게 부지런히 일하라고 등떠미는 것만큼 어리석은 정책은 없다. 그냥 그들이 사는 방식을 인정하면서 낮엔 낮대로 살고 밤엔 밤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추위에 떨며 하루를 지겹게 보내는 그들에게 쉴 공간을 확보해 줌으로써 그들이 새롭게 접하는 컴퓨터를 통해 몇 명이라도 현실 타개의 기회를 주고 싶다.
황건적에게 녹차 한봉지를 뺏긴 분노로 유비가 나라를 세웠다면 믿겠냐만은 철호나 강호의 처지가 사회로부터 버림 받고 살았던 만큼 그 사회를 향해 적대적으로 대하며 신세 한탄만 하고 살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거대한 세력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개방 장로처럼 흩어져 부랑자로 떠도던 사람들에게 이 땅에 태어난 사명감을 찾아 줌으로써 일상의 노숙생활 자체도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과 무리지어 뚜껑당, 만두당, 딴따라당, 노가리당 등과 함께 대등한 힘을 갖는 거대한 거렁뱅이 당을 만들고 싶다. 권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나라를 물 말아먹는 인간들의 끊없는 욕심을 대신하여 궁핍하고 절망적이던 사람들이 점차 이 나라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작은 움직임이 비록 큰 힘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결국은 사회를 움직이는 한 축이 될 수 있는 날을 만들고 싶다. 그 날이 오면 거렁뱅이 국회의원, 거렁뱅이 청와대 비서관, 거렁뱅이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장수천에 목욕탕을 만들면 거렁뱅인들 깨긋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테니까.
“김형, 식사나 같이 합시다.” 쥔 양반이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유비형님, 저 왔어요.” 관우가 샐죽해진 얼굴로 PC방에 고개를 들이 밀며 말했다.
“일찍 왔구나?”
“식당일이 새벽에 시작된데요.”
“돈이 모자라진 않았구?”
“남았어요. 여기...”
“네가 갖고 써라. 그걸 밑천삼아 뭔가 할 일도 찾아보고.”
“절 주시는거에요?”
“철호놈도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만 채팅에 미쳐있으니 걱정이구나.”
“어릴 땐 다 그런거죠.”
낮근무 알바에게 인계인수를 마친 일행은 쥔 양반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문주 김동수에겐 약속대로 이만원을 쥐어주며 몇일 더 애써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와, 어제부터 아침밥 챙겨먹는 습관이 몸에 베네.” 철호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한다.
“든든이 먹어야 일도 힘들지 않지.”
“행님은 밤샘해서 힘들텐데 괜찮아요?”
“난 종일 일꺼리가 있어서 힘든지 모르겠던데 넌 유리창 쳐다봤는데 눈 아프지?”
“신났어요. 행님이 그렇게 수단이 좋다는건 첨 봤걸랑요.”
“강호도 뭔가 일꺼리를 찾을 모양인데 넌 계속 채팅만 할래?”
“행님요, 한건만 건지면 손 뗄라구예.”
“그 과부?”
“아삼삼한게 눈에 밟히걸랑요.”
“아직 젊으니까 맘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해.”
“잔소리 듣기 싫어서 이 생활하는데 또 괴롭힌다.”
“너랑 꼭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말야.”
“일이 싫타니까예. 놀구 먹을 수 있음 좋겠는데...”
쥔 양반이 사준 아침밥을 먹고 헤어진 세사람은 강호라고 예외는 아니겠지만 나와 철호는 PC방에서 한 잠도 못잔체 알밤을 깐 탓에 피곤해서 사우나탕을 들락거리다 휴게실에서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공간에서 돈내고 맘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이왔다.
“내가 누구요?” 강제로 병원을 쫒겨나며 흰까운을 걸친 사내에게 물었다.
“김갑수. 넌 보호자랍시고 돈 넣은거 떨어졌거든.”
“보호자가 누구요?”
“몰라, 정 뭐시라던데, 이젠 널 찾아 오지도 않거든.”
“집엘 데려다 줘.”
“넌 집도 절도 없는 놈이야. 그냥 꺼져.”
힘이 억세기 좋은 두 남자가 양쪽 겨드랑이를 잡아 끌며 한 여름 뙤약볕에 나를 던져 버렸다. 나는 그 길로 노숙자들에게 이끌려 십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노련하게 밥얻어 먹는 기술만 익히며 살았다. 젊은 철호가 내겐 유일한 동료였다. 꾀많은 철호는 버르장머리는 없지만 나이들어 보이는 나를 형처럼 따르며 삼년이 넘는 생활을 함께 했다. 기억해 낼 일이 없었다. 철호 나이쯤 되는 아이가 있었던 어렴풋한 기억 때문에 낯설지 않은 간섭이라고 믿었을 뿐이다. 지하철 역사를 배회하며 잠자리를 챙기려 할 때 순라를 돌던 의무경찰의 몽둥이나 호루락 소리에 놀라 튀는게 전부였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 었을 뿐이다. 온갖 세상일에 시시콜콜 메달려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던 시간들이었다.
“행님아, PC방 알바 하러가야제.”
“벌써 그렇게 됐니?”
“응, 배 고프다.”
몇시간을 잠들었는지 벌써 어둑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리는 강호와 처음 만났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사우나를 빠져나왔다.
“관우행님아, 괜찮겠나.” 철호가 장난 스럽게 물었다.
“암, 괜찮구 말구.”
“그래, 경우 엄마를 이해하고 나니 너도 편치?”
“예. 식당 여잔 좋은 여자였어요.”
“화끈하든가?”
“따뜻한 여자더라.”
“결혼해야지?”
“네. 종전처럼 무역에 손 댈라구요. 그 여자랑 함께 중국쪽에 손 댈까 해요.”
“잘 생각했다. 요즘은 남녀가 따로 없다. 힘을 합칠수록 큰 일을 할 수 있는 법이지.”
“그러게요. 하룻밤 자고나니 세상이 달라졌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관우야. 일 구상하기 전에 몇 달만 나랑 일하자.”
“무슨일하려구요?”
“세상을 구해보자. 너를 하룻만에 구했듯이 다른 사람도 구해야되잖니.”
“유비형님, 정말 큰 뜻을 갖고 계셨군요.”
“삶과 죽음은 백지 한 장 차이다. 밝고 어둠도 손바닥 뒤짚기일 뿐이다. 일상을 잊고 살던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분화구를 찾지 못한 활화산처럼 언제든지 불끈 감정에 몸이 상할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제각각의 몫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형님,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도울께요.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인걸요.”
식당 아줌마 이영자는 우리 일행이 식당문을 들어서자 뛰듯 달겨들어 자리를 권했다. 다정한 눈초리로 강호를 바라보는 것이 여간 시샘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험한 역경을 딪고 살았던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 된 것이 기쁘기 한량 없었다.
“강호씨, 오늘 밤도 갈께요.” 이영자가 강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조용히 말했다.
“형님, 어쩌죠?”
“얌마, 날밤까서 번 돈으로 네 놈 잠자리 대주다 거덜나겠다.”
세 사람은 일제히 까르르 웃었다.
“아저씨, 손님이 별루라서 인계할 돈이 만원 뿐이에요.” 알바 학생이 내게 돈을 넘겼다.
“뭐? 만원뿐이라니. 난 어젯밤 이십육만원이나 벌구 음료수값만 오만원 벌었는데.”
“그게 아니구요. 아까 낮에 쥔어른 심부름이라면서 십만원 가져간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데?”
“급한 전화가 왔었는데, 쥔 아저씨가 사고났데요. 사람 보낼테니까 십만원 주라고 하던걸요.”
“그 사람 쥔 목소리 맞아?”
“몰라요. 다급하게 말해서 그런줄 알았죠.”
“누군가 왔었어?”
“전화 받았지? 하면서 급히 뛰어들어온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십만원 준거야?”
“어떻해요, 쥔 아저씨가 사고났다는데.”
“쥔 아저씨 핸드폰 번호 알아 몰라?”
“알죠.”
“확인 전환 해봤어?”
“아뇨.”
“어휴, 병신이 따로 없구먼.”
“......”
“과음료는 어딨어?”
“창고에 쌓아놨어요. 개봉도 안한걸요.”
“알았다. 내가 꺼내놀테니까 가봐.”
웃기는 놈이다. 일할 때 물건이 들어왔으면 당연히 빈 냉장고에 구색을 맞춰서 음료수를 가득 채워놔야 정상이고, 컵라면이야 알밤까는 사람이 먹더라도 과자뿌스러기 정도는 진열대에 가지런히 정리해 놔야 할 것 아닌가. 요즘 놈들은 이기적이라서 주인이 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제 할 일 조차도 찾아 하는 것이 없다.
“관우랑 장비 창고에 가서 과음료 몽창 꺼내와.”
나는 빈 진열대에 과자를 수북히 쌓아놓기 시작했다. 빈 냉장고도 어느 틈에 빼곡이 음료수가 들어서면서 버젓한 PC방으로 변하고 있었다.
“행님요, 저 놈 뭐랍니까?”
“사기 당했단다.”
“뭔 사기?”
“그런게 있어.”
작은 사기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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