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회원투고] 찐따의 발악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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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순수한 창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절대 실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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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라!"
"아......!"
코앞에서 내려쳐지는 장기말을 보며 경민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졌다."
이겼다.
내 이름은 최세윤. 장기부에 소속된 고등학교 2학년이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안경을 낀 작은 체격의 남학생은 유경민. 나와 동급생인 마찬가지로 장기부의 부원이다.
"이게 얼마만에 맛보는 승리냐?"
몇 판만에 이겼는지도 모를 만큼 너무 많이 졌다. 경민이는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왜? 내 전술이 너무 단순해서 질리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곧 수업 시간이야."
시계를 가리키는 경민이. 정말 그 말대로 곧 수업종이 울릴 시간이다.
"하아!"
갑자기 경민이가 한숨을 내쉰다.
"왜 그래?"
"아니, 너랑 두는 것도 재밌기는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하고 두면 좋겠다 싶어서."
"아......"
잠시 우리들은 우리들 이외에 아무도 없는 텅 빈 부실 안을 보았다. 진짜 조용하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 이 부실 안에도 시끄러운 분위기가 감돌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장기부에 소속된 부원은 우리 둘이 전부였다.
드르르!
내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 진동이 울린다. 내가 폰을 꺼내자 경민이가 굳어진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또 그거야?"
문자를 확인한 나는 대답했다.
"응."
"이번에는 뭔데?"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경직된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방과후 전까지 우리 학교 여자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자위를 하래. 게다가 사정을 끝마쳐야만 인정이 된대."
"칫! 또 말 같지도 않은 명령을!"
그렇다. 참으로 말 같지도 않은 명령이다. 그러나 이런 터무니없는 명령을 나는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목숨은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그건 그렇고 여자 화장실에서 딸딸이를 치라니. 걸렸다간 완전 변태 취급당할 게 뻔하잖아. 게다가 방과후 전까지 끝내라니. 그 말은 즉슨 학생들과 교사들이 교내에 잔뜩 있는 시간에 일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잖아. 미치지 않고서야 이성이 쓰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런 저속한 짓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미친 짓거리를 나는 꼭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번 명령은 어려운 것 같아 보여도 허점이 존재한다. 쉬는 시간이 다 끝이 나고 학생들은 다들 교실로 들어갔다. 그래, 내가 말한 허점이란 바로 이것이다. 수업시간. 학생들이 전부 교실에 들어가 있는 이 때라면 남들 눈에 띌만한 확률이 매우 낮아지게 될 것이다. 한창 수업이 진행될 무렵 나는 눈치를 보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국어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화장실이 급해서 그러는데 갈 수 있을까요?"
"아니, 쉬는 시간에 뭘 하다가 이제서야 화장실에 가? 종 칠 때까지 참아."
"큰 볼일인데요.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항상 같은 교실에서 지내는 남녀 동급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똥이 마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이것도 다 살기 위해서다. 흔히 써먹을 법한 보건실에 간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요즘은 꾀병 부리면서 수업을 제끼는 놈들도 많은 탓에 몸이 좀 안 좋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갈만한 곳이 아니다. 국어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허락했다.
"갖다와."
"네."
다행히 교실을 빠져나오는 데에 성공한 나는 얼른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칸막이로 들어가 문을 잠근 나는 지체없이 지퍼를 내려 내 물건을 꺼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까지 한 30분 정도 여유는 있었지만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딸딸이를 쳤다. 빨리 사정하고 여길 나가야 한다.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순간 개쪽 개망신이다. 하지만 서두르는 내 마음과는 달리 자지가 쉽게 서지를 않는다. 침착하자. 상딸이야 내가 몇 번이나 해왔던 거잖아. 마음이 다급해서 잊고 있었지만 지금 처해진 상황도 야설이나 야동에 나올 법한 충분히 흥분될 만한 상황이다. 어쨌든 나는 남자이면서도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이 초조함을 흥분으로 바꿔야 한다. 상상하자. 지금 내가 있는 이 화장실 안에서는 분명 수많은 여학생들이 들락날락거리면서 속옷을 내리고 볼일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끄윽!"
10분 정도 걸린 끝에 나는 겨우겨우 사정에 성공했다. 내 귀두 끝에서 하얀 좆물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드르르!
또 진동이 느껴진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확인했다. 문자 메세지로 클리어라는 단어가 떠 있었다.
"하아!"
긴장이 풀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이 구질구질한 목숨을 연명하는 데에는 성공했구나. 그나저나 참 귀신 같은 녀석이란 말이야. 전달 받은 명령을 수행하자마자 메세지가 떴다. 대체 이 녀석은 어떻게 매번 내가 성공한 걸 알고 이런 문자를 보내는 거지? 날 감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그 경로를 전혀 모르겠다. 너무 많이 겪어서 이젠 놀랍지도 않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랑 경민이는 잠시 부실에서 모였다. 경민이는 날 보자마자 물었다.
"성공했어?"
"응. 어떻게든......"
"하아!"
경민이도 나 못지 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키는 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경민이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나라도 그랬을걸. 어떻게 그런 걸 맨정신으로 하냐?"
"그렇지?"
"그나저나 엑스 녀석,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시답잖은 일을 시킬 생각인 거지?"
"글쎄......"
엑스.
늘 괴상망측한 명령문을 작성해 오늘처럼 문자로 보내는 사이코패스도 울고 갈 정신병자다. 정체도 불분명한 이 정신병자의 명령을 내가 무리를 하면서도 따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죽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이미 변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 원래 우리 장기부의 부원은 나랑 경민이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었다. 나와 경민이, 주현준, 김태원, 정종훈. 우리들 다섯 명은 중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로서 말하기 민망하지만 무리에 잘 섞여들지 못하는 찐따 그룹이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예체능 계열에 특화된 학교로서 다양한 부가 존재하고,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보다는 예능이나 체육 분야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 고등학교로 올라온 우리들은 다 같이 이 장기부에 입부를 신청했다. 딱히 장기를 심하게 좋아해서는 아니었고, 교칙상 부활동을 하고 있으면 4교시 이후로 출석 여부는 자유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단둘 밖에 없는 3학년 선배들끼리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졸업하여 새롭게 2학년이 된 우리들끼리 장기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들 다섯 명의 청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화창한 어느 날 늘 그랬듯이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준이에게로 웬 문자가 보내졌다. 내용은 이러했다.
< 엑스의 명령은 절대적. 거부권이란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엑스의 명령을 행하지 못한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 주현준은 12시간 안에 학교 운동장을 30바퀴 돌아라. >
처음 그 문자를 보고서 현준이는 어리둥절해하며 우리에게도 보여 주었는데 어이가 없기는 다들 마찬가지였다. 대체 누가 이런 문자를 보낸 거지? 우린 현준이에게 누가 그냥 장난친 건가 보다 하면서 신경을 아예 끄도록 만들었다. 당사자인 현준이도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안이한 생각이 어떠한 참사를 가져올지는 당시로서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리가 현준이를 본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 다음날 현준이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현준이가 자기 집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우리 중 누구 하나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경찰들의 얘기로는 야심한 밤에 자기 방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경찰들은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갔지만 이렇다 할만한 동기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현준이가 비록 찐따이기는 하지만 딱히 집단 따돌림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특정 인물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경찰들은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생긴 정서적 불안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거다 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잘만 지내던 현준이가 그러한 고민거리를 갖고 있었다고?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누구한테나 아무리 친구라도 밝힐 수 없는 고민 한두 개쯤은 갖고 있는 법이니까. 좀 더 현준이를 잘 이해해 줬어야 했다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런 불상사가 잊혀져 갈 때쯤 태원이에게 문자가 송신되었다. 지난번 현준이 때와 똑같이 자신을 엑스라고 밝힌 그 문자였다.
< 정해진 시간 안에 엑스의 명령을 행하지 못한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 김태원은 6시간 안에 학교 창문을 3개 이상 깨트려라. >
지난번과는 내용이 달랐지만 비슷하다. 그 때와 똑같은 놈이 보낸 건가?
"이거 진짜 미친놈인가?"
얼마나 황당한지 태원이는 헛웃음이 다 흘러나왔다.
"잠깐만!"
경민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 문자, 전에 현준이한테도 왔던 거지?"
"그런데?"
"혹시 말이야. 현준이는 이 문자 때문에 죽은 게 아닐까?"
우린 모두 하나 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 소리야? 그럼 현준이가 그 운동장 몇 바퀴 못 돌았다는 이유로 죽었단 말이야?"
"그것 말고 짚이는 거 있어?"
종훈이가 반박했다.
"네 말대로라면 이 문자를 보낸 녀석이 현준이가 명령을 듣지 않자 직접 가서 응징을 했다는 소리인데. 현준이는 혼자 있는 자기 방에서 죽었다고. 누가 몰래 침입해서 현준이를 아파트 밑으로 떨어뜨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건 말이 안 된다. 당시 정황으로 볼 때 누가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경민이도 그저 추측만으로 얘기를 꺼낸 거지 확신을 갖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근데 우리끼리 이렇게 얘기를 해봤자 어차피 문자를 받은 당사자는 태원이다. 그런 얘기까지 오가자 태원이는 약간 찜찜해하는 기색이 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멀쩡한 교내 기물을 파손할 정도로 태원이는 맛이 간 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음날 멀쩡한 얼굴로 등교하는 태원이를 볼 수는 없었다. 그날 밤 태원이는 자기 집에서 목을 매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 불경스러운 일이 연달아 벌어지자 학교는 또 혼란에 빠졌다. 같은 학교 학생이 그것도 두 명이나 죽었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건의 내막을 밝힐 수는 없었다. 태원이 또한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장기부 부원들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엑스에게서 온 그 문자.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죽는다는 말. 처음에는 단순히 악질적인 장난인 줄 알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연으로만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아닌가. 우리의 친구들이 살해를 당했다는 것이 되니 말이다. 또 문제는 이 일이 과연 여기서 그치냐 하는 것이다. 같은 부원이 노려진 게 우연이 아니라면 다음 희생양은 지금 여기 있는 우리들 가운데의 한 명일지도 모른다. 그저 내 기우로 끝났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그 염려가 현실이 되어 버렸다. 다음 제물로 찍힌 사람은 바로 종훈이었다.
< 정해진 시간 안에 엑스의 명령을 행하지 못한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 정종훈은 3시간 이내에 학교 분필을 3개 이상 먹어라. 단, 분필은 전부 새 것이야 할 것. >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 없는 명령이었다. 누구 소환 기관 돌아가는 꼴 보고 싶나?
"세윤아."
종훈이가 나를 불렀다.
"어?"
"이 부실에도 분필이 있었지?"
"어, 그런데......너, 설마 진짜로 먹으려고!?"
"좀 가져와 줘."
"야, 탈 나면 어쩌려고?"
"안 먹으면 어차피 뒤지는 거야 똑같잖아."
"야, 아무리 그래도 분필을......"
몇 번을 만류했지만 이미 각오를 굳힌 눈빛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부실 칠판에 아직 까지 않은 분필통을 가져왔다. 우선 한 개를 꺼내 종훈에게 건네 주었다. 분필을 집어든 종훈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분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역시나 각오를 했어도 이런 걸 입 안으로 넣기는 쉽지 않겠지. 종훈이는 눈을 질끈 감고 분필 반을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넘기기 쉽게 씹은 다음 꿀꺽 삼켰다.
"야......괘, 괜찮냐?"
종훈이는 남은 반마저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삼켜 버렸다.
"하, 하나 더!"
"지금이라도 관두는 게......"
"더 달라니까! 아니, 그냥 두 개 다 줘!"
내가 주는 게 아니라 종훈이는 뺏는 식으로 나에게서 분필 2개를 가져가 질질 끌 것 없이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
이 새끼, 진짜로 다 처먹었잖아.
드르르!
종훈이의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떴다. 거기에는 클리어라는 내용 뿐이었다. 그렇다건 즉, 성공이라는 뜻이다. 비장한 각오가 있었던 만큼 안심하는 종훈의 한숨 소리가 컸다.
"하아!"
나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정작 경민이는 다행스럽다는 듯한 표정이 아니라 찜찜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 그게......방금 그 문자 말이야. 어떻게 종훈이가 명령을 수행하자마자 바로 올 수 있었던 거지?"
"......"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여긴 지금 우리들밖에 없는데 어떻게 종훈이가 분필을 먹었다는 걸 알고 클리어했다는 문자를 보낸 거지? 설마 지금 우릴 감시하고 있는 건가? 얼른 부실 문을 열고 복도를 살폈지만 딱히 수상한 점 같은 건 없었다. 몰래 숨어서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방법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종훈이는 명령을 따랐으니 현준이나 태원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는 않아도 되겠지.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으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엑스는 그 후로도 종훈이에게 계속해서 명령문이 담긴 문자를 보냈다. 초반에는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클리어할 만한 수준이기는 했으나 날이 갈수록 그 내용이 도가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 예를 들어 여학생의 팬티를 훔치라고 했을 때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동안 남들 뒤에서 찐따로 살아온 사람에게 진짜 제대로 미친 변태놈이 할 것 같은 행동을 하라니 말이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훈이는 그 어려운 명령을 충실히 따르며 성공시켰다. 물론 그 때문에 학교 안이 많이도 어수선해지기는 했지만. 그러다 기어코 감히 엄두도 못 낼 내용이 엑스의 문자를 통해 전해졌다. 내용을 본 우리들 모두 기가 찰 노릇이었다.
< 12시간 안에 서은진과 섹스해라. 단, 사정을 1회 이상 끝냈을 때만 인정된다. >
서은진은 우리 반 반장으로서 어디서 한 번쯤은 볼 법한 안경 낀 모범생이다. 비교적 융통성이 없고, 철두철미해서 문제점은 반드시 지적하는 성격이다. 들은 얘기로는 아버지가 유능한 검사이기 때문에 그 유전자를 물려받아 그런 성격이 됐다고 한다. 아무튼 그런 애를 범했다간 결코 좋은 꼴을 보진 못할 것이다. 종훈이가 무슨 서은진이랑 특별한 관계인 것도 아니고. 어떤 어려운 명령이라도 피하지 않았던 종훈이었지만 이번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말 그대로 죽느냐, 사회적으로 죽느냐 어느 쪽이든 선택할 만한 길은 아니다. 그날 종훈이는 결국 서은진이 하교하여 집에 갈 때까지 그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방과후 우린 종훈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제한시간이 끝나는 것은 자정 때쯤이었다. 그 시간 이후가 되면 방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날이 밝기 전까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나오지 말라고 말이다. 우리에게 다짐을 받은 종훈이는 그날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 때 종훈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엑스가 용의주도한 놈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제대로 틀어박힌 사람을 무슨 수로 죽이겠는가? 그러나 내가 말한 그 용의주도함이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종훈이는 나중에 자기 집에서 물을 가득 채워놓은 욕조 안에 상반신을 박으며 익사한 채로 발견됐다. 더 가혹한 것은 종훈이가 죽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에 엑스의 명령문이 담긴 문자가 내 휴대폰으로 송신된 것이다. 이 새끼는 우리들을 다 죽이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셈인가? 그날 이후 난 처음 종훈이가 그랬던 것처럼 엑스가 어떠한 명령을 내리든 그 내용을 착실하게 따랐다. 내가 살기 위해 여학생의 치마속을 몰카로 찍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종훈이 때와 마찬가지로 명령을 클리어할수록 다음에 내려지는 명령의 난이도는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내가 여자 화장실에서 자위를 한 그 다음날 엑스에게 쌍욕을 퍼부어 주고 싶을 명령이 떨어졌다.
< 12시간 안에 윤세나와 간접 키스를 해라. 단, 윤세나의 입이 닿은지 10분 이상 지나지 않은 사물에 한해서다. >
윤세나.
나와 같은 학년인 여학생으로 우리 학교 일진 여자애들 중 서열1위인 애다. 찐따 중의 찐따인 나보고 그런 일진과 간접 키스를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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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라!"
"아......!"
코앞에서 내려쳐지는 장기말을 보며 경민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졌다."
이겼다.
내 이름은 최세윤. 장기부에 소속된 고등학교 2학년이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안경을 낀 작은 체격의 남학생은 유경민. 나와 동급생인 마찬가지로 장기부의 부원이다.
"이게 얼마만에 맛보는 승리냐?"
몇 판만에 이겼는지도 모를 만큼 너무 많이 졌다. 경민이는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왜? 내 전술이 너무 단순해서 질리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곧 수업 시간이야."
시계를 가리키는 경민이. 정말 그 말대로 곧 수업종이 울릴 시간이다.
"하아!"
갑자기 경민이가 한숨을 내쉰다.
"왜 그래?"
"아니, 너랑 두는 것도 재밌기는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하고 두면 좋겠다 싶어서."
"아......"
잠시 우리들은 우리들 이외에 아무도 없는 텅 빈 부실 안을 보았다. 진짜 조용하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 이 부실 안에도 시끄러운 분위기가 감돌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장기부에 소속된 부원은 우리 둘이 전부였다.
드르르!
내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 진동이 울린다. 내가 폰을 꺼내자 경민이가 굳어진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또 그거야?"
문자를 확인한 나는 대답했다.
"응."
"이번에는 뭔데?"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경직된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방과후 전까지 우리 학교 여자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자위를 하래. 게다가 사정을 끝마쳐야만 인정이 된대."
"칫! 또 말 같지도 않은 명령을!"
그렇다. 참으로 말 같지도 않은 명령이다. 그러나 이런 터무니없는 명령을 나는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목숨은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그건 그렇고 여자 화장실에서 딸딸이를 치라니. 걸렸다간 완전 변태 취급당할 게 뻔하잖아. 게다가 방과후 전까지 끝내라니. 그 말은 즉슨 학생들과 교사들이 교내에 잔뜩 있는 시간에 일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잖아. 미치지 않고서야 이성이 쓰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런 저속한 짓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미친 짓거리를 나는 꼭 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이번 명령은 어려운 것 같아 보여도 허점이 존재한다. 쉬는 시간이 다 끝이 나고 학생들은 다들 교실로 들어갔다. 그래, 내가 말한 허점이란 바로 이것이다. 수업시간. 학생들이 전부 교실에 들어가 있는 이 때라면 남들 눈에 띌만한 확률이 매우 낮아지게 될 것이다. 한창 수업이 진행될 무렵 나는 눈치를 보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국어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화장실이 급해서 그러는데 갈 수 있을까요?"
"아니, 쉬는 시간에 뭘 하다가 이제서야 화장실에 가? 종 칠 때까지 참아."
"큰 볼일인데요.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항상 같은 교실에서 지내는 남녀 동급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똥이 마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이것도 다 살기 위해서다. 흔히 써먹을 법한 보건실에 간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요즘은 꾀병 부리면서 수업을 제끼는 놈들도 많은 탓에 몸이 좀 안 좋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갈만한 곳이 아니다. 국어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허락했다.
"갖다와."
"네."
다행히 교실을 빠져나오는 데에 성공한 나는 얼른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칸막이로 들어가 문을 잠근 나는 지체없이 지퍼를 내려 내 물건을 꺼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까지 한 30분 정도 여유는 있었지만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딸딸이를 쳤다. 빨리 사정하고 여길 나가야 한다.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순간 개쪽 개망신이다. 하지만 서두르는 내 마음과는 달리 자지가 쉽게 서지를 않는다. 침착하자. 상딸이야 내가 몇 번이나 해왔던 거잖아. 마음이 다급해서 잊고 있었지만 지금 처해진 상황도 야설이나 야동에 나올 법한 충분히 흥분될 만한 상황이다. 어쨌든 나는 남자이면서도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이 초조함을 흥분으로 바꿔야 한다. 상상하자. 지금 내가 있는 이 화장실 안에서는 분명 수많은 여학생들이 들락날락거리면서 속옷을 내리고 볼일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끄윽!"
10분 정도 걸린 끝에 나는 겨우겨우 사정에 성공했다. 내 귀두 끝에서 하얀 좆물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드르르!
또 진동이 느껴진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확인했다. 문자 메세지로 클리어라는 단어가 떠 있었다.
"하아!"
긴장이 풀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이 구질구질한 목숨을 연명하는 데에는 성공했구나. 그나저나 참 귀신 같은 녀석이란 말이야. 전달 받은 명령을 수행하자마자 메세지가 떴다. 대체 이 녀석은 어떻게 매번 내가 성공한 걸 알고 이런 문자를 보내는 거지? 날 감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그 경로를 전혀 모르겠다. 너무 많이 겪어서 이젠 놀랍지도 않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랑 경민이는 잠시 부실에서 모였다. 경민이는 날 보자마자 물었다.
"성공했어?"
"응. 어떻게든......"
"하아!"
경민이도 나 못지 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키는 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경민이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나라도 그랬을걸. 어떻게 그런 걸 맨정신으로 하냐?"
"그렇지?"
"그나저나 엑스 녀석,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시답잖은 일을 시킬 생각인 거지?"
"글쎄......"
엑스.
늘 괴상망측한 명령문을 작성해 오늘처럼 문자로 보내는 사이코패스도 울고 갈 정신병자다. 정체도 불분명한 이 정신병자의 명령을 내가 무리를 하면서도 따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죽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이미 변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 원래 우리 장기부의 부원은 나랑 경민이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었다. 나와 경민이, 주현준, 김태원, 정종훈. 우리들 다섯 명은 중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로서 말하기 민망하지만 무리에 잘 섞여들지 못하는 찐따 그룹이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예체능 계열에 특화된 학교로서 다양한 부가 존재하고,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보다는 예능이나 체육 분야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 고등학교로 올라온 우리들은 다 같이 이 장기부에 입부를 신청했다. 딱히 장기를 심하게 좋아해서는 아니었고, 교칙상 부활동을 하고 있으면 4교시 이후로 출석 여부는 자유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단둘 밖에 없는 3학년 선배들끼리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졸업하여 새롭게 2학년이 된 우리들끼리 장기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들 다섯 명의 청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화창한 어느 날 늘 그랬듯이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준이에게로 웬 문자가 보내졌다. 내용은 이러했다.
< 엑스의 명령은 절대적. 거부권이란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엑스의 명령을 행하지 못한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 주현준은 12시간 안에 학교 운동장을 30바퀴 돌아라. >
처음 그 문자를 보고서 현준이는 어리둥절해하며 우리에게도 보여 주었는데 어이가 없기는 다들 마찬가지였다. 대체 누가 이런 문자를 보낸 거지? 우린 현준이에게 누가 그냥 장난친 건가 보다 하면서 신경을 아예 끄도록 만들었다. 당사자인 현준이도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안이한 생각이 어떠한 참사를 가져올지는 당시로서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리가 현준이를 본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 다음날 현준이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현준이가 자기 집 아파트에서 추락하여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우리 중 누구 하나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경찰들의 얘기로는 야심한 밤에 자기 방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것이다. 경찰들은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에 들어갔지만 이렇다 할만한 동기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현준이가 비록 찐따이기는 하지만 딱히 집단 따돌림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특정 인물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경찰들은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생긴 정서적 불안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거다 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잘만 지내던 현준이가 그러한 고민거리를 갖고 있었다고?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누구한테나 아무리 친구라도 밝힐 수 없는 고민 한두 개쯤은 갖고 있는 법이니까. 좀 더 현준이를 잘 이해해 줬어야 했다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런 불상사가 잊혀져 갈 때쯤 태원이에게 문자가 송신되었다. 지난번 현준이 때와 똑같이 자신을 엑스라고 밝힌 그 문자였다.
< 정해진 시간 안에 엑스의 명령을 행하지 못한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 김태원은 6시간 안에 학교 창문을 3개 이상 깨트려라. >
지난번과는 내용이 달랐지만 비슷하다. 그 때와 똑같은 놈이 보낸 건가?
"이거 진짜 미친놈인가?"
얼마나 황당한지 태원이는 헛웃음이 다 흘러나왔다.
"잠깐만!"
경민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 문자, 전에 현준이한테도 왔던 거지?"
"그런데?"
"혹시 말이야. 현준이는 이 문자 때문에 죽은 게 아닐까?"
우린 모두 하나 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 소리야? 그럼 현준이가 그 운동장 몇 바퀴 못 돌았다는 이유로 죽었단 말이야?"
"그것 말고 짚이는 거 있어?"
종훈이가 반박했다.
"네 말대로라면 이 문자를 보낸 녀석이 현준이가 명령을 듣지 않자 직접 가서 응징을 했다는 소리인데. 현준이는 혼자 있는 자기 방에서 죽었다고. 누가 몰래 침입해서 현준이를 아파트 밑으로 떨어뜨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건 말이 안 된다. 당시 정황으로 볼 때 누가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경민이도 그저 추측만으로 얘기를 꺼낸 거지 확신을 갖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근데 우리끼리 이렇게 얘기를 해봤자 어차피 문자를 받은 당사자는 태원이다. 그런 얘기까지 오가자 태원이는 약간 찜찜해하는 기색이 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멀쩡한 교내 기물을 파손할 정도로 태원이는 맛이 간 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음날 멀쩡한 얼굴로 등교하는 태원이를 볼 수는 없었다. 그날 밤 태원이는 자기 집에서 목을 매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 불경스러운 일이 연달아 벌어지자 학교는 또 혼란에 빠졌다. 같은 학교 학생이 그것도 두 명이나 죽었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건의 내막을 밝힐 수는 없었다. 태원이 또한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장기부 부원들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엑스에게서 온 그 문자.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죽는다는 말. 처음에는 단순히 악질적인 장난인 줄 알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연으로만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아닌가. 우리의 친구들이 살해를 당했다는 것이 되니 말이다. 또 문제는 이 일이 과연 여기서 그치냐 하는 것이다. 같은 부원이 노려진 게 우연이 아니라면 다음 희생양은 지금 여기 있는 우리들 가운데의 한 명일지도 모른다. 그저 내 기우로 끝났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그 염려가 현실이 되어 버렸다. 다음 제물로 찍힌 사람은 바로 종훈이었다.
< 정해진 시간 안에 엑스의 명령을 행하지 못한 자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 정종훈은 3시간 이내에 학교 분필을 3개 이상 먹어라. 단, 분필은 전부 새 것이야 할 것. >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 없는 명령이었다. 누구 소환 기관 돌아가는 꼴 보고 싶나?
"세윤아."
종훈이가 나를 불렀다.
"어?"
"이 부실에도 분필이 있었지?"
"어, 그런데......너, 설마 진짜로 먹으려고!?"
"좀 가져와 줘."
"야, 탈 나면 어쩌려고?"
"안 먹으면 어차피 뒤지는 거야 똑같잖아."
"야, 아무리 그래도 분필을......"
몇 번을 만류했지만 이미 각오를 굳힌 눈빛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부실 칠판에 아직 까지 않은 분필통을 가져왔다. 우선 한 개를 꺼내 종훈에게 건네 주었다. 분필을 집어든 종훈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분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역시나 각오를 했어도 이런 걸 입 안으로 넣기는 쉽지 않겠지. 종훈이는 눈을 질끈 감고 분필 반을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넘기기 쉽게 씹은 다음 꿀꺽 삼켰다.
"야......괘, 괜찮냐?"
종훈이는 남은 반마저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삼켜 버렸다.
"하, 하나 더!"
"지금이라도 관두는 게......"
"더 달라니까! 아니, 그냥 두 개 다 줘!"
내가 주는 게 아니라 종훈이는 뺏는 식으로 나에게서 분필 2개를 가져가 질질 끌 것 없이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
이 새끼, 진짜로 다 처먹었잖아.
드르르!
종훈이의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떴다. 거기에는 클리어라는 내용 뿐이었다. 그렇다건 즉, 성공이라는 뜻이다. 비장한 각오가 있었던 만큼 안심하는 종훈의 한숨 소리가 컸다.
"하아!"
나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정작 경민이는 다행스럽다는 듯한 표정이 아니라 찜찜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 그게......방금 그 문자 말이야. 어떻게 종훈이가 명령을 수행하자마자 바로 올 수 있었던 거지?"
"......"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여긴 지금 우리들밖에 없는데 어떻게 종훈이가 분필을 먹었다는 걸 알고 클리어했다는 문자를 보낸 거지? 설마 지금 우릴 감시하고 있는 건가? 얼른 부실 문을 열고 복도를 살폈지만 딱히 수상한 점 같은 건 없었다. 몰래 숨어서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방법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종훈이는 명령을 따랐으니 현준이나 태원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는 않아도 되겠지.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으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엑스는 그 후로도 종훈이에게 계속해서 명령문이 담긴 문자를 보냈다. 초반에는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클리어할 만한 수준이기는 했으나 날이 갈수록 그 내용이 도가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 예를 들어 여학생의 팬티를 훔치라고 했을 때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동안 남들 뒤에서 찐따로 살아온 사람에게 진짜 제대로 미친 변태놈이 할 것 같은 행동을 하라니 말이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훈이는 그 어려운 명령을 충실히 따르며 성공시켰다. 물론 그 때문에 학교 안이 많이도 어수선해지기는 했지만. 그러다 기어코 감히 엄두도 못 낼 내용이 엑스의 문자를 통해 전해졌다. 내용을 본 우리들 모두 기가 찰 노릇이었다.
< 12시간 안에 서은진과 섹스해라. 단, 사정을 1회 이상 끝냈을 때만 인정된다. >
서은진은 우리 반 반장으로서 어디서 한 번쯤은 볼 법한 안경 낀 모범생이다. 비교적 융통성이 없고, 철두철미해서 문제점은 반드시 지적하는 성격이다. 들은 얘기로는 아버지가 유능한 검사이기 때문에 그 유전자를 물려받아 그런 성격이 됐다고 한다. 아무튼 그런 애를 범했다간 결코 좋은 꼴을 보진 못할 것이다. 종훈이가 무슨 서은진이랑 특별한 관계인 것도 아니고. 어떤 어려운 명령이라도 피하지 않았던 종훈이었지만 이번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말 그대로 죽느냐, 사회적으로 죽느냐 어느 쪽이든 선택할 만한 길은 아니다. 그날 종훈이는 결국 서은진이 하교하여 집에 갈 때까지 그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방과후 우린 종훈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제한시간이 끝나는 것은 자정 때쯤이었다. 그 시간 이후가 되면 방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날이 밝기 전까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나오지 말라고 말이다. 우리에게 다짐을 받은 종훈이는 그날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 때 종훈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엑스가 용의주도한 놈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제대로 틀어박힌 사람을 무슨 수로 죽이겠는가? 그러나 내가 말한 그 용의주도함이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종훈이는 나중에 자기 집에서 물을 가득 채워놓은 욕조 안에 상반신을 박으며 익사한 채로 발견됐다. 더 가혹한 것은 종훈이가 죽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에 엑스의 명령문이 담긴 문자가 내 휴대폰으로 송신된 것이다. 이 새끼는 우리들을 다 죽이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셈인가? 그날 이후 난 처음 종훈이가 그랬던 것처럼 엑스가 어떠한 명령을 내리든 그 내용을 착실하게 따랐다. 내가 살기 위해 여학생의 치마속을 몰카로 찍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종훈이 때와 마찬가지로 명령을 클리어할수록 다음에 내려지는 명령의 난이도는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내가 여자 화장실에서 자위를 한 그 다음날 엑스에게 쌍욕을 퍼부어 주고 싶을 명령이 떨어졌다.
< 12시간 안에 윤세나와 간접 키스를 해라. 단, 윤세나의 입이 닿은지 10분 이상 지나지 않은 사물에 한해서다. >
윤세나.
나와 같은 학년인 여학생으로 우리 학교 일진 여자애들 중 서열1위인 애다. 찐따 중의 찐따인 나보고 그런 일진과 간접 키스를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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