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

[재진이야기] 음란한 동거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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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란한 동거 ▒▒









오전 10시경 모텔 3층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 표시등에선 6에서부터 시작된 숫자가 거꾸로 바뀌어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이 타고 올라갔던 것이면 비어서 내려올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음…… 타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으로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띵” 소리의 신호음 뒤로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리자 맞닿아 있는 두 사람의 어깨가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이 그들의 발로 향했다.

검은색 나이키 농구화와 앞이 뾰족한 짙은 브라운색깔의 롱부츠.

거기서 호기심이 동한 나의 눈길은 그 두 사람을 지그재그로 훑어 올라갔다.

힙합스타일의 통이 큰 청바지, 주름이 들어간 짧은 스커트, 체크 무늬 셔츠 위로 패딩조끼,

아이보리색 목폴라 니트 위에 네이비색 트렌치 코트,

작은 키와 마른 몸에 어울리는 갸름하고 뽀얀 그래서 부티가 흐르는 남자의 얼굴,

어깨까지 흘러내린 검은 생머리에 동그스름하고 통통한 귀염성 있는 여자의 얼굴……

여자의 얼굴, 여자의 얼굴,,,,,,



‘어!’



너무나도 낯익은 여자의 얼굴,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여자의 눈은 이미 나보다 더 크게 떠져 있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혔다.







<……보름 전……>







“재진이 행님!”



도서관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같은 과 후배인 태호가 긴 다리를 휘청거리며 언덕길을 열심히 뛰어올라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지금 바쁘세예?”

“아니, 왜?”

“그라믄 저짝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하시지예.”



우리는 자판기 커피를 하나씩 들고 도서관 옆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행님, 요즘 윤식이 행님 댁에서 지내신다면서예?”

“응.”

“윤식이 행님은 부모님이랑 같이 생활한다 아입니꺼, 안 불편하세예?”

“안 그래도 방 알아보고 있어.”

“어차피 2학기도 두 달 정도 밖에 안 남았는데 그냥 우리 집에 안 들어 오실래예?”

“니네 집에?”

“예, 방 하나 비 있거든예.”

“너 상진이랑 같이 자취했었지?”

“예, 상진이 1학기 끝나고 군대 갔다 아입니꺼.”

“그건 아는데, 그럼 그 이후로 계속 혼자 지냈던 거냐?”

“예.”

“혼자서 월세 감당하기 안 힘들데?”

“아니예. 전세로 얻은 거라 그런 건 없십니더.”

“그럼 다른 친구들이라도 불러서 같이 살지 그랬어.”

“친구 놈들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집 금방 난장판 된다 아입니꺼. 기냥 조용하게 살고 싶어서예.”

“근데, 나한텐 왜 들어오라고 하냐?”

“행님이야 들오셔도 그럴 걱정 없자나예. 그라고 저 내년에 군대 가기 때문에 학기 끝나는 대로 다 정리할끼라예. 어차피 행님도 방학되면 서울 집에 가실 낀데 한달 반 있을라고 집 구하는 거 번거롭잖아예. 기냥 우리 집에 오세예.”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날 저녁 짐을 챙겨 들고 태호의 집으로 들어갔다.

형수님이 중국으로 떠난 지 건 일주일 만에 일이었다.



“집 깨끗하네.”

“행님 오신다고 좀 치았어예. 그란데 행님 짐이 이거 뿐입니꺼?”

“응, 주말마다 집에 가니까.”



태호는 내 짐을 받아 들고 한달 보름 동안 내가 머물게 될 방으로 안내했다.

책상 하나에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행님, 오늘 저녁은 제 여자친구 집에서 묵지예.”

“아니야, 난 괜찮으니까 혼자 갔다 와.”

“아입니더. 미리 다 말해놨는데예. 행님 오신다고 일부러 저녁 준비하는 긴데 안 가시면 안됩니더.”



난 태호가 혼자 가기 미안해서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아무튼 면식도 없는 사람 집에 불쑥 찾아간다는 게 그다지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상대 쪽에선 이미 간다고 알고 있고 식사까지 준비한다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근데, 너 언제 여자친구 사귄 거야? 내가 아는 애야?”

“우리학교가 아이라 XX대 다니는 압니더. 작년에 그 학교 축제 때 알게 돼서.”

“꽤 됐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아입니더. 아는 사람 거의 없어예.”

“여기 사람이야?”

“아니예, 서울 안데 아는 언니랑 둘이서 자취하고 있어예.”

“아는 언니라면…… 선배?”

“선배는 아니고예. 여자친구 학교 내에 연구단지가 있는데 거기 연구원입니더. 나이는 행님보다 3살 많을 낍니더.”

“어색한 거 질색인데, 그냥 너 혼자 갔다 오면 안되겠냐?”

“행님 진짜 이라깁니꺼!”

“알았다, 알았어.”

“진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더. 지은이도 누나도 진짜 사람 좋아예.”



태호의 여자친구 집은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릴 정도로 가까이 있었고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빌라형식의 건물이었다.

당시 그 일대 여러 대학에 타 지역 출신들이 급증하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런 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몇 층이냐?”

“3층예.”



태호 뒤를 따라 층계를 올랐다.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설 때마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긴장되었다.



“민지은! 내 왔다.”

“기다려!”



현관문 너머로 한 여인의 음성이 들리더니 자물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초인종 안보여? 동네 창피하게 왜 맨날 이름 불러?”



뾰루퉁한 표정으로 태호를 흘겨보는 태호의 여자친구,

동그스름한 얼굴에 젖 살이 채 빠지지 않은 볼, 쌍꺼풀이 있는 커다란 눈,

귀여운 이미지 탓인지 애교도 많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뭐, 어떻노! 행님한테 인사나 해라.”

“아 참, 안녕하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네. 실례 좀 할게요.”

“이거 행님이 사오신 화분이다. 받아라.”

“와~ 이쁘다. 뭐 이런 거까지 사오셨어요.”

“가시나, 고맙다는 말은 안하고.”

“참, 고맙습니다. 태호 너도 오빠 보고 좀 배워라.”



현관 안으로 들어서니 토마토소스 냄새가 솔솔 풍겼다.



“언니, 태호랑 태호 선배오빠 오셨어.”

“누나 저 왔습니더.”

“응. 딱 맞춰왔네.”

“안녕하세요.”

“네, 반가워요. 일단 욕실에서 손 씻고 이쪽에 앉으세요.”

“점퍼는 벗어서 저 주세요.”



욕실로 들어서려다 말고 태호 여자친구에게 점퍼를 벗어 건네주었다.

그리곤 손을 씻고 나와 태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스파게티 좋아하세요?”

“아~, 네!”

“맛 없어도 맛있게 드세요.”

“누나! 맛 없는데 우째 맛있게 묵겠십니꺼!”

“넌 맛없음 먹지마!”

“아이, 말이 그렇다는 기지예. 하하하.”

“조용히 하고 먹기나 하셔!”



해물스파게티와 레드 와인, 좋아한다고 대답은 했지만 나에겐 익숙한 음식도, 분위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요리를 잘 한 덕분인지 생각 외로 입에 잘 맞았다.

그리고 붉은 포도주의 약한 알코올 기운은 긴장된 마음을 적당히 풀어주었다.



“이름이 뭐에요?”

“최재진입니다.”

“어, 나랑 이름 비슷하네. 난 최수진인데.”

“누나 최씨였십니꺼?”

“응.”

“이름만 들으면 둘이 남매 사이 인줄 알겠다.”

“그러네.”

“재진씨는 어디 최씨?”

“경주 최씨입니다. 몇 대손인지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와, 나도 경주 최씬데…… 먼 친척일 수도 있겠네.”



별 것 아닌 우연이지만 처음 대하는 사이에 이런 공통점은 동질감을 형성하면서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과도 금새 친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그렇게 서먹함이 걷힌 후엔 물 흐르듯 대화가 이어졌다.

어색했던 존칭도 사라지고 호칭도 자연스러워졌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 바닥에 맥주 한 캔씩을 들고 둥그렇게 앉았다.

TV를 켜놓았지만 우리들의 시선 밖이었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우리들의 대화소리에 묻혀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낯을 더 가렸는데 그 날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도 우스개 소리가 잘도 나왔다.

분위기가 그만큼 좋았던가 보다.



시계 초침이 11시가 막 넘을 무렵에서야 태호와 나는 수진이 누나와 지은이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땐 소주 2병이 든 검은 봉지가 함께했다.



“행님, 잠깐만 기다리세예. 찌개 데파께예.”



내가 경상도 출신이 아니었으면 저 말을 어찌 알아들었을까 생각하며 거실 바닥에 작은 상을 가져다 놓았다.

화력 좋은 가스 불에 찌개는 금새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었다.

그 사이 소주잔 두 개에 참치 캔 하나로 된 단출한 술상이 준비됐고

김치찌개가 옮겨지면서 술잔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태호와 나는 같은 과 선후배이기도 하지만 같은 밴드동아리이기도 했다.

나는 취미생활 정도였지만 태호는 정말 음악에 인생을 걸어볼 생각까지 하는 정도로 미쳐있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우리의 이야기는 늘 음악이었다.

그날도 소주 한 병을 비우기까지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적당한 취기가 올라오자 태호는 머리 속을 채우고 있던 고민을 하나 둘씩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고민의 본질은 결국 군대와 자신의 여자친구인 지은이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그 고민을 들었을 땐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릴 위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스스로 부딪히고 아파해야 할 몫이지 않는가!

그저 술 한잔 후의 깊은 잠이 가장 좋은 위로라고 여겨졌다.



다음날 아침 태호는 아침 수업이 없어 나만 먼저 집을 나섰다.

한결 쌀쌀해진 늦가을 아침 공기가 담배 연기 같은 입김을 만들어 내었다.



“재진아!”



고개를 돌려보니 꺾어진 골목에서 걸어 나오는 수진이 누나 모습이 보였다.

까만 색 정장 차림, 굽이 제법 높아 보이는 힐은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또각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누나! 지금 출근하시는 거에요?”

“응, 카센타에서 차 찾아서 가려고. 좀 일찍 나왔어. 근데 넌 왜 이렇게 일찍 나가?”

“뭐 좀 할게 있어서요. 그렇게 입고 안 추워요?”

“내가 몸에 열이 좀 많은 편이어서 그런지 안 추운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큰 길가로 나가자 때마침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정류장에 멈춰서고 있었다.



“버스 왔다. 누나 갈게. 참, 저녁에 밥 먹으러 와.”

“네.”



버스를 향해 총총 걸음으로 뛰어가는 누나의 뒷모습, 왠지 형수님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키는 누나 쪽이 약간 더 큰 듯 했지만 A라인 스커트가 꽉 끼는 골반과 힙,

그리고 허벅지라인, 아니 전체적으로 육감적인 두 사람의 몸매라인이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 날 오후 수업 하나 듣고 집에 오니 3시가 조금 넘었다.

과제를 마무리 짓고 나자 어느새 5시.

그 즈음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태호냐?”

“아니, 나 지은이.”



지은이도 현관 열쇠가 있었나 보다.

내 방에서 거실로 나가니 지은이는 소파 위에 가방을 놓아두고 커피포트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오빠도 커피 마실래?”

“그럴까?”

“태호는 아직 안 왔나 봐?”

“만나기로 했으면 금방 오겠지 뭐.”

“아니, 만나기로 한 건 아니고 있을 줄 알고 온 거야. 오늘은 같은 시간에 수업 마치거든.”



커피포트에서 금새 끓은 물은 새하얀 김을 내며 두 개의 커피잔으로 쏟아졌다.

지은이는 커피잔을 소파 앞 테이블에 가져다 놓고 그제서야 점퍼를 벗었다.

점퍼를 벗는 순간 자연스레 내밀어진 가슴,

티셔츠의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지만 중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컸다.

일부러 보려 했던 건 아니지만 왜 자꾸 그런 쪽으로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인지!



지은이가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앉으면서부터 대화가 서서히 진행되었다.

지은이의 친숙한 말투와 성격으로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 같이 어색함이 없었다.



“근데, 오빠는 서울 어디 살아?”

“방배동.”

“어, 나도 방배동인데.”

“난 방배 전철역 그 뒤 쪽.”

“난 까페촌 뒤.”

“오~~ 거긴 부촌인데.”

“안타깝게 우리 집 뒤쪽부터 부촌이야. 히힛”

“그럼 중, 고등학교도 거기서 나왔겠네?”

“응.”



알고 보니 지은이는 중학교 후배였다.

물론 지은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난 고등학생이 되어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같은 동네 출신이란 점에서 형성된 유대관계는 중학교 선후배란 사실로 더욱 공고해졌다.



서로의 과거들을 꺼내 대입시켜보는 사이 시계 시침이 가리키는 숫자가 바뀌었다.

태호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메모 한 장 남겨놓고 지은이네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왔어? 태호는?”

“아마 밴드부 애들이랑 같이 있나 본데요.”

“근데, 어떻게 지은이랑 같이 왔어?”

“태호 데리러 갔더니 오빠만 있어서 같이 왔어. 근데 언니, 알고 보니까 재진이 오빠랑 나랑 중학교 선후배인 거 있지.”

“진짜?”

“응.”



다시 태호의 존재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비단 우리들 화제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11시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태호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야 거실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인사불성이 되어 자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날만큼은 태호가 없었기에 수진이 누나와 지은이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태호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태호를 중심으로 거쳐가는 경우가 많았을 테니 말이다.



사람이 난 자리는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고 했던가?

적절한 때 이어진 새로운 인연들로 형수님이 떠난 자리가 그리 공허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공허함이 두려워 새로운 인연들에게 더욱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건지도 모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과 어울리다 주말엔 모처럼 서울 집에 올라갔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단짝친구들을 만나서 본래의 내 생활을 조금씩 찾아갔다.

며칠 뒤면 가장 늦게 군에 갔던 단짝 중에 단짝인 준영이도 전역을 할 테니 많은 것이 원점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다시 시작된 한 주는 몇 가지 일들로 정말이지 재빨리 지나갔다.

특히 태호, 나, 수진이 누나, 지은이는 저녁시간이면 항상 같이 어울렸다.

산책도 하고 탁구도 치고 한번은 야구 경기까지 보러 가기도 했다.

난 그들이 늘 이렇게 시간을 함께 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태호는 내가 끼기 전엔 이렇게까지 함께 붙어 다녔던 적이 없었다며 진작에 이러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두 번째 맞는 주말, 흥에 겨웠던 기분을 유지하며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더군다나 휴가 한번 제대로 맞춘 적이 없었던,

그래서 3년 동안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준영이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마음이 들뜨기까지 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선 집에 들를 사이도 없이 준영이를 만났다.

해는 빨리 저물었고 옛날부터 어울리던 친구들 열댓 명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나한 술판이 벌어졌다. 누구 하나 술잔을 빼는 녀석 없이 기분에 취하고 술에 취해갔다.

그런데 단 한 명, 술잔에 술을 교묘히 버리는 녀석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바로 준영이었다.

게다가 나에게 눈짓을 보내며 자신과 보조를 맞추라 했다. 다른 계획이 머리 속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사람 수가 많을수록, 분위기가 정겨울수록 술이 소비되는 속도는 빠르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0시가 조금 넘자 인사불성이 되어 꼬꾸라져 자는 놈,

화장실 들락거리며 토하는 놈,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놈이 생겨났다.

준영이는 파장을 선언하듯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것도 가장 정신이 말똥말똥한 나와 성주를 먼저 다를 곳으로 피신시키고는

집이 같은 방향인 애들을 짝지어 보냈다.

술에 취한 놈들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모든 정리가 끝이 났다.

그 사이 나는 성주에게서 준영이의 계획을 전해 들었다.

물론 예상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나이트를 가기 위해 그렇게 용의주도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이제부터 나만 믿어!”



처음 알게 됐을 무렵부터 날날이 기질이 다분했던 성주가 제 세상을 만난 듯 어깨에 힘을 주었다.

준영이는 그 말에 고무되어 굶주린 야수의 눈빛을 번득이며 뜨거운 콧바람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 새끼 진짜 굶주렸구나!’



성주는 택시를 잡으면서부터 나이트에 도착해서 룸에 들어가기까지 잠시의 주저함도 없었다.

술을 시킬 때도, 웨이터에게 팁을 쥐어주며 구워삶는 것도 일사천리였다.

아니, 웨이터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 같았다.

그리고 웨이팅 걸려서 현관입구에 줄지어 대기하던 다른 손님들과는 다르게 거리낌없이 들어올 때부터

난 이 새끼가 여기 죽돌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아무튼 테이블이 술과 안주로 세팅 되자 이번엔 여자들이 쉴 새 없이 웨이터 손에 이끌려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괜찮은 여자애들도 많았지만 눈에 안차는 건지, 뭘 알고 그러는 건지 성주는 계속해서 뺀지를 놓았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뜸들이다 드디어 성주가 작업대상을 물었고

그 쪽 나머지 친구들까지 합세해 쌍을 이루어 부어라 마셔라 추어라 불러라 하며 환락에 시간을 보냈다.

스테이지와 룸을 몇 차례 들락거리고 화장실을 갔다 온 사이 준영이와 그의 파트너가 자리를 떴다.

성주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파트너를 울러 메고 있었다.

쟈켓을 챙겨 입고 뒤따라 나갔을 땐 성주를 태운 택시는 이미 가속을 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남은 건 내 파트너와 나.



가물가물하지만 그녀의 외모는 상당히 예뻤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까지 내가 만난 여자들 중 최고였을 정도로.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그게 내 성욕을 반감시킬 줄이야.

분명히 발동이 걸린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이쁘다는 사실이 나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일단 택시를 타고 까페촌으로 이동했다.

먼저 허기진 배를 따뜻한 우동으로 채우고 어느 구석진 바에서 칵테일 몇 잔을 더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어색한 분위기도 아닌 별로 재미없는 그저 그런 분위기였다는 것 밖에는.

사실 그녀와 나는 그다지 코드가 맞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대화하는 내내 겉돌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모텔까지 함께 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고개만 갸우뚱해질 뿐이다.



모텔 현관을 들어설 때도, 방 안으로 들어갈 때도, 심지어 샤워를 할 때도 이상하리만치 두근거림이 없었다.

역시나 내키지 않았던 탓일까?

하지만 그 괜한 오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그녀의 육체를 달구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어때?”

“잘 모르겠어요.”

“느낌이 안 와?”

“저 경험이 없어서 뭐가 뭔지 잘……”



사실 그 때 그만두었어야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삽입을 시도했다.



“아직도 별 느낌 없어?”

“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세요.”



그 말에 힘들게 유지했던 욕정뿐만 아니라 겨우 발기했던 페니스도 스르르 힘을 잃어버렸다.



“오빠 더 안 해요? 아직 사정 안 하셨잖아요.”

“술 많이 먹어서 잘 안 된다. 그냥 잠이나 자자.”



코드가 맞지 않은 다는 이유 때문일까? 그녀와의 섹스 정말이지 재미없었다.

물론 그 동안 형수님을 통해 갈고 닦은 솜씨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으니

자존심에 상처가 생긴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테크닉과 상관없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고, 하면서도 나무토막을 상대로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속 궁합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고

테크닉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걸 깨우친 순간이었다.



잠에서 깬 건 오전 9시경, 그녀는 음을 소거한 채 TV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깰까봐 드라이어를 키지도 못하고 젖은 머리를 그대로 말아 올리고 있었다.



“더 주무세요. 피곤하실 텐데.”

“아냐, 다 잤어.”



화장을 지운 얼굴을 보니 길거리에서 마주쳤다면 한동안 시선을 빼앗길 만큼 수수하고 이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마음씀씀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그녀의 모습을 대하니 사정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여겨진 건 왜일까?



내가 샤워하는 동안 그제서야 그녀는 머리를 말렸다.



‘아~, 쟤를 어째야 되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제와는 달랐다.

날날이 같았으면 오히려 실망하거나 내가 자고 있을 때 먼저 가버렸을 텐데 그런 부류는 아닌 것 같았다.

어젯밤을 생각해 보더라도 성주 파트너나, 준영이 파트너처럼 술을 퍼 마시지도 않았고 나대지도 않았다.

그냥 다소곳이 앉아있다가 내가 춤추러 가면 따라 나와서 보조만 맞췄던 것이다.

모르긴 해도 사귀기엔 괜찮은 스타일 같은데

문제는 내가 육체관계를 무시하면서까지 사람을 사귈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젖은 몸을 닦고 나오자 가지런히 정리된 침대 위에 윗도리부터 양말까지 차례대로 놓여있었다.

감동스럽기보단 부담스러웠다.

여전히 사귈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안면몰수하고 등을 보여서도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일단 밥이라도 먹자, 먹고 생각하자!’



10시가 조금 넘어 객실에서 빠져 나와 3층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표시등에선 6에서부터 시작된 숫자가 거꾸로 바뀌어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이 타고 올라갔던 것이면 비어서 내려올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음…… 타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으로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띵” 소리의 신호음 뒤로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리자 맞닿아 있는 두 사람의 어깨가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시선이 그들의 발로 향했다.

검은색 나이키 농구화와 앞이 뾰족한 짙은 브라운색깔의 롱부츠.

거기서 호기심이 동한 나의 눈길은 그 두 사람을 지그재그로 훑어 올라갔다.

힙합스타일의 통이 큰 청바지, 주름이 들어간 짧은 스커트, 체크 무늬 셔츠 위로 패딩조끼,

아이보리색 목폴라 니트 위에 네이비색 트렌치 코트,

작은 키와 마른 몸에 어울리는 갸름하고 뽀얀 그래서 부티가 흐르는 남자의 얼굴,

어깨까지 흘러내린 검은 생머리에 동그스름하고 통통한 귀염성 있는 여자의 얼굴……

여자의 얼굴, 여자의 얼굴,,,,,,



‘어!’



너무나도 낯익은 여자의 얼굴,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여자의 눈은 이미 나보다 더 크게 떠져 있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혔다.



“지은이?”

“네?”

“아냐 혼잣말 한 거야, 아는 후배랑 닮아서.”

“아, 네~”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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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그나마 있던 감마저 떨어져서 더더욱 힘드네요.

하지만,,, 제 부족한 부분을 여러분의 상상력으로 메꾸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추천이나 리플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혹 지적할 사항이나, 글 읽은 후에 느낌을 전하고 싶다시면 소중하게 읽을테니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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