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로리 -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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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텅 빈 거리에서 (후편)
그 날 밤 그냥 집에 들어온 이후, 나는 끝내 이안 오빠에게 전화하지 못했다.
물론 그로부터의 연락도 없다.
혼자서 얼마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는지 모른다.
회사에서 일이 없을 때.
퇴근하고 쓸쓸히 방문을 열면서.
일요일 아침에 홀로 눈을 뜰 때…
그렇게 한 달쯤이 흘렀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항상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이안 오빠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독단적인 구석이 있었다.
이치에 맞게 반박하지 못할 경우,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힌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먼저 토라지는 것은 항상 나였지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나였다.
…아니, 내가 언제나 잘못했던 거야? 그건 아닐 텐데.
이번만큼은… 그로부터 전화를 받고 싶었다.
……
“그럼, 모두 퇴근해도 좋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팀장의 느끼한 눈빛을 애써 피하면서 회사를 나섰다.
그 동안 토요일까지 부려먹은 탓에 프로젝트는 대충 끝나서,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은 이례적으로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 그러면 뭐하나. 만날 사람도 없는데.
아직 대낮인데도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제법 도로가 막힌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왼손에 낀 반지가 눈에 띈다.
은색의 커플링. 작년 이맘때 오빠가 선물해 주었던 것…
비싸진 않아도 제법 세련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었다.
두 개를 나눠 끼면서, 나중엔 더 좋은 거 하자고 했었는데…
…내가 아직도 이 반지를 끼고 다니는 걸 그는 알까?
…딴 생각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어라, 이 길로 쭉 가면 신촌인데…
……
어쩌다 보니 그의 원룸까지 와 버렸다.
눈에 익은 깔끔하지도 허름하지도 않은 건물. 9월 말에 왔던 후로 처음인가. 석 달 만이군.
하지만 그 전까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왔던 곳이다.
내가 독립하기 전부터, 운전을 하기 전부터…
처음엔 생각보다 지하철 역에서 멀어서, 가끔 막차를 놓치고 화내기도 했었지.
밤중에 혼자 택시 타고 가는 건 위험하다며, 데려다 주던 자상함.
3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그의 집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또 내가 항복을 하는 건가. 자존심도 없이.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지금 만날 사람도 없고, 그에게서 받은 반지를 끼고 있으며, 그의 잘 정돈된 목소리가 그립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반응이 없다.
(딩동 딩동)
“…….”
어디 나간 모양이다.
대학원생이 방학에 수업을 할 리 없고, 학원도 오늘 쉴 텐데…
도서관? 겨울엔 춥다면서 일 없으면 잘 안 나가는 사람이다.
친구 만나러 나갔나? 설마, 벌써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니겠지.
…아유, 됐다 됐어.
……
힘없이 건물을 빠져 나왔다.
회색빛 건물을 쓰윽 올려다보았다. 다시 여기 올 일이 있을까…
그나저나 오늘 어쩌지. 남친 없는 친구들한테 전화나 해 볼까.
원래 요맘때는 서로서로 안 만나주는 게 불문율이긴 하지만…
…착잡한 마음으로 뒤돌아서니, 그가 있었다.
이안 오빠다.
“어, 어멋…!”
“…….”
방심한 상태에서 갑자기 그와 마주치게 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적이 놀란 표정의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
“웬일이야…?”
뭐라고 말할까.
운전하다가 문득 커플링 보고 오빠 생각나서 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할까.
그럴까.
“저기…”
고개를 들어 그를 본다.
수수한 차림에 가방을 멘 그는 누굴 만나고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왼손 손가락엔 나와 같은 반지는 없다.
“…그냥, 근처 지나가다가…”
“…….”
“그만…가볼게.”
왠지 짜증이 난다.
혼자서 줄기차게 커플링 끼고 있던 것이 굉장히 민망하게 느껴진다.
난 상기된 얼굴을 숨기기 위해, 그를 외면하고 걸음을 옮겼다.
……
계속 걸었다.
근처에 대 놓은 차로는 가지 않았다. 그의 원룸으로 찾아온 티가 너무 나니까.
큰길로 나와 상점가를 따라 걸었다. 그가 말없이 따라오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약간 안심이 된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그가 나란히 걷고 있다.
“오랜만이네.”
“…응.”
“변호사랑은 잘 돼 가?”
…제일 먼저 묻는 게 뭐 이따위냐.
“…몇 번 정도 더 만났어.”
“그래.”
“오빤… 잘 지냈어?”
그가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나야… 그냥 그렇지.”
……
꽤나 길고 천천히 안부를 묻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역 앞이다.
“집에… 가는 거니?”
“…….”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어.
나는 돌아서서 그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 우리 얘기 좀 해…….”
“…어...? 응.”
……
음료를 받아 들고 스타벅스 2층으로 올라갔다.
재수 좋게도 창 쪽의 편안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는 앉자마자 고개를 돌려, 나 대신 창 밖을 본다.
눈이 오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도 내리지 않던 눈이다.
“우리 만난 이래 크리스마스에 눈 오는 건 처음이네.”
“그러게…”
화이트 크리스마스…
지금 그의 커피컵 위에 얹힌 크림처럼 소복한 눈이 쌓인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바래 왔던가.
이런 애매한 순간에 때맞춰 잘도 오는군.
“…얘기 하자며.”
“…아.”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는 내게, 그의 무뚝뚝한 말이 이어진다.
“네가 왜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결혼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
“차마 축하는 못 해주겠다만…”
아주 내가 그 변호사랑 결혼하게 된 분위기다.
모처럼 찾아와 준 사람에게 도대체 이게 뭔가?
어이가 없다.
“…….”
그는 또다시 창 밖을 바라본다. 슬슬 답답해진다.
그가 먼저 본론으로 나와주길 기다려서 그렇지, 사실 말할 건 쌓였다.
오빠, 그 동안 왜 연락 안 했어?
내가, 오빠한텐 내가 그 정도의 여자였던 거야?
아니면 오빠가, 그렇게도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던 거야?
진짜 딴 여자라도 생긴 건가?
“저기…”
“회사 일은 잘 되니? 요즘도 토요일에 출근해?”
“아… 뭐, 이제 끝났어. 다음 주부터는 당분간 놀 거야.”
“잘 됐네…”
“그렇지 뭐. 오빤?”
“난 계속 학교 나가고… 학원도 그대로…”
아이구, 본론으로 들어갈 기회를 또 놓쳐버렸다.
……
“그래서, 얘 경우엔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이혼한 것 같아. 좌우간 둘 다 1년 안 넘겼어.”
“에이 정말? 설마…”
“아니 정말이야. 요새 진짜 이혼 많이 하더라고.”
오랜만에 만나니 할 얘긴 많았다. 한 시간 가량 이야기가 쉴새 없이 이어졌다.
직장 얘기, 주변 사람들 얘기, 날씨 얘기 등등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까지 화제에 올랐다.
단지, 우리 둘에 관한 얘기만 없었다.
“넌 결혼해도… 이혼 같은 거 하지 마라. 이쪽 저쪽에 귀찮아지거든.”
또 이런다 또. 남 얘기하듯 내 결혼 얘길…
“저기 오빠…”
“음?”
“나 아직 시집간 거 아니거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빠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말뜻을 모를 리 없다.
이것으로 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뜻이지?”
“해석해 봐. 오빠 그런 거 잘 하잖아.”
“그건… 내가 아직 장가가지 않았단 말과 같은 뜻인가?”
…푸훗.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어이없는 반문이 있나.
뭐 틀린 건 아니지. 하하.
어쨌거나 그의 표정은 눈에 띠게 밝아져 있다. 역시 내심 화해를 바라고 있던 게야.
(삐리비리빗~ 삐리비리빗~)
이안 오빠가 뭔가 말하려는 중에,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린다.
그의 전화인 듯 하다.
그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계속 울려대는 벨소리.
“받아봐….”
“아, 응. 여보세요~? 어, 너 웬일이냐?”
마지 못해 전화를 받는 그의 표정이 약간 변한다. 누굴까…?
“나…? 지금 신촌 스타벅슨데… 어, 아니, 야…”
전화가 도중에 끊어졌는지, 그가 전화를 얼굴에서 뗀다.
핸드폰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매우 황당할 때의 그것이다.
“누구야…?”
“아… 아는 애.”
“아는 애?”
그가 잠시 말을 멈춘 채 뭔가 생각하고 있다. 누구한테 전화가 왔길래 저러지?
“저기 오빠…”
“아…!”
그가 계단 쪽을 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어떤 여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저 사람이 전화한 주인공인가?
“헤햇, 1분도 안 걸렸지? 아…”
“…….”
“…….”
이안 오빠와 아는 사이인 듯한 여자…
멀리서 봤을 때는 정장차림이어서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굉장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
친척 아이? 아니, 이안 오빠의 친척 중에 여동생은 없다. 학부 다니는 후배인가? 아니,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해사한 어린 얼굴이다.
그 얼굴이 나를 보자마자 굳어지는 이유는 뭘까.
이안 오빠가 입을 떼었다.
“저기, 소개하지. 여긴 정혜경. 내가 전에 말한…”
“…죄, 죄송해요…!”
그녀가 황망히 고개를 숙이더니 뒤돌아 나간다.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지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아, 아니…”
“오빠, 쟤 누구야? 아까 전화한 그 아는 애?”
“…음…”
대답을 주저하는 그.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당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
“…혹시, 요즘 새로 만나는 여자야?”
“아니… 그게.”
바로 부정하지 않는다. 아 이런…
어쩐지 반지도 안 보인다 했더니만…
“정말…”
“그건 아니야. 몇 번 만난 것 뿐이고…”
“만난 거 맞아?”
궁색한 변명. 난 어이없어할 준비를 대충 마쳤다.
아니, 전화 안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딴 여자를 만나…?
“아니… 쟤는 고딩이라니까…?!”
“여고생이랑…??!”
참 내, 이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은 처음 듣는다. 여고생이라고?
요즘 여고생들은 정장에 힐 신고 다니나?
그리고 오빠가 왜 여고생이랑 단둘이 만나고 다녀?
“미안, 혜경아, 자, 잠깐만 기다려…”
“오, 오빠…!”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녀를 쫓아가는 건가…?
나더러 어쩌라구…?
……
그가 나간 지 10분여가 지났다.
마치 10시간 같은 10분이었다.
아까의 그 상황을 본 주변의 시선이 계속 내게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연민의 시선. 젠장.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
달깍.
이것으로 벌써 여섯번째다. 뭘 하고 있는지,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의 가방은 카운터에 맡겼다.
주변을 돌아봐도 그와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황당할 데가 있나.
신촌역 출구 앞에서 인파에 부대끼며, 난 잠시 멍해 있었다.
돌아갈까… 차 대 놓은 곳까지 처량하게 걸어갈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부르르르~~~~)
전화다. 진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화기를 든 손이 떨린다.
서둘러 폴더를 열며 다짜고짜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디야?!”
“아, 저기… 혜경씨? 저 박수현입니다만…”
“…에.”
이안 오빠가 아니다. 변호사 아저씨.
“아,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다른 분 만나고 계셨던 모양이죠?”
“예… 그게 좀…”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큰 문제 생겼죠.
남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 놔두고 딴 여자 쫓아갔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아, 아녜요. 웬일이세요?”
“아,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안부전화 드린 겁니다.”
“예에… 고맙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예, 메리 크리스마스.”
언제나 그렇지만 성실한 양반이군.
가만 있자…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저기, 잠깐만요.”
“예?”
“저… 지금 시간 되시나요?”
“아… 예, 얼마든지요.”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여기 신촌역이에요.”
……
그는 집이 가까운지, 아님 마침 근처에 있었는지, 놀랍게도10분만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법적인 문제라도 생기셨습니까? 하하…”
이런 상황인데도 그의 농담에 웃음이 나온다.
“법적인 문제 아니면 안되나요?”
“아니면 더 좋지요.”
“저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죠.”
“알겠습니다.”
……
“그래서, 뒤따라 나가버리더란 말이죠.”
“아니 저런…”
간단하게 밥을 먹은 뒤에 들른 바.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안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건, 석 잔째의 데킬라가 너무 맛있다 보니 무심결에 하게 된 걸 게다.
그리고 보니 무심결에 술도 마시고 있군.
“힘드셨겠습니다.”
“아아니, 어떻게, 그,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 혜경씨…”
그가 갑자기 날 물끄러미 쳐다본다.
“조명이 어두워서 몰랐는데 꽤 얼굴이 빨개지셨네요. 말씀도…”
“네…네?”
“혹시 술 약하십니까?”
내가, 말이 꼬이고 있는 건가?
아닌데. 멀쩡한데.
얼굴이 좀 뜨거운 것 같긴 하다. 뭔가 부끄러운 건가. 술 못한다는 게?
“아니, 무슨… 저 화,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한 잔 더 시켜두세요.”
“혜경씨…?”
애써 태연하게 자리를 뜨려 했으나, 갑자기 술집 바닥이 약간 기울어 보인다.
어어…
“혜경씨, 괜찮습니까?”
“아, 아아, 괜찮다니까요.”
걱정 어린 변호사 아저씨의 얼굴. 동정하는 표정인가?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마.
그딴 식의 표정은 아까 스타벅스에 있던 사람들이 날 보고 짓던 거잖아.
난 그냥 다시 자리에 눌러 앉으며 외쳤다.
“여기 피나콜라다 한 잔 주세요.”
……
그리곤… 그 다음부터는 필름이 아주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 비명 등과 함께.
그리곤 새카맣게. 페이드 아웃.
……
……
나는 다시 눈을 뜬다.
창 밖의 새하얀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다.
눈 덮인 거리… 마치 꿈과 같은, 하지만 분명한 현실.
머리 속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이 느껴지고, 왠지 몸이 무겁다.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얇은 요가 흘러내리며 허전함과 서늘함이 남는다.
그와 함께 근처에서 들려오는 또다른 사람의 규칙적인 숨소리.
…아, 결국 이렇게 된 건가.
(넌 술 마시면 끝장이니까, 나랑 있을 때 말고는 한 잔 이상 마시면 안돼)
그랬었지.
(특히 다른 남자랑 있을 때는 절대 안돼…직장 회식자리라도. 알았지)
그래, 그랬었지…
“으음… 혜경씨…?”
난 그 목소리의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로, 가만히 요를 두르고 창가에 섰다.
어딘지 모를 새벽녘의 거리 위엔 차도, 한 명의 사람도 없는 채다.
창문을 조금 열자, 시릴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한 줄기 새어 들어온다.
새하얗고, 차갑다.
문득 내 어깨 위로 올려지는 손길이 느껴진다.
우울하지만 청량한 이 순간을 깨는 그 미지근함.
난 그 손길을 슬며시 피하며, 빨려 들어가 버릴 듯한 그 하얀 공간을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노리로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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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책임 연재에 대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변명은 게시판을 참조해 주십시오.
** 참고로, 조아라 게시판(뜰)을 사용하는 것은 **에 그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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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그냥 집에 들어온 이후, 나는 끝내 이안 오빠에게 전화하지 못했다.
물론 그로부터의 연락도 없다.
혼자서 얼마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는지 모른다.
회사에서 일이 없을 때.
퇴근하고 쓸쓸히 방문을 열면서.
일요일 아침에 홀로 눈을 뜰 때…
그렇게 한 달쯤이 흘렀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항상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이안 오빠는 상냥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독단적인 구석이 있었다.
이치에 맞게 반박하지 못할 경우,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힌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먼저 토라지는 것은 항상 나였지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나였다.
…아니, 내가 언제나 잘못했던 거야? 그건 아닐 텐데.
이번만큼은… 그로부터 전화를 받고 싶었다.
……
“그럼, 모두 퇴근해도 좋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팀장의 느끼한 눈빛을 애써 피하면서 회사를 나섰다.
그 동안 토요일까지 부려먹은 탓에 프로젝트는 대충 끝나서,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은 이례적으로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 그러면 뭐하나. 만날 사람도 없는데.
아직 대낮인데도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제법 도로가 막힌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왼손에 낀 반지가 눈에 띈다.
은색의 커플링. 작년 이맘때 오빠가 선물해 주었던 것…
비싸진 않아도 제법 세련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었다.
두 개를 나눠 끼면서, 나중엔 더 좋은 거 하자고 했었는데…
…내가 아직도 이 반지를 끼고 다니는 걸 그는 알까?
…딴 생각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어라, 이 길로 쭉 가면 신촌인데…
……
어쩌다 보니 그의 원룸까지 와 버렸다.
눈에 익은 깔끔하지도 허름하지도 않은 건물. 9월 말에 왔던 후로 처음인가. 석 달 만이군.
하지만 그 전까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왔던 곳이다.
내가 독립하기 전부터, 운전을 하기 전부터…
처음엔 생각보다 지하철 역에서 멀어서, 가끔 막차를 놓치고 화내기도 했었지.
밤중에 혼자 택시 타고 가는 건 위험하다며, 데려다 주던 자상함.
3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그의 집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또 내가 항복을 하는 건가. 자존심도 없이.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지금 만날 사람도 없고, 그에게서 받은 반지를 끼고 있으며, 그의 잘 정돈된 목소리가 그립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반응이 없다.
(딩동 딩동)
“…….”
어디 나간 모양이다.
대학원생이 방학에 수업을 할 리 없고, 학원도 오늘 쉴 텐데…
도서관? 겨울엔 춥다면서 일 없으면 잘 안 나가는 사람이다.
친구 만나러 나갔나? 설마, 벌써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니겠지.
…아유, 됐다 됐어.
……
힘없이 건물을 빠져 나왔다.
회색빛 건물을 쓰윽 올려다보았다. 다시 여기 올 일이 있을까…
그나저나 오늘 어쩌지. 남친 없는 친구들한테 전화나 해 볼까.
원래 요맘때는 서로서로 안 만나주는 게 불문율이긴 하지만…
…착잡한 마음으로 뒤돌아서니, 그가 있었다.
이안 오빠다.
“어, 어멋…!”
“…….”
방심한 상태에서 갑자기 그와 마주치게 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적이 놀란 표정의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
“웬일이야…?”
뭐라고 말할까.
운전하다가 문득 커플링 보고 오빠 생각나서 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할까.
그럴까.
“저기…”
고개를 들어 그를 본다.
수수한 차림에 가방을 멘 그는 누굴 만나고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왼손 손가락엔 나와 같은 반지는 없다.
“…그냥, 근처 지나가다가…”
“…….”
“그만…가볼게.”
왠지 짜증이 난다.
혼자서 줄기차게 커플링 끼고 있던 것이 굉장히 민망하게 느껴진다.
난 상기된 얼굴을 숨기기 위해, 그를 외면하고 걸음을 옮겼다.
……
계속 걸었다.
근처에 대 놓은 차로는 가지 않았다. 그의 원룸으로 찾아온 티가 너무 나니까.
큰길로 나와 상점가를 따라 걸었다. 그가 말없이 따라오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약간 안심이 된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그가 나란히 걷고 있다.
“오랜만이네.”
“…응.”
“변호사랑은 잘 돼 가?”
…제일 먼저 묻는 게 뭐 이따위냐.
“…몇 번 정도 더 만났어.”
“그래.”
“오빤… 잘 지냈어?”
그가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나야… 그냥 그렇지.”
……
꽤나 길고 천천히 안부를 묻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역 앞이다.
“집에… 가는 거니?”
“…….”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어.
나는 돌아서서 그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 우리 얘기 좀 해…….”
“…어...? 응.”
……
음료를 받아 들고 스타벅스 2층으로 올라갔다.
재수 좋게도 창 쪽의 편안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는 앉자마자 고개를 돌려, 나 대신 창 밖을 본다.
눈이 오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도 내리지 않던 눈이다.
“우리 만난 이래 크리스마스에 눈 오는 건 처음이네.”
“그러게…”
화이트 크리스마스…
지금 그의 커피컵 위에 얹힌 크림처럼 소복한 눈이 쌓인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바래 왔던가.
이런 애매한 순간에 때맞춰 잘도 오는군.
“…얘기 하자며.”
“…아.”
말없이 차를 마시고 있는 내게, 그의 무뚝뚝한 말이 이어진다.
“네가 왜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결혼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
“차마 축하는 못 해주겠다만…”
아주 내가 그 변호사랑 결혼하게 된 분위기다.
모처럼 찾아와 준 사람에게 도대체 이게 뭔가?
어이가 없다.
“…….”
그는 또다시 창 밖을 바라본다. 슬슬 답답해진다.
그가 먼저 본론으로 나와주길 기다려서 그렇지, 사실 말할 건 쌓였다.
오빠, 그 동안 왜 연락 안 했어?
내가, 오빠한텐 내가 그 정도의 여자였던 거야?
아니면 오빠가, 그렇게도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던 거야?
진짜 딴 여자라도 생긴 건가?
“저기…”
“회사 일은 잘 되니? 요즘도 토요일에 출근해?”
“아… 뭐, 이제 끝났어. 다음 주부터는 당분간 놀 거야.”
“잘 됐네…”
“그렇지 뭐. 오빤?”
“난 계속 학교 나가고… 학원도 그대로…”
아이구, 본론으로 들어갈 기회를 또 놓쳐버렸다.
……
“그래서, 얘 경우엔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이혼한 것 같아. 좌우간 둘 다 1년 안 넘겼어.”
“에이 정말? 설마…”
“아니 정말이야. 요새 진짜 이혼 많이 하더라고.”
오랜만에 만나니 할 얘긴 많았다. 한 시간 가량 이야기가 쉴새 없이 이어졌다.
직장 얘기, 주변 사람들 얘기, 날씨 얘기 등등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까지 화제에 올랐다.
단지, 우리 둘에 관한 얘기만 없었다.
“넌 결혼해도… 이혼 같은 거 하지 마라. 이쪽 저쪽에 귀찮아지거든.”
또 이런다 또. 남 얘기하듯 내 결혼 얘길…
“저기 오빠…”
“음?”
“나 아직 시집간 거 아니거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빠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 말뜻을 모를 리 없다.
이것으로 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뜻이지?”
“해석해 봐. 오빠 그런 거 잘 하잖아.”
“그건… 내가 아직 장가가지 않았단 말과 같은 뜻인가?”
…푸훗.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어이없는 반문이 있나.
뭐 틀린 건 아니지. 하하.
어쨌거나 그의 표정은 눈에 띠게 밝아져 있다. 역시 내심 화해를 바라고 있던 게야.
(삐리비리빗~ 삐리비리빗~)
이안 오빠가 뭔가 말하려는 중에,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린다.
그의 전화인 듯 하다.
그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계속 울려대는 벨소리.
“받아봐….”
“아, 응. 여보세요~? 어, 너 웬일이냐?”
마지 못해 전화를 받는 그의 표정이 약간 변한다. 누굴까…?
“나…? 지금 신촌 스타벅슨데… 어, 아니, 야…”
전화가 도중에 끊어졌는지, 그가 전화를 얼굴에서 뗀다.
핸드폰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매우 황당할 때의 그것이다.
“누구야…?”
“아… 아는 애.”
“아는 애?”
그가 잠시 말을 멈춘 채 뭔가 생각하고 있다. 누구한테 전화가 왔길래 저러지?
“저기 오빠…”
“아…!”
그가 계단 쪽을 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어떤 여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저 사람이 전화한 주인공인가?
“헤햇, 1분도 안 걸렸지? 아…”
“…….”
“…….”
이안 오빠와 아는 사이인 듯한 여자…
멀리서 봤을 때는 정장차림이어서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굉장히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
친척 아이? 아니, 이안 오빠의 친척 중에 여동생은 없다. 학부 다니는 후배인가? 아니,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해사한 어린 얼굴이다.
그 얼굴이 나를 보자마자 굳어지는 이유는 뭘까.
이안 오빠가 입을 떼었다.
“저기, 소개하지. 여긴 정혜경. 내가 전에 말한…”
“…죄, 죄송해요…!”
그녀가 황망히 고개를 숙이더니 뒤돌아 나간다.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지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아, 아니…”
“오빠, 쟤 누구야? 아까 전화한 그 아는 애?”
“…음…”
대답을 주저하는 그.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당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
“…혹시, 요즘 새로 만나는 여자야?”
“아니… 그게.”
바로 부정하지 않는다. 아 이런…
어쩐지 반지도 안 보인다 했더니만…
“정말…”
“그건 아니야. 몇 번 만난 것 뿐이고…”
“만난 거 맞아?”
궁색한 변명. 난 어이없어할 준비를 대충 마쳤다.
아니, 전화 안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딴 여자를 만나…?
“아니… 쟤는 고딩이라니까…?!”
“여고생이랑…??!”
참 내, 이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은 처음 듣는다. 여고생이라고?
요즘 여고생들은 정장에 힐 신고 다니나?
그리고 오빠가 왜 여고생이랑 단둘이 만나고 다녀?
“미안, 혜경아, 자, 잠깐만 기다려…”
“오, 오빠…!”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녀를 쫓아가는 건가…?
나더러 어쩌라구…?
……
그가 나간 지 10분여가 지났다.
마치 10시간 같은 10분이었다.
아까의 그 상황을 본 주변의 시선이 계속 내게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연민의 시선. 젠장.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
달깍.
이것으로 벌써 여섯번째다. 뭘 하고 있는지,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의 가방은 카운터에 맡겼다.
주변을 돌아봐도 그와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황당할 데가 있나.
신촌역 출구 앞에서 인파에 부대끼며, 난 잠시 멍해 있었다.
돌아갈까… 차 대 놓은 곳까지 처량하게 걸어갈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부르르르~~~~)
전화다. 진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화기를 든 손이 떨린다.
서둘러 폴더를 열며 다짜고짜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디야?!”
“아, 저기… 혜경씨? 저 박수현입니다만…”
“…에.”
이안 오빠가 아니다. 변호사 아저씨.
“아,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다른 분 만나고 계셨던 모양이죠?”
“예… 그게 좀…”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큰 문제 생겼죠.
남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 놔두고 딴 여자 쫓아갔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아, 아녜요. 웬일이세요?”
“아,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안부전화 드린 겁니다.”
“예에… 고맙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예, 메리 크리스마스.”
언제나 그렇지만 성실한 양반이군.
가만 있자…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저기, 잠깐만요.”
“예?”
“저… 지금 시간 되시나요?”
“아… 예, 얼마든지요.”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여기 신촌역이에요.”
……
그는 집이 가까운지, 아님 마침 근처에 있었는지, 놀랍게도10분만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법적인 문제라도 생기셨습니까? 하하…”
이런 상황인데도 그의 농담에 웃음이 나온다.
“법적인 문제 아니면 안되나요?”
“아니면 더 좋지요.”
“저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죠.”
“알겠습니다.”
……
“그래서, 뒤따라 나가버리더란 말이죠.”
“아니 저런…”
간단하게 밥을 먹은 뒤에 들른 바.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안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건, 석 잔째의 데킬라가 너무 맛있다 보니 무심결에 하게 된 걸 게다.
그리고 보니 무심결에 술도 마시고 있군.
“힘드셨겠습니다.”
“아아니, 어떻게, 그,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 혜경씨…”
그가 갑자기 날 물끄러미 쳐다본다.
“조명이 어두워서 몰랐는데 꽤 얼굴이 빨개지셨네요. 말씀도…”
“네…네?”
“혹시 술 약하십니까?”
내가, 말이 꼬이고 있는 건가?
아닌데. 멀쩡한데.
얼굴이 좀 뜨거운 것 같긴 하다. 뭔가 부끄러운 건가. 술 못한다는 게?
“아니, 무슨… 저 화,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한 잔 더 시켜두세요.”
“혜경씨…?”
애써 태연하게 자리를 뜨려 했으나, 갑자기 술집 바닥이 약간 기울어 보인다.
어어…
“혜경씨, 괜찮습니까?”
“아, 아아, 괜찮다니까요.”
걱정 어린 변호사 아저씨의 얼굴. 동정하는 표정인가?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마.
그딴 식의 표정은 아까 스타벅스에 있던 사람들이 날 보고 짓던 거잖아.
난 그냥 다시 자리에 눌러 앉으며 외쳤다.
“여기 피나콜라다 한 잔 주세요.”
……
그리곤… 그 다음부터는 필름이 아주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 비명 등과 함께.
그리곤 새카맣게. 페이드 아웃.
……
……
나는 다시 눈을 뜬다.
창 밖의 새하얀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다.
눈 덮인 거리… 마치 꿈과 같은, 하지만 분명한 현실.
머리 속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이 느껴지고, 왠지 몸이 무겁다.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얇은 요가 흘러내리며 허전함과 서늘함이 남는다.
그와 함께 근처에서 들려오는 또다른 사람의 규칙적인 숨소리.
…아, 결국 이렇게 된 건가.
(넌 술 마시면 끝장이니까, 나랑 있을 때 말고는 한 잔 이상 마시면 안돼)
그랬었지.
(특히 다른 남자랑 있을 때는 절대 안돼…직장 회식자리라도. 알았지)
그래, 그랬었지…
“으음… 혜경씨…?”
난 그 목소리의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로, 가만히 요를 두르고 창가에 섰다.
어딘지 모를 새벽녘의 거리 위엔 차도, 한 명의 사람도 없는 채다.
창문을 조금 열자, 시릴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한 줄기 새어 들어온다.
새하얗고, 차갑다.
문득 내 어깨 위로 올려지는 손길이 느껴진다.
우울하지만 청량한 이 순간을 깨는 그 미지근함.
난 그 손길을 슬며시 피하며, 빨려 들어가 버릴 듯한 그 하얀 공간을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노리로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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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책임 연재에 대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변명은 게시판을 참조해 주십시오.
** 참고로, 조아라 게시판(뜰)을 사용하는 것은 **에 그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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