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난 스물다섯 그를 오빠라고 부른다 - 1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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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아이에게 떳떳한 엄마이고 싶어요. 미안해요... 오빠.”
몸이 멀어진 만큼 우리의 마음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지던 그해 겨울, 난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작은 씨앗만큼 작디작은 소중한 새 생명이 깊숙한 자궁 안에 자리하고 있었고, 아직 채 아가의 모습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이미 난 그 어린 생명을 잉태한 엄마가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감기가 든 듯 미열이 나고 체한 것처럼 답답했던 이유가 몇 주째 그와 모든 연락을 끊고 있을 정도로 속상했던 마음 때문이 아닌 이제 겨우 여섯 주가 된 이 작은 아가 때문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이 작은 아가가 새 생명을 시작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온통 그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있었던 것이 그리고 내 아이가 자라고 있는 자궁 안을 스물다섯 그들의 차가운 정액으로 채우며 행복해했던 것이 너무도 미안하기만 했다.
이젠 정말 이별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별을 결심하고 나니 얼마 전까지 그렇게 밉기만 했던 그가 여전히 내 가슴 속에 그리움이 되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미워하려 애썼지만 이별을 이야기하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내게 사랑하는 오빠였고 난 새 생명을 잉태한 엄마이기 전에 스물다섯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한 그의 아가였다. 마지막 그와의 통화가 끝나고 핑그르 눈물이 맺혔다. 한때나마 내 모든 것을 가졌던 스물다섯의 그가 내게 주었던 행복했던 추억들이 눈물방울 속에서 아롱져 맺혀있었고 엄마가 되었다는 행복한 소식을 전한 지금 오히려 내 심장은 조각조각 깨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마침내 또르르 눈물방울이 그가 어루만져주던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이제는 그도 그렇게 기억 속에만 담아두어야 했다.
.....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 .....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새롭게 맞이한 2006년은 시작부터 내게 슬픔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던 아이가 벌써 두 번째 유산되고 말았다. 신혼 초 첫아이의 유산은 아직 젊으니까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견딜 수 있었지만 두 해만에 다시 얻은 아이의 유산은 슬픔을 넘어 절망으로 다가왔다. 혹시 내 탓은 아닐까? 혹시 다시는 아이를 못 갖는 건 아닐까? 혹시... 끝없이 빠져드는 수렁 속에서 남편의 위로도 그리고 의사의 위안도 내겐 별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렇게 세 달여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흐릿한 기억 속에 그 아이를 보낼 수 있었고 내겐 의미 없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오랜만이네요...”
인천은 생각보다 좁은 곳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들로 가득 찬 그 거리에서 한때 ‘준성 오빠’라고 부르던 그의 친구를 우연히 마주친 건 내 마음속에 추운 겨울이 사라지고 있던 서른한 살의 봄이었다. 바로 어제 헤어졌던 것처럼 여전히 살갑게 나를 대하는 그의 친구였지만 차마 ‘준성 오빠’라고 부를 수 없었던 나는 어정쩡한 인사로 그의 친구를 대해야 했다. 이젠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과는 달리 또다시 아련한 추억속의 기억들이 떠오르려 하고 있었고 그의 안부가 너무도 궁금했지만 묻지 말아야 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나를 다시 돌려 세운 건 그의 친구였다.
그리고 듣지 말았어야할 그의 결혼 소식. 날카로운 칼끝이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한순간 낯익은 거리의 모습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어지러이 돌아가고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옮긴 카페에서 직장동료와 다음 달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차마 흔들리는 내 마음을 보이기 싫어 눈을 돌린 창밖에는 심난한 내 마음도 모른 채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무심한 아지랑이만 일렁이고 있었다. 먼저 이별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닫았던 건 나였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엔 아직도 오빠인 그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굳게 닫혔던 내 마음 속에서 그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고 어느덧 난 그의 친구를 또다시 ‘준성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준성 오빠. 그 여자... 예뻐요? 아마... 예쁘겠죠?”
준성 오빠에게 듣는 그의 신부는 서른한 살이 되어버린 나를 더 초라하게 했다. 스물넷의 화려한 젊음만으로도 부러운 그녀는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사랑했던 그와 자신의 아이 그 모두를 가졌고, 그런 모든 행복을 독차지한 그녀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내 모습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이제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의 신부보다 일곱 살이나 더 많고 그녀처럼 그의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내게 그가 다시 돌아올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마도 한 가닥 미련 때문이었으리라. 그에게 이어져있는 유일한 끈이었던 준성 오빠는 다시 연락하며 지내자는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을 했고 나는 마지막 그 끈마저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난 헛된 욕심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그의 친구에게서 그의 모습을 아니 그의 그림자나마 찾을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생각했던 나는 너무도 어리석은 여자였다. 준성 오빠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내가 사랑하던 그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그와 함께한 행복했던 추억들이 떠올랐지만 지금 내 곁엔 그가 떠난 빈자리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나를 슬프게 할 뿐이었다. 달콤하리라 생각했던 준성 오빠의 입술도 내 전부였던 그의 빈자리를 채워주진 못했고 그의 결혼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올수록 황폐해지는 내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들었구나. 네가 떠나고 나서... 너무 외로웠어... 아가.”
참아왔던 그리움의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랐다. 그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떠나가 버린 나를 그는 아직도 아가라는 가장 행복한 이름으로 불러 주고 있었다.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다시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그의 아가가 되어 행복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비록 그의 말처럼 외로움을 달래려 품었던 그녀일지라도 그의 아이를 가졌고 결혼을 바로 앞둔 지금 나만의 행복을 위해 그와 그의 아이의 행복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그가 나와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이별을 받아들여 준 것처럼 나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의 품을 포기해야 옳았고 그저 멀리서나마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긴 시간의 공백을 건너 다시 메신저너머의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여전히 우리는 오빠와 아가로 서로를 아껴주고 있었지만 달콤한 사랑의 언어가 사라진 우리의 공간은 내게 슬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프도록 시려왔고 아가라고 불릴 때마다 애써 눈물을 감춰야했던 그 하루하루가 내겐 고통이었다. 그는 여전히 내게 오빠였고 난 언제까지나 그의 아가이건만 사랑받고 싶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나를 힘겹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취하고 싶었고 다시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기댈 어깨를 빌려주는 이는 그의 친구뿐이었고 나는 내가 받은 위로를 진한 입맞춤으로 보답할 뿐이었다.
“자책할거 없어. 넌 그녀석하고 섹스한 거니까.”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있었다. 취한 눈을 부비며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그의 친구 준성 오빠의 품에 안겨 벌거벗은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누워있었고 자궁 깊숙한 곳엔 나를 가졌던 준성 오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결혼식이 있었던 오늘도 나는 준성 오빠의 위로가 간절히 필요했었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게 취해버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준성 오빠는 자신의 친구를 대신해 가여운 내 몸을 위로해 주었을 뿐 잘못은 내게 있었다. 이 작은 방안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던 그의 모습을 애타게 찾으려했고 나를 위로해주던 준성 오빠의 품에서 눈을 감았을 때 나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의 품에 이미 안겨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를 부르며 행복한 절정에 이르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준성 오빠의 말처럼 나는 내가 사랑하던 그의 품에 안겨 절정을 느꼈을 뿐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없이 침대 위에 어지러이 벗겨져 있는 속옷들을 집어 들었다.
이제 겨우 불안한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내게 시간은 너무도 더디 흘러가고 있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불안감은 아마도 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메신저를 켜야만 가셔질 듯 했다. 홀로 남겨진 지금 비로써 나는 온전히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여자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시간 우리 둘만의 공간을 나와 남편에게로 향하는 나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했던 그가 느꼈을 그 감정을 지금 내가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이해해달라는 말조차 나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어떤 말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으리라. 그가... 지금의 내 마음과도 같을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하고픈 말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 기다림이 길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 서른의 이야기를 맺으며 .....
2005년 10월 첫 글을 시작할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삼년이 흘렀고 ‘서른의 나는...’ 이라는 글 제목처럼 서른 살이었던 제가 어느덧 서른셋이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었지만 제게 나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른하나, 서른둘 그리고 서른셋에 이르는 이야기를 계속 ‘서른의 나는...’ 이라는 글에 덧대어 쓰려고 합니다.
전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언제나 현실이 절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준세이를 떠오르게 하는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우리는 ‘냉정’에 발을 디디고 ‘열정’을 꿈꾸지만 삶의 대부분은 ‘냉정’에 있다고... 글에선 차마 쓰지 못했지만 때론 후회도 하고 또 때론 제 자신을 부도덕하다 질책하기도 합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열정’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꿈을 꾸려 합니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꿈꾸는 연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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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멀어진 만큼 우리의 마음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지던 그해 겨울, 난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 되었다. 작은 씨앗만큼 작디작은 소중한 새 생명이 깊숙한 자궁 안에 자리하고 있었고, 아직 채 아가의 모습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이미 난 그 어린 생명을 잉태한 엄마가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감기가 든 듯 미열이 나고 체한 것처럼 답답했던 이유가 몇 주째 그와 모든 연락을 끊고 있을 정도로 속상했던 마음 때문이 아닌 이제 겨우 여섯 주가 된 이 작은 아가 때문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이 작은 아가가 새 생명을 시작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온통 그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있었던 것이 그리고 내 아이가 자라고 있는 자궁 안을 스물다섯 그들의 차가운 정액으로 채우며 행복해했던 것이 너무도 미안하기만 했다.
이젠 정말 이별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별을 결심하고 나니 얼마 전까지 그렇게 밉기만 했던 그가 여전히 내 가슴 속에 그리움이 되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미워하려 애썼지만 이별을 이야기하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내게 사랑하는 오빠였고 난 새 생명을 잉태한 엄마이기 전에 스물다섯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한 그의 아가였다. 마지막 그와의 통화가 끝나고 핑그르 눈물이 맺혔다. 한때나마 내 모든 것을 가졌던 스물다섯의 그가 내게 주었던 행복했던 추억들이 눈물방울 속에서 아롱져 맺혀있었고 엄마가 되었다는 행복한 소식을 전한 지금 오히려 내 심장은 조각조각 깨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마침내 또르르 눈물방울이 그가 어루만져주던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이제는 그도 그렇게 기억 속에만 담아두어야 했다.
.....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 .....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새롭게 맞이한 2006년은 시작부터 내게 슬픔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던 아이가 벌써 두 번째 유산되고 말았다. 신혼 초 첫아이의 유산은 아직 젊으니까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견딜 수 있었지만 두 해만에 다시 얻은 아이의 유산은 슬픔을 넘어 절망으로 다가왔다. 혹시 내 탓은 아닐까? 혹시 다시는 아이를 못 갖는 건 아닐까? 혹시... 끝없이 빠져드는 수렁 속에서 남편의 위로도 그리고 의사의 위안도 내겐 별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렇게 세 달여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흐릿한 기억 속에 그 아이를 보낼 수 있었고 내겐 의미 없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오랜만이네요...”
인천은 생각보다 좁은 곳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들로 가득 찬 그 거리에서 한때 ‘준성 오빠’라고 부르던 그의 친구를 우연히 마주친 건 내 마음속에 추운 겨울이 사라지고 있던 서른한 살의 봄이었다. 바로 어제 헤어졌던 것처럼 여전히 살갑게 나를 대하는 그의 친구였지만 차마 ‘준성 오빠’라고 부를 수 없었던 나는 어정쩡한 인사로 그의 친구를 대해야 했다. 이젠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과는 달리 또다시 아련한 추억속의 기억들이 떠오르려 하고 있었고 그의 안부가 너무도 궁금했지만 묻지 말아야 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나를 다시 돌려 세운 건 그의 친구였다.
그리고 듣지 말았어야할 그의 결혼 소식. 날카로운 칼끝이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한순간 낯익은 거리의 모습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어지러이 돌아가고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옮긴 카페에서 직장동료와 다음 달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차마 흔들리는 내 마음을 보이기 싫어 눈을 돌린 창밖에는 심난한 내 마음도 모른 채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무심한 아지랑이만 일렁이고 있었다. 먼저 이별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닫았던 건 나였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엔 아직도 오빠인 그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굳게 닫혔던 내 마음 속에서 그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고 어느덧 난 그의 친구를 또다시 ‘준성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준성 오빠. 그 여자... 예뻐요? 아마... 예쁘겠죠?”
준성 오빠에게 듣는 그의 신부는 서른한 살이 되어버린 나를 더 초라하게 했다. 스물넷의 화려한 젊음만으로도 부러운 그녀는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사랑했던 그와 자신의 아이 그 모두를 가졌고, 그런 모든 행복을 독차지한 그녀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내 모습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이제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의 신부보다 일곱 살이나 더 많고 그녀처럼 그의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내게 그가 다시 돌아올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마도 한 가닥 미련 때문이었으리라. 그에게 이어져있는 유일한 끈이었던 준성 오빠는 다시 연락하며 지내자는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을 했고 나는 마지막 그 끈마저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난 헛된 욕심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그의 친구에게서 그의 모습을 아니 그의 그림자나마 찾을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생각했던 나는 너무도 어리석은 여자였다. 준성 오빠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내가 사랑하던 그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그와 함께한 행복했던 추억들이 떠올랐지만 지금 내 곁엔 그가 떠난 빈자리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나를 슬프게 할 뿐이었다. 달콤하리라 생각했던 준성 오빠의 입술도 내 전부였던 그의 빈자리를 채워주진 못했고 그의 결혼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올수록 황폐해지는 내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들었구나. 네가 떠나고 나서... 너무 외로웠어... 아가.”
참아왔던 그리움의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랐다. 그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떠나가 버린 나를 그는 아직도 아가라는 가장 행복한 이름으로 불러 주고 있었다.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다시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그의 아가가 되어 행복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비록 그의 말처럼 외로움을 달래려 품었던 그녀일지라도 그의 아이를 가졌고 결혼을 바로 앞둔 지금 나만의 행복을 위해 그와 그의 아이의 행복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그가 나와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이별을 받아들여 준 것처럼 나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의 품을 포기해야 옳았고 그저 멀리서나마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긴 시간의 공백을 건너 다시 메신저너머의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여전히 우리는 오빠와 아가로 서로를 아껴주고 있었지만 달콤한 사랑의 언어가 사라진 우리의 공간은 내게 슬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프도록 시려왔고 아가라고 불릴 때마다 애써 눈물을 감춰야했던 그 하루하루가 내겐 고통이었다. 그는 여전히 내게 오빠였고 난 언제까지나 그의 아가이건만 사랑받고 싶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나를 힘겹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취하고 싶었고 다시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기댈 어깨를 빌려주는 이는 그의 친구뿐이었고 나는 내가 받은 위로를 진한 입맞춤으로 보답할 뿐이었다.
“자책할거 없어. 넌 그녀석하고 섹스한 거니까.”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있었다. 취한 눈을 부비며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미 그의 친구 준성 오빠의 품에 안겨 벌거벗은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누워있었고 자궁 깊숙한 곳엔 나를 가졌던 준성 오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결혼식이 있었던 오늘도 나는 준성 오빠의 위로가 간절히 필요했었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게 취해버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준성 오빠는 자신의 친구를 대신해 가여운 내 몸을 위로해 주었을 뿐 잘못은 내게 있었다. 이 작은 방안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던 그의 모습을 애타게 찾으려했고 나를 위로해주던 준성 오빠의 품에서 눈을 감았을 때 나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의 품에 이미 안겨있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그를 부르며 행복한 절정에 이르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준성 오빠의 말처럼 나는 내가 사랑하던 그의 품에 안겨 절정을 느꼈을 뿐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없이 침대 위에 어지러이 벗겨져 있는 속옷들을 집어 들었다.
이제 겨우 불안한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내게 시간은 너무도 더디 흘러가고 있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불안감은 아마도 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메신저를 켜야만 가셔질 듯 했다. 홀로 남겨진 지금 비로써 나는 온전히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여자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시간 우리 둘만의 공간을 나와 남편에게로 향하는 나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했던 그가 느꼈을 그 감정을 지금 내가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이해해달라는 말조차 나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어떤 말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으리라. 그가... 지금의 내 마음과도 같을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하고픈 말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 기다림이 길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 서른의 이야기를 맺으며 .....
2005년 10월 첫 글을 시작할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삼년이 흘렀고 ‘서른의 나는...’ 이라는 글 제목처럼 서른 살이었던 제가 어느덧 서른셋이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었지만 제게 나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른하나, 서른둘 그리고 서른셋에 이르는 이야기를 계속 ‘서른의 나는...’ 이라는 글에 덧대어 쓰려고 합니다.
전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언제나 현실이 절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준세이를 떠오르게 하는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우리는 ‘냉정’에 발을 디디고 ‘열정’을 꿈꾸지만 삶의 대부분은 ‘냉정’에 있다고... 글에선 차마 쓰지 못했지만 때론 후회도 하고 또 때론 제 자신을 부도덕하다 질책하기도 합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열정’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꿈을 꾸려 합니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꿈꾸는 연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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