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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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사랑아, 내 사랑아!!
순애는 남편이 넥타이를 매는 동안 양복 상의를 받쳐들고 있다. 아침 출근 때마다 반복되는 하나의 일상, 그리고 하루의 시작이다.
“저녁에 동반 모임이 있어, 차 보낼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네? 무슨 모임인데요?”
가끔 있는 일이지만 늘 부담스러운 부부동반, 그 말에 순애는 벌써부터 가슴이 갑갑해진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억지 미소를 지어야 하고, 별로 웃을 일이 아닌데도 그들과 함께 웃어줘야 하고, 음식도 품위있게 먹어야 하고, 대화나 작은 행동에도 사장 부인답게 우아함을 갖춰야 한다. 가면무도회가 있다면 차라리 훨씬 나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동반 모임을 통고 받는 날은 하루 종일 중압감에 시달려 마치 체한 듯한기분에 눌려있어야 했다.
“오늘이 창립 기념일이잖아.”
“네.....”
“표정이 왜 벌레씹은 얼굴인가? 싫어?”
“사람 많이 모이는 그런 자리는 불편해요. 긴장도 되구요.”
“촌스럽기는...하여튼 행복에 겨워도 문제야...이젠 체질이 바뀔 때도 됐쟎아.”
“제 체질이 어때서요?”
“나와 함께 참석하는 파티에 얼굴 내미는 걸 고깝게 생각하는 그 버릇...”
“성장 배경이 다르잖아요. 일반적인 결혼도 아니구...”
“나 참, 바뀔 때가 됐다는데, 말귀를 못 알아들어.”
“....어서 출근이나 하세요.”
“벌써 몇 년이야...이건 뭐, 맨날 떨뜨름이니 원....”
남편의 그 말은 맞다. 순애는 일상이 늘 죄지은 사람처럼 불안하고, 뜰뜨름한 기분에 젖어 ,마치 마음의 심연에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창립기념 파티는 본사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규모에 걸맞게 초청된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남편 신무일 사장과 큰사위 허재수 부사장, 그리고 민전무 내외가,이 사람, 저 사람들 한테 인사를 받으며 파티장을 돌고 있는 동안 순애는 마치 불청객처럼 한쪽 구석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만 있다.
잠시 남편이 부르는 손짓에 다가 갔다가도, 그가 다른쪽으로 이동할 때를 기다려,이내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순애.
그때 ,비슷한 또래의 한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슬그머니 다가온다. 분명 낯선 얼굴이 아닌데.
순애는 마주 웃어주지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이다.
“...박 순애 맞지?”
“누구?”
“나 모르겠어? 모라야. 윤 모라!”
“아, 그래, 모라...너무 변해서 몰라 봤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어떻게 여학교 친구도 몰라 보니?”
“미안해, 대체, 우리가 몇 년만에 만나는 거니?”
“글쎄? 내가 2 학년때 헤어지고 처음이니까, 십 년이 넘어간다..얘.”
“벌써 그렇게 됐구나. 근데, 여긴 웬일야? 남편이 혹시?”
“응, 이 회사에 있어. 사원으로 들어와서 지금까지...그럼, 순애 신랑도?”
“으응, 실은...”
“얘, 니 신랑 얼굴 좀 보자...나는 니가 결혼한 것도 모르고 있었어.”
“음...어디 있는지 안 보이네. 니 남편은?”
모라는 자기 남편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마침 저만치서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 저기 온다...”
“당신, 여기서 뭐해?”
다가온 남자는 모라에게 말한뒤 대뜸 순애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제 보니, 모라 남편이셨군요.”
“우리 사장님 사모님이셔.”
의아해 하는 모라에게 남자는 순애를 소개했다.
“어머, 그래? 전혀 몰랐네...”
“그럼, 말씀 더 나누십시오. 저는....”
남자가 자리를 뜨자,모라는 순애에게 바싹 붙어 "신랑이 사장님이었구나"를 한참 곱씹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언가 이상한 듯 의아한 표정이다.
신무일 사장은 내 년이면 회갑을 맞이하는 초로의 나이다. 하지만 순애는 이제 자기와 동갑인 갓 서른?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관계같았다.
갑자기 난처해진 것은 순애도 마찬가지였다. 모라와 마주 서 있기가 거북했다.
“어쩜....시온전자 사장님의...”
“너무 그러지 마. 나는 집에서 그냥 살림이나 할 뿐야”
“어쨌든, 부럽다 얘.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모실테니까, 우리 남편 잘 부탁한다.”
“별 소리를 다 한다.”
학교 다닐 때 친구라고해서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다행히 모라가 저쪽으로 자리를 옮겨,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근데, 모라가 자리를 뜨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여자들이 번차로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그들 모두가 자기 남편의 안위와 승진을 위해서 빌미를 만들려는 의도임을 순애도 대충은 눈치 채고 있었다.
물론 이런 자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알레르기가 생길 정도로 순애는 모든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자기가 서 있을 위치가 아닌 자리에 멍하게 서 있는 듯한 생소함. 무거운 바윗돌이 항상 가슴위를 짓누르고 있는 그 답답함 뿐이었다.
* * * *
이튿날 내가 문현구의 오피스텔에서 나온 시각이 열시. 해장 겸 속풀이까지 하자는 것을 간신히 뿌리치고 역으로 왔다.
그의 건강이 염려되면서도 굳이 충고는 하지않았다.자기가 하고싶은 일에 매달려 승부를 걸고있는 집념이나 철학이 부러웠을뿐.
나는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열차에 몸을 실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데다가 속까지 쓰려 아주 죽을 맛이다.
와중에 문득 술에 대한 일화가 생각난다.
“무얼 하고 있는가?”
“아름답고 맛있는 나무를 심고 있지요!”
“이런 나무는 본 적이 없는데...”
“이 나무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지요. 그 즙을 마시면 누구라도 기분이 황홀해질 것....”
악마는 자기도 한 몫 끼워달라고 하면서, 양, 사자, 돼지, 원숭이를 데리고 와서 그 짐승들의 피를 거름으로 뿌렸다.
그것이 포도주, 즉 술이 생겨난 기원이다.
술은 처음 마실 때는 양처럼 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당당하고 사납게 되고, 더 마시면 돼지처럼 지저분해지고, 마지막으로 너무 지나치게 마시면 원숭이처럼경망해진다는 것이다.
지난 밤, 문현구 선배와 내가 꼭 그 같은 작태를 부린 것같았다.
열차는 쉬지않고 달리고 있다.무심하게 달리기만 하는 열차가 마치 저돌적인 들소처럼 생각된다.
덜컹덜컹 규칙적인 바퀴소리는 짐승의 거친 숨소리로 들렸다.
내가 미래를 향해 이런 식으로만 달린다면 인생은 훨씬 더 짧아질테고, 그러면 사랑, 미움, 분노 따위는 잊혀질지도 모를텐데...
열차가 산인역에서 정차했다.순애가 아직도 항도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혹시라도 이 열차에 오를 수도 있다는 희미한 기대가 갑자기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순애에게 건넬 첫마디를 무엇으로 할까.
"몇 년 만이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날, 왜 그렇게 사라졌어?"
"왜 한번도 날 찾으려고 하지 않았지?"
"언젠가는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알았어..."
그러나 막상 순애를 보면, 생각해 둔 그 말들 중에 그 어느 것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저 망연히 쳐다볼 뿐.
자칫 손부터 나가서 따귀를 올려 붙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통로를 누비면서 앞에서부터 마지막 객차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순애는 없었다.
열차는 무심하게 달리고, 내 가슴속은 또 다시 절망과 비애로 가득찬다.
내 스스로 내 멋대로 단정해 놓고, 마치 중요한 약속이라도 어그러진 것처럼 그렇게 낭패감에 빠져들었다.
순애는 나와 함께하는 동안 일체 다른 남자와는 접촉하지 않았다. 비록 면사포는 씌워주지 못했지만 우리는 부부였다.
그 사실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감을 갖고있다.
물론 나도 순애가 신뢰하도록 다른 여자한테는 마음을 주지않았다.
나는 그녀를 자신있게 사랑했고, 순애도 나를 그렇게 지아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 그녀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 한 영원히 모를지도 모른다.
영화배우나 모델처럼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나한테는 그 누구와도 비교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여자.
어깨아래로 찰랑거리는 칠흑같이 까만 머리, 부드럽게 살짝 휘어진 초승달 같은 눈썹과 티 하나없이 맑은 눈, 그 속에서 흑구슬보다 더 영롱한 까만 눈동자가 반짝일 때면나는 가끔씩 숨이 멎어옴을 느꼈었다.
적당한 높이에 날카롭지 않은 콧등은 오만하지 않아 마음이 편안했고, 인중 아래로 원래부터 선이 분명했던 붉은 입술이 열릴 때마다틈 없이 빼곡한 하얀 치아가 보일 때면 내 가슴은 소년처럼 두근거렸었다.
바닷가의 거친 해풍에 그을렸던 투박한 살결도 자미정에서 생활하면서 몰라보게 탈바꿈 했었다.마치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한마리 하얀 나비처럼...
여린 황금색의 투명한 피부는 먼지 바람만 일어도 쉽게 긁힐 것같아 내 마음을 졸이게 했었다.
사대부의 구중심처 규수같이 조심스런 언행에서는 한동안 장난기도 없었다.
과연 이 시대의 여자가 맞나싶을 정도로 조신한 그녀 앞에서는 나 자신이 스스로 순화되는 느낌이라, 말이나 행동을 조심했었고,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나의 그런 변화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순애는 남편이 넥타이를 매는 동안 양복 상의를 받쳐들고 있다. 아침 출근 때마다 반복되는 하나의 일상, 그리고 하루의 시작이다.
“저녁에 동반 모임이 있어, 차 보낼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네? 무슨 모임인데요?”
가끔 있는 일이지만 늘 부담스러운 부부동반, 그 말에 순애는 벌써부터 가슴이 갑갑해진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억지 미소를 지어야 하고, 별로 웃을 일이 아닌데도 그들과 함께 웃어줘야 하고, 음식도 품위있게 먹어야 하고, 대화나 작은 행동에도 사장 부인답게 우아함을 갖춰야 한다. 가면무도회가 있다면 차라리 훨씬 나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동반 모임을 통고 받는 날은 하루 종일 중압감에 시달려 마치 체한 듯한기분에 눌려있어야 했다.
“오늘이 창립 기념일이잖아.”
“네.....”
“표정이 왜 벌레씹은 얼굴인가? 싫어?”
“사람 많이 모이는 그런 자리는 불편해요. 긴장도 되구요.”
“촌스럽기는...하여튼 행복에 겨워도 문제야...이젠 체질이 바뀔 때도 됐쟎아.”
“제 체질이 어때서요?”
“나와 함께 참석하는 파티에 얼굴 내미는 걸 고깝게 생각하는 그 버릇...”
“성장 배경이 다르잖아요. 일반적인 결혼도 아니구...”
“나 참, 바뀔 때가 됐다는데, 말귀를 못 알아들어.”
“....어서 출근이나 하세요.”
“벌써 몇 년이야...이건 뭐, 맨날 떨뜨름이니 원....”
남편의 그 말은 맞다. 순애는 일상이 늘 죄지은 사람처럼 불안하고, 뜰뜨름한 기분에 젖어 ,마치 마음의 심연에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창립기념 파티는 본사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규모에 걸맞게 초청된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남편 신무일 사장과 큰사위 허재수 부사장, 그리고 민전무 내외가,이 사람, 저 사람들 한테 인사를 받으며 파티장을 돌고 있는 동안 순애는 마치 불청객처럼 한쪽 구석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만 있다.
잠시 남편이 부르는 손짓에 다가 갔다가도, 그가 다른쪽으로 이동할 때를 기다려,이내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순애.
그때 ,비슷한 또래의 한 여자가 웃음 띤 얼굴로 슬그머니 다가온다. 분명 낯선 얼굴이 아닌데.
순애는 마주 웃어주지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이다.
“...박 순애 맞지?”
“누구?”
“나 모르겠어? 모라야. 윤 모라!”
“아, 그래, 모라...너무 변해서 몰라 봤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어떻게 여학교 친구도 몰라 보니?”
“미안해, 대체, 우리가 몇 년만에 만나는 거니?”
“글쎄? 내가 2 학년때 헤어지고 처음이니까, 십 년이 넘어간다..얘.”
“벌써 그렇게 됐구나. 근데, 여긴 웬일야? 남편이 혹시?”
“응, 이 회사에 있어. 사원으로 들어와서 지금까지...그럼, 순애 신랑도?”
“으응, 실은...”
“얘, 니 신랑 얼굴 좀 보자...나는 니가 결혼한 것도 모르고 있었어.”
“음...어디 있는지 안 보이네. 니 남편은?”
모라는 자기 남편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마침 저만치서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 저기 온다...”
“당신, 여기서 뭐해?”
다가온 남자는 모라에게 말한뒤 대뜸 순애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제 보니, 모라 남편이셨군요.”
“우리 사장님 사모님이셔.”
의아해 하는 모라에게 남자는 순애를 소개했다.
“어머, 그래? 전혀 몰랐네...”
“그럼, 말씀 더 나누십시오. 저는....”
남자가 자리를 뜨자,모라는 순애에게 바싹 붙어 "신랑이 사장님이었구나"를 한참 곱씹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언가 이상한 듯 의아한 표정이다.
신무일 사장은 내 년이면 회갑을 맞이하는 초로의 나이다. 하지만 순애는 이제 자기와 동갑인 갓 서른?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관계같았다.
갑자기 난처해진 것은 순애도 마찬가지였다. 모라와 마주 서 있기가 거북했다.
“어쩜....시온전자 사장님의...”
“너무 그러지 마. 나는 집에서 그냥 살림이나 할 뿐야”
“어쨌든, 부럽다 얘.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모실테니까, 우리 남편 잘 부탁한다.”
“별 소리를 다 한다.”
학교 다닐 때 친구라고해서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다행히 모라가 저쪽으로 자리를 옮겨,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근데, 모라가 자리를 뜨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여자들이 번차로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그들 모두가 자기 남편의 안위와 승진을 위해서 빌미를 만들려는 의도임을 순애도 대충은 눈치 채고 있었다.
물론 이런 자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알레르기가 생길 정도로 순애는 모든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자기가 서 있을 위치가 아닌 자리에 멍하게 서 있는 듯한 생소함. 무거운 바윗돌이 항상 가슴위를 짓누르고 있는 그 답답함 뿐이었다.
* * * *
이튿날 내가 문현구의 오피스텔에서 나온 시각이 열시. 해장 겸 속풀이까지 하자는 것을 간신히 뿌리치고 역으로 왔다.
그의 건강이 염려되면서도 굳이 충고는 하지않았다.자기가 하고싶은 일에 매달려 승부를 걸고있는 집념이나 철학이 부러웠을뿐.
나는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열차에 몸을 실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데다가 속까지 쓰려 아주 죽을 맛이다.
와중에 문득 술에 대한 일화가 생각난다.
“무얼 하고 있는가?”
“아름답고 맛있는 나무를 심고 있지요!”
“이런 나무는 본 적이 없는데...”
“이 나무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지요. 그 즙을 마시면 누구라도 기분이 황홀해질 것....”
악마는 자기도 한 몫 끼워달라고 하면서, 양, 사자, 돼지, 원숭이를 데리고 와서 그 짐승들의 피를 거름으로 뿌렸다.
그것이 포도주, 즉 술이 생겨난 기원이다.
술은 처음 마실 때는 양처럼 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당당하고 사납게 되고, 더 마시면 돼지처럼 지저분해지고, 마지막으로 너무 지나치게 마시면 원숭이처럼경망해진다는 것이다.
지난 밤, 문현구 선배와 내가 꼭 그 같은 작태를 부린 것같았다.
열차는 쉬지않고 달리고 있다.무심하게 달리기만 하는 열차가 마치 저돌적인 들소처럼 생각된다.
덜컹덜컹 규칙적인 바퀴소리는 짐승의 거친 숨소리로 들렸다.
내가 미래를 향해 이런 식으로만 달린다면 인생은 훨씬 더 짧아질테고, 그러면 사랑, 미움, 분노 따위는 잊혀질지도 모를텐데...
열차가 산인역에서 정차했다.순애가 아직도 항도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혹시라도 이 열차에 오를 수도 있다는 희미한 기대가 갑자기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순애에게 건넬 첫마디를 무엇으로 할까.
"몇 년 만이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날, 왜 그렇게 사라졌어?"
"왜 한번도 날 찾으려고 하지 않았지?"
"언젠가는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알았어..."
그러나 막상 순애를 보면, 생각해 둔 그 말들 중에 그 어느 것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저 망연히 쳐다볼 뿐.
자칫 손부터 나가서 따귀를 올려 붙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통로를 누비면서 앞에서부터 마지막 객차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순애는 없었다.
열차는 무심하게 달리고, 내 가슴속은 또 다시 절망과 비애로 가득찬다.
내 스스로 내 멋대로 단정해 놓고, 마치 중요한 약속이라도 어그러진 것처럼 그렇게 낭패감에 빠져들었다.
순애는 나와 함께하는 동안 일체 다른 남자와는 접촉하지 않았다. 비록 면사포는 씌워주지 못했지만 우리는 부부였다.
그 사실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감을 갖고있다.
물론 나도 순애가 신뢰하도록 다른 여자한테는 마음을 주지않았다.
나는 그녀를 자신있게 사랑했고, 순애도 나를 그렇게 지아비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 그녀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 한 영원히 모를지도 모른다.
영화배우나 모델처럼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나한테는 그 누구와도 비교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여자.
어깨아래로 찰랑거리는 칠흑같이 까만 머리, 부드럽게 살짝 휘어진 초승달 같은 눈썹과 티 하나없이 맑은 눈, 그 속에서 흑구슬보다 더 영롱한 까만 눈동자가 반짝일 때면나는 가끔씩 숨이 멎어옴을 느꼈었다.
적당한 높이에 날카롭지 않은 콧등은 오만하지 않아 마음이 편안했고, 인중 아래로 원래부터 선이 분명했던 붉은 입술이 열릴 때마다틈 없이 빼곡한 하얀 치아가 보일 때면 내 가슴은 소년처럼 두근거렸었다.
바닷가의 거친 해풍에 그을렸던 투박한 살결도 자미정에서 생활하면서 몰라보게 탈바꿈 했었다.마치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한마리 하얀 나비처럼...
여린 황금색의 투명한 피부는 먼지 바람만 일어도 쉽게 긁힐 것같아 내 마음을 졸이게 했었다.
사대부의 구중심처 규수같이 조심스런 언행에서는 한동안 장난기도 없었다.
과연 이 시대의 여자가 맞나싶을 정도로 조신한 그녀 앞에서는 나 자신이 스스로 순화되는 느낌이라, 말이나 행동을 조심했었고,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나의 그런 변화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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