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마녀를 위한 밤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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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말하기 힘든 차가운 공기가 방안을 휘감고 있었다. 난 다시 슬며시 실눈을 떴다. 다행히도 상상한 것 처럼 코 앞에서 나를 내려다 보는 뻥 뚫린 눈 같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금 천천히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여자는 아직도 거기에 앉아 있었다.
찌이이이익….
찌이이이익….
그 녀의 손에서 삼각 김밥의 포장 비닐이 찢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푸르스름한 어둠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흰 옷을 입은 검은 긴머리의 여자.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탓에 스커트가 위로 딸려 올라가, 또 다시 그녀의 아랫도리와 흰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난 슬며시 눈을 피하다가 숨을 멈추고 말았다. 그녀의 검은 눈과 내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퀭한 눈빛. 눈이 죽어 있었다. 그런 눈동자가 아무말 없이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뱀 앞에 놓인 쥐처럼 꼼짝못하고 굳어있었다.
찌이이이익….
그 여자는 또 다시 삼각 김밥의 포장 비닐을 찢었다. 그 신경질적인 소리가 내 두개골을 긁었다. 난 그 여자의 검은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두눈을 다시 감고 싶었지만 그것 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삼각김밥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선 아무말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음식들을 조금씩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공기에 떠 있는 느낌 하지만 덜컹거리는 듯한 슬로우모션. 그 여자는 가끔씩 고개를 푹 떨구었다가 천천히 들어올리곤 했다. 무척 힘들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자 두 눈이 어둠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검게 보인 것은 짙은 눈화장과 붙임 눈썹때문이었다. 피부색은 징그러울 정도로 새하얬고 입술은 뚜렷하고 도톰했다.
미인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미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음울하고 기괴했다. 아니 표정 자체가 없었다. 가끔씩 고개를 떨굴 때도 힘들여 머리를 다시 들어올릴 때도 표정에는 1mm의 변화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고 누워 있던 나의 온 몸이 덜덜덜 떨려 왔다. 눈앞에 보이는 괴기스러 풍경이 무섭기도 했고, 또 방안을 떠 다니는 공기가 몹시도 차갑기도 했다. 이 서늘함은 단지 가을밤의 쌀쌀한 온도때문만은 아닌게 확실했다. 1년에 한 번 나온다더니…. 마미야 대리가 거짓말을 한건가? 아니면, 제삿상을 차리는 바람에 안나와도 될 귀신이 다시 튀어 나온건가?
난 내심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국.사.람?”
어디선가 몹시 쉰 듯한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승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이런 목소리일까? 그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지는 않았다. 표정에 변화가 없었으니까. 그 여자 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을 뿐이다. 오래된 라디오에서 주파수가 안맞을 때 찍찍거리며 나오는 약간은 울렁거리는 소리. 그녀의 목소리 그랬다.
난 대답을 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대신 머리에 있는 힘을 다 주어 끄덕 하고 움직였다.
그 여자는 세운 두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왜.왔.어?”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톤도, 감정도 없는 바싹 마른 목소리였다.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목소리가 안나왔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나를 물끄러미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공부..공부하러 왔는데요.”
있는 힘을 다해 정말 모기만한 소리가 겨우 대답을 했다.
“이.름은?”
아까보다 더 갈라진듯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민수, 김 민수라고 해요”
여자의 움직임은 멈춰 있었다. 그녀의 죽어있는 눈동자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굳어있는 다리에서 쥐가 나려고 했다.
그 때 그녀가 뭔가 말을 했다.
쉰 목소리로 작게 말하는 바람에 못알아 들었다.
“예? 예?”
난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되물었다. 잠시동안 정적이 다시 이어졌다.
“고.마.워.”
분명히 그랬다. 그 여자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맙다는 걸까? 여기 이렇게 와서 자신의 제물이 되는게?
“기.억.해.줘.서.”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여자는 내가 제삿상을 차려준 데 대한 인사를 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 순간 무릎에 들어가 있던 힘이 탁 풀렸다. 아, 적어도 날 해칠 생각은 아니구나. 그제서야 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처…천만에요.”
나는 아까보다 조금은 커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여자는 다시 고개를 푹 떨구었다가 조금씩 들어 올렸다. 밖에서 들어오는 네온불빛에 비친 그 여자는 역시나 미인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색 사이로 푸르스름한 핏줄이 보이긴 했지만, 살아 있었을 때는 예쁜 얼굴임에 틀림없었다.
“예…예쁘시네요.”
할말이 궁했던 나는 엉겁결에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나를 계속 쳐다봤다.
“예…예쁘시다구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던 나는 방금 한 말을 또 반복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시.마.무.라.가.스.미.”
“예, 뭐라구요?”
“시.마.무.라.가.스.미.”
아마도 그녀의 이름인 듯 싶었다.
“아… 만..만..나서 반가워요. 가스미상.”
상대가 흉측한 괴물이 아니라는 것과 날 해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저… 해치실거 아니죠?”
가스미라는 그 여자는 아무 대답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해치겠다는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알 수없었지만 난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호기심이 생겼다. 시마무라 가스미라는 사람, 아니 귀신에게.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담요를 뒤집어 쓰고는 등을 벽에 붙혔다.
“춥지 않아요? 옷…옷이 얇아 보이는데.”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내 시선은 자꾸만 그녀의 허벅지 안쪽, 하얗게 드러난 팬티 앞부분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불온한 생각이 들킨것만 같아 얼른 눈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저…. 가스미씨 속옷이…”
내말을 듣자 가스미는 천천히 다리를 포개어 고쳐 앉는다.
“가스미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죠?”
내가 물어보자 가스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죽었나요?”
그녀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푹 떨어뜨리더니 다시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선 손가락 세개를 들어 보였다.
“3년전?”
가스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고개를 자꾸 떨구시는데 어디 아프세요?”
“부.러.졌.어.”
가스미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어제 그녀가 목을 매달고 있는 장면이 떠 올랐다. 끈에 체중이 실리는 순간 그녀의 목이 꺾이던 모습이 기억났다. 나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다.
“자살?”
가스미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자살을?”
나의 질문에 가스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보였다. 엉뚱하게도 그 때 나는 소개팅을 상상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와 내가 나누고 있는 이 대화가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상대와 나누는 호구조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화의 내용이 좀 그로데스크하다는 점이 아주 다르지만 말이다.
난 테이블 위를 흘끔 보았다. 음식은 애초에 놓아둔 그대로였다.
“음식 먹을 수 있어요?”
가스미는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가스미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지. 제사상 차리는거 귀신한테는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가스미씨는 왜 여기에 있어요? 다른데는 안가요?”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가스미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못.가.”
“왜요?”
“여.기.에.묶.여.있.어.”
그녀는 이른바 지박령이었다. 지박령이란 어느 한 장소에 원한같은게 너무 많이 남아, 그곳을 맴돌기만 하고 떠나지 못하는 혼령을 말한다. 그 순간 풀어졌던 마음이 찌잉하고 조여오며 다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박령이라는 얘기는 이 집에 사는 한 나는 이 여자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에서나 보던 귀신과의 동거다.
그 때 밖에서 요란스런 트럭소리가 났다. 쓰레기 수거차의 소리였다. 난바는 유흥업소가 많아서 쓰레기차가 정말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다. 난 슬며시 아이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다. 4시50분이었다. 귀신은 언제까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해가 뜨면 사라지는 것일까? 꼼짝않고 앉아 있는 가스미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가스미가 다다미 바닥으로 풀썩하고 꺼져버렸다. 정말 일순간의 일이었따. 마치 물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처럼 다다미위에서 꺼져 버렸다. 난 두 눈이 동그래졌다.
가스미는 또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는 내 눈앞에서. 지금 이 것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 일인지, 꿈인지, 환각인지 순간 헛갈렸다. 하지만 난 오늘 밤에 일어난 일을 믿어야만했다. 왜냐하면 테이블 위에는 찢어진 삼각김밥의 비닐들이 널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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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이이익….
찌이이이익….
그 녀의 손에서 삼각 김밥의 포장 비닐이 찢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푸르스름한 어둠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흰 옷을 입은 검은 긴머리의 여자.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탓에 스커트가 위로 딸려 올라가, 또 다시 그녀의 아랫도리와 흰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난 슬며시 눈을 피하다가 숨을 멈추고 말았다. 그녀의 검은 눈과 내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퀭한 눈빛. 눈이 죽어 있었다. 그런 눈동자가 아무말 없이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뱀 앞에 놓인 쥐처럼 꼼짝못하고 굳어있었다.
찌이이이익….
그 여자는 또 다시 삼각 김밥의 포장 비닐을 찢었다. 그 신경질적인 소리가 내 두개골을 긁었다. 난 그 여자의 검은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두눈을 다시 감고 싶었지만 그것 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삼각김밥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선 아무말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음식들을 조금씩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공기에 떠 있는 느낌 하지만 덜컹거리는 듯한 슬로우모션. 그 여자는 가끔씩 고개를 푹 떨구었다가 천천히 들어올리곤 했다. 무척 힘들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자 두 눈이 어둠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검게 보인 것은 짙은 눈화장과 붙임 눈썹때문이었다. 피부색은 징그러울 정도로 새하얬고 입술은 뚜렷하고 도톰했다.
미인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미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음울하고 기괴했다. 아니 표정 자체가 없었다. 가끔씩 고개를 떨굴 때도 힘들여 머리를 다시 들어올릴 때도 표정에는 1mm의 변화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고 누워 있던 나의 온 몸이 덜덜덜 떨려 왔다. 눈앞에 보이는 괴기스러 풍경이 무섭기도 했고, 또 방안을 떠 다니는 공기가 몹시도 차갑기도 했다. 이 서늘함은 단지 가을밤의 쌀쌀한 온도때문만은 아닌게 확실했다. 1년에 한 번 나온다더니…. 마미야 대리가 거짓말을 한건가? 아니면, 제삿상을 차리는 바람에 안나와도 될 귀신이 다시 튀어 나온건가?
난 내심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국.사.람?”
어디선가 몹시 쉰 듯한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승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이런 목소리일까? 그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열지는 않았다. 표정에 변화가 없었으니까. 그 여자 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을 뿐이다. 오래된 라디오에서 주파수가 안맞을 때 찍찍거리며 나오는 약간은 울렁거리는 소리. 그녀의 목소리 그랬다.
난 대답을 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대신 머리에 있는 힘을 다 주어 끄덕 하고 움직였다.
그 여자는 세운 두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왜.왔.어?”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톤도, 감정도 없는 바싹 마른 목소리였다.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목소리가 안나왔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나를 물끄러미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공부..공부하러 왔는데요.”
있는 힘을 다해 정말 모기만한 소리가 겨우 대답을 했다.
“이.름은?”
아까보다 더 갈라진듯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민수, 김 민수라고 해요”
여자의 움직임은 멈춰 있었다. 그녀의 죽어있는 눈동자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굳어있는 다리에서 쥐가 나려고 했다.
그 때 그녀가 뭔가 말을 했다.
쉰 목소리로 작게 말하는 바람에 못알아 들었다.
“예? 예?”
난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되물었다. 잠시동안 정적이 다시 이어졌다.
“고.마.워.”
분명히 그랬다. 그 여자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맙다는 걸까? 여기 이렇게 와서 자신의 제물이 되는게?
“기.억.해.줘.서.”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여자는 내가 제삿상을 차려준 데 대한 인사를 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 순간 무릎에 들어가 있던 힘이 탁 풀렸다. 아, 적어도 날 해칠 생각은 아니구나. 그제서야 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처…천만에요.”
나는 아까보다 조금은 커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여자는 다시 고개를 푹 떨구었다가 조금씩 들어 올렸다. 밖에서 들어오는 네온불빛에 비친 그 여자는 역시나 미인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색 사이로 푸르스름한 핏줄이 보이긴 했지만, 살아 있었을 때는 예쁜 얼굴임에 틀림없었다.
“예…예쁘시네요.”
할말이 궁했던 나는 엉겁결에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나를 계속 쳐다봤다.
“예…예쁘시다구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던 나는 방금 한 말을 또 반복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시.마.무.라.가.스.미.”
“예, 뭐라구요?”
“시.마.무.라.가.스.미.”
아마도 그녀의 이름인 듯 싶었다.
“아… 만..만..나서 반가워요. 가스미상.”
상대가 흉측한 괴물이 아니라는 것과 날 해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저… 해치실거 아니죠?”
가스미라는 그 여자는 아무 대답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해치겠다는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알 수없었지만 난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호기심이 생겼다. 시마무라 가스미라는 사람, 아니 귀신에게.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담요를 뒤집어 쓰고는 등을 벽에 붙혔다.
“춥지 않아요? 옷…옷이 얇아 보이는데.”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내 시선은 자꾸만 그녀의 허벅지 안쪽, 하얗게 드러난 팬티 앞부분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불온한 생각이 들킨것만 같아 얼른 눈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저…. 가스미씨 속옷이…”
내말을 듣자 가스미는 천천히 다리를 포개어 고쳐 앉는다.
“가스미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죠?”
내가 물어보자 가스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죽었나요?”
그녀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푹 떨어뜨리더니 다시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선 손가락 세개를 들어 보였다.
“3년전?”
가스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고개를 자꾸 떨구시는데 어디 아프세요?”
“부.러.졌.어.”
가스미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어제 그녀가 목을 매달고 있는 장면이 떠 올랐다. 끈에 체중이 실리는 순간 그녀의 목이 꺾이던 모습이 기억났다. 나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다.
“자살?”
가스미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자살을?”
나의 질문에 가스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보였다. 엉뚱하게도 그 때 나는 소개팅을 상상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와 내가 나누고 있는 이 대화가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상대와 나누는 호구조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화의 내용이 좀 그로데스크하다는 점이 아주 다르지만 말이다.
난 테이블 위를 흘끔 보았다. 음식은 애초에 놓아둔 그대로였다.
“음식 먹을 수 있어요?”
가스미는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가스미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지. 제사상 차리는거 귀신한테는 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가스미씨는 왜 여기에 있어요? 다른데는 안가요?”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가스미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못.가.”
“왜요?”
“여.기.에.묶.여.있.어.”
그녀는 이른바 지박령이었다. 지박령이란 어느 한 장소에 원한같은게 너무 많이 남아, 그곳을 맴돌기만 하고 떠나지 못하는 혼령을 말한다. 그 순간 풀어졌던 마음이 찌잉하고 조여오며 다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박령이라는 얘기는 이 집에 사는 한 나는 이 여자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에서나 보던 귀신과의 동거다.
그 때 밖에서 요란스런 트럭소리가 났다. 쓰레기 수거차의 소리였다. 난바는 유흥업소가 많아서 쓰레기차가 정말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다. 난 슬며시 아이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다. 4시50분이었다. 귀신은 언제까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해가 뜨면 사라지는 것일까? 꼼짝않고 앉아 있는 가스미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가스미가 다다미 바닥으로 풀썩하고 꺼져버렸다. 정말 일순간의 일이었따. 마치 물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처럼 다다미위에서 꺼져 버렸다. 난 두 눈이 동그래졌다.
가스미는 또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는 내 눈앞에서. 지금 이 것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 일인지, 꿈인지, 환각인지 순간 헛갈렸다. 하지만 난 오늘 밤에 일어난 일을 믿어야만했다. 왜냐하면 테이블 위에는 찢어진 삼각김밥의 비닐들이 널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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