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노리로리 -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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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믿어지지 않는 얘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엄마는 일찍 들어왔다.



“…노리야, 자니?”

“으응…”



일찍 와서 영화를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지지리도 재미없던 4시간짜리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일찍 들어왔나 보네.”

“기말시험 끝났으니까요.”

“그래…”



시험 어땠느냐, 잘 봤냐… 그런 식의 그 다음 이야기는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근데 엄마,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응,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서…”

“……별 일도 다 있네.”

“뭐라고?”

“아니에요. 암것두.”



엄마는 부엌에서 냉장고 문을 열고 토마토 주스를 꺼낸다.



“한 잔 마실래?”

“…네.”



방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엄마는 주스를 따르더니 식탁에 앉는다.

주스 두 잔을 놓고 마주앉은 모녀… 꽤 오랜만이네. 이런 일은.

묘한 분위기.



“다음 주엔 크리스마스구나.”

“그러게요.”

“누구, 친구들이랑 약속 있니?”

“…아직요.”



하지만 엄마 안 들어온다면 연락해야죠.

바로 지금.



“그럼 엄마랑 저녁이나 같이 먹을래? 오랜만에 근사한 데서.”

“……!”

“24일 저녁에. 싫어?”

“아, 아니…”



우와.

우와.

우와아…





……

“…응. 그래서 오빠는 크리스마스 때 뭐 해?”

“뭐 별로… 아, 학교에 일 있어서 나가봐야 될 것 같아.”

“크리스마스날?”

“아니,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 누구에겐가 내 작은 기쁨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이안 오빠에게 전화하고 나니 말 꺼내기가 약간 민망했다.

하긴 엄마랑 이브날 밥 먹는다는 게 무슨 대단한 자랑이람.

은진이한텐 전화하지 말아야겠다.



“흐음… 저녁까지?”

“설마, 선생님도 가족이 있으신데. 성당에 가 볼까 생각 중이다.”

“어, 성당 다녀?”

“다녔었지… 예전에. 별로 할 일도 없으니까.”

“에그 불쌍해라… 여친 없는 비참한 성탄…”

“남이사.”



아, 엄마만 아니면 이 사람이랑 만나고 싶다. 편안하니까.

하지만 오빠랑은 다음 기회에~



“놀아주고 싶지만, 소녀는 약속이 있사옵니다.”

“야, 내가 언제 너한테 놀아달랬…”

“크리스마스 끝나고 놀아줄 테니까 울지 마아~”

“……어휴.”

“히히히.”



……

……

아, 이제 하룻밤만 자면 크리스마스 이브다.



(똑똑)



“엄마 오셨어요?”



“이거…”

“……!”



회사에서 돌아온 옷차림 그대로 들어온 엄마가 내민 쇼핑백.

그 안에는 포장된 상자가 들어 있었다.



“풀어 보렴.”

“…와아.”



상자 안에 든 것은 예쁜 구두였다. 굽이 약간 높은 까만색 구두.

이런 굽 높은 신발은 신어 본 적이 없는데… 아마 이거 신고 학교 갈 순 없겠지?

그래도 정말 이쁘다…



“어때…?”

“너무 예뻐요…”

“조금 이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내일 신어 볼래…?”

“네…네!”





……



“하…하하…와우…”



크리스마스 이브의 오후.

난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눈 앞에는 여고생이라기보단 웬 숙녀가 한 사람 서 있었으니…



어제 선물받은 구두를 신기로 했으나, 문제는 거기에 어울리는 옷이 없었다.

결국 오밤중에 엄마 도움을 받아서 엄마 옛날 정장을 꺼냈다.

까만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스커트.

엄마 옷은 놀랍게도 잘 맞았다. 울 엄마 몇 년 전까지 이렇게 날씬했단 말야?



마지막으로 문제의 구두를 신어서 정장차림 완성…!

…우악, 묘한 느낌…

굽이 높아지니까 다리가 후들거린다.

나 약속장소까지 갈 수 있을까…?



……

엄마랑 만나기로 한 남산 H호텔 로비에서 서 있은지 10분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힐끔힐끔 바라본다. 히히.

엄마, 빨리 와. 이뿐 딸이 기다리고 있어요.



“노리야…?”

“…엄마?”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

몸을 돌리니 엄마가 걸어오고 있다.

그런데… 옆에 함께 오는 남자는 누구지?



“얘, 이 쪽 분은 엄마 회사 동료 정현씨… 정현씨, 이쪽은 내 딸.”

“안녕…? 어유, 여고생이라고 들었는데 아가씨 다 되었네요.”

“뭐 그렇지… 노리야, 인사 드려야지.”

“…….”



뭐야.

뭐야. 이게…



“……엄마.”

“왜…?”



난 엄마 회사 동료라는 아저씨를 무시하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우리 둘이서만 저녁 먹는 거 아니었어요?”

“아저씨도 일정이 없다고 해서 식사 같이 하기로 한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뭐 어떠니…?”

“오랜만에 나랑 외출하는 거 아니었어요?”

“…너 자꾸 왜 이러니? 엄마 민망하게.”



정말 어이가 없다.

혹시…??!



“엄마, 설마 저 아저씨랑 만나는 거에요?”

“…뭐라고?”

“아저씨, 말해봐요. 우리 엄마랑 사귀어요?”

“아니…저…”

“얘…!!”



낯선 아저씨는 무슨 말을 해야 될 지 모르는 표정이고, 엄마는 안색이 변했다.

그런 거야…?



“노리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아저씨한테 사과드려라.”

“내가 왜요?”

“얘가 정말…”

“저기, 부장님 괜찮습니다…”

“…두 분이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더 추한 모습 보이기 전에, 난 호텔 로비를 빠져나왔다.

어쩐지 이상하게 얘기가 잘 풀렸어.

갑자기 엄마가 식사하자고 한 것이나, 신고 나올 신발 사다 준 것…

아빠처럼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그걸 인정 받기 위해서 나한테 잘 해 준거야?

…참, 거지 같은 방식이네.



……

(따르르릉~)



호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핸폰 번호가 찍힌 것을 보곤 바로 전화기를 껐다.

무작정 호텔 로비 앞에 서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저기……”



집? 집에 가긴 싫다.

그래…



“…시, 신촌으로 가주세요.”



간신히 한 마디를 짜낸 뒤 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씩 눈이 오고 있는 거리는 온통 회색빛이다.



“으…우우…”



가슴 속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털어 버리기 위해, 난 창문을 열고 숨을 내쉬었다.

울면 안돼.

하지만 눈물을 참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어서, 신촌까지 가는 동안 전화를 할 순 없었다.



……

신촌역 근처에 내렸다. 요새 정말 여기 자주 오네.

이제 좀 개운하다. 그래, 아무렇지 않게 이안 오빠를 만나는 거다.

…만날 수 있다면 말이지.

전화를 다시 켜고 조용히 1번 버튼을 눌렀다. 오빠, 제발 받아 주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 너 웬일이냐?”



깜짝 놀란 듯한 그의 반응. 평소와 다른데…?

내 전화가 그렇게 반가운가?



“저기… 어디야…?”

“나…? 지금 신촌 스타벅슨데…”



아앗 럭키~! 집에 가지 않았구나.

게다가, 걸음을 멈추자 바로 스타벅스 앞이다.

엉뚱한 곳에서 일이 잘 풀리는걸.



“어? 나두~! 오빠 어디야? 아냐, 내가 찾을게. 지금 올라간다~”



전화를 끊고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이 빨라지다 보니 구두가 신경쓰인다… 애고.

계단 옆 지지대를 붙잡고 올라갔다. 힘들어. 제발 2층에 있었으면…

…아, 2층에 있다! 만세에~



“오빠아!”

“어…”

“헤햇, 1분도 안 걸렸지? 아…”

“…….”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하고 다가가는 순간, 나는 묘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우아한 긴 머리의 여자.

날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아마 나도 저런 얼굴이겠지…?



“저기, 소개하지. 여긴 정혜경. 내가 전에 말한…”



…전에 말한 여자친구.

진짜 여자친구가 있었구나.

하지만 이렇게 예쁘단 얘긴 안 했었는데.

그리고… 헤어진 것이 아니었구나.



“…죄, 죄송해요…!”



난 바보 같은 말 한 마디만을 남기고 돌아섰다.

아, 바보 같아. 정말.



휘청거리는 몸을 애써 가누며 돌아 나왔다. 괜히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다.

역시, 굽 높은 신발은 아직 내게는 어울리지 않아.

엄마와의 화기애애한 크리스마스 저녁이나,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만큼이나 말이지.



……

다시 눈 내리는 거리에 섰다.

그 날의 비 오던 날 저녁만큼이나 허망하고 슬프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아직 눈물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애써 후들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연재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지난 주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게시판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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