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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1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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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19부





"아이, 영도야아. ...... 노올자아."

영자 누나가 내 어깨를 흔들면서 말했다. 어린애가 어리광을 부리거나 무엇을 조르듯 이렇게 귀찮게 하는 것이 오늘 저녁 들어 벌써 세번 째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나려 했다.

"으응? 같이 ...... 노올자아."

누나는 다시 내 옆구리를 간질였다.

"응, 응. 쪼매만 있다가 ...... "

"아이 참, 뭘 하는데 ...... "

"책 읽는다."

"아직도 숙제하나?"

"아이다. 이건 소설책이다."

"아이고, 우리 영도가 소설책을 다 보나? 제목이 뭔데 ...... ?"

"<암굴왕> 이라카는기다."

"이야기가 우찌 되는데 ...... ?"



나는 읽던 것을 중단하고 눈쌀을 찌푸렸다. 같이 놀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말대답하다가는 끝이 없겠다. 정말 짜증스럽다.

잠결의 나쁜 손버릇 때문에 엄마와 뜻밖의 빠구리를 하고 건너방으로 쫓겨난 뒤 영자 누나와 단둘이 이 방을 쓰게 되면서 새로 맞게된 상황이다.

건너방은 평시 영자, 영미 누나의 방이다. 그런데 내가 끼어들게 되자 영미 누나가 텃세를 부렸다. 잠자리는 영자 누나가 가운데, 영미 누나와 내가 그 양쪽에 눕기로 하는데 영미 누나가 아랫목을 차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의 온돌방은 모두 구들을 놓은 것으로 구들 놓는 기술에 따라 군불을 때어도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에 큰 차이가 났다.

건너방은 아랫목은 따끈따끈하고 중간은 좀 미지근한테 윗목은 거의 냉골이었다. 그런데 방의 폭이 좁고 가구가 자리잡고 있어 모두 아랫목에 발을 뻗고 잘 수는 없고, 나란히 누워야만 했다.

영자 누나가 "남자인 영도를 아랫목에 재워야 한다."고 주장하자 영미 누나는 엄마의 지원까지 받으려 했다.

"이 얌체 가시나야. 당연히 어린아를 아랫목에 재워야지, 동생을 한데로 내몰락하나?"

쌀쌀했던 엄마가 뜻밖에 내 편을 들어주자 영미 누나도 더 이상 고집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밤을 지내고 나자 영미 누나가 이번에는 "냄새가 나서 함께 못살겠다." 고 트집을 잡고 나서는데 나도 화가 났다.

"내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노?"

"니는 모르나? 그 밤꽃 냄새 같은거 ...... 참말로 구역질이 난다."

그건 억지다. 밤꽃 냄새는 바로 정액에서 나는 것인데 나는 이 방에 와서 딸딸이를 친 적도 없는 것이다. 뒤에 알고보니 남성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될 때 같은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당시 나는 몰랐고 또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도 없었다.

"니한테서 나는 냄새는 더 구역질 난다."

"무슨 냄새가 ...... ?"

"멘스 냄새 ...... 아, 참말로 역겹다!"

나는 코까지 킁킁거리며 6학년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놀릴 때 쓰는 말을 흉내 내어 반박했다.

"뭐라꼬 ......? 이 새끼가 ...... "

누나는 따귀를 올려 부쳤다. 4살이나 많은 누나에게 힘으로 밀려 나는 가끔 얻어맞는 형편이었다. 결국 영미 누나는 안방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가 오면 다시 건너방으로 옮기지만 그동안은 나 대신 엄마와 지내기로 한 것이다. 엄마를 빼앗긴 기분도 들지만 영미 누나와 한방에 안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한편 나는 이미영 선생에게서 받은 선물들로 차츰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전의 우리집은 아버지 엄마를 비롯해 모두 독서와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우리집 책꽂이와 선반에는 교과서와 누나들의 참고서 몇권을 빼고는 <명심보감>과 누런 종이에 맞춤법도 요즘과는 다른 <오륜행실도>, 어디서 공짜로 받은듯한 <희망찬 새마을운동> 같은 책이 고작 몇권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한밤중에 세꾸러미나 되는 책을 들고 오자 엄마와 영미 누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엄마는 공짜로 얻었다는데서 우선 안심하며 "뒤에 불쏘시개나 뒷간의 휴지로 써도 되겠다." 며 좋아했다. 영미 누나의 반응은 더 특별했다. "아, 이건 내가 보고싶었던 책인데 ...... !" 라며 놀라기도 하다가 책마다 이미영 선생의 사인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샐쭉해져서 말했다.

"참, 굼벵이도 구블 재주는 있다카드이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아한테 우째 이런 선물을 줬을꼬?"

나는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미영 선생의 말처럼 그 책들은 "마음의 양식"이었고, 나는 굶주린 놈이 잘 차린 음식상을 받자 허겁지겁 먹어대듯 책 읽기에 열중해 있었다.



내가 처음 읽은 책은 <윤석중동요집> 이었다. 활자가 크고 글자수가 적어 일단 읽기에 편할 것 같았고, 이미영선생의 "시가 가장 아름다운 글." 이라는 말도 생각나 그 책을 잡은 것이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 나라 좋은 나라. ...... "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 "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들판을. ...... "

내가 학교에서 직접 배웠거나 곁다리로 얻어 들은 노래들의 가사가 가득 적혀 있는 것이 신기했다. 제대로 알지 못했던 노래들도 가사를 온전히 알 수 있었고, 1절만 알고 있었던 노래들도 이 책을 보면서 3~4절까지 혼자 불러 보기도 했다.

이미영 선생의 말처럼 그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을 본적이 없는 내가 책을 읽음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두번 째 읽은 것은 <아라비안 나이트> 였다.

깊은 산속의 동굴 앞에서 "열려라, 깨!" 하고 소리치면 바위문이 저절로 열린다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은 2학년 때 담임선생 한테서 이야기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등잔을 비비면 "주인님, 부르셨나요?" 하며 거인이 나타나 모든 일을 해주며 결국 공주와 결혼까지 하게 되는 <알라딘의 램프>, 고래등에도 올라타고 독수리에게 잡혀갔다가 그 둥지에서 보석을 찾아 나오는등 온갖 모험이 펼쳐지는 <신드밧드의 항해>, 그밖에 <하늘을 나는 양탄자> 며 <말하는 물고기> 등 모두가 신기한 이야기들이었다.

세번 째 읽은 것은 <소공자> 였다.

미국에서 홀어머니와 가난하게 사는 소년이 영국 귀족의 후손이기에 혼자 영국으로 건너간다. 고집스럽고 엄하기만 한 할아버지의 마음을 풀어가며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돕고 소년은 모두의 귀여움을 받는다. 가짜 후손이 나타나 곤욕을 치루기도 하지만 결국은 어머니까지 불러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던 할아버지와 화해를 시키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소년의 착하고 곧은 마음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네번 째로 집어든 책은, 빨리 뒷페이지를 펴보고 싶어 안달이 날만큼 더욱 놀랍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응? 이야기가 우찌 되는데 ...... ?"

영자 누나가 다시 물어 왔다. 나는 읽던 책을 덮어 버렸다. 화만 내기보다는 차라리 누나의 궁금증을 빨리 풀어 주는 것이 좋겠다.

"주인공은 선원, ...... 배 타는 사람을 그리 말한다. ...... 그 선원은 고향에 돌아오며 기분이 좋았는기라. 원래 효자라 혼자 사는 아버지도 보고, 사랑하는 애인하고 결혼식도 올리기로 했고, 일등항해사로 ...... 이건 타는 배에서 꽤 높은 계급이다. ...... 승진도 했고 ...... 그래서 기분도 마냥 좋았제. 그런데 고향에서는 주인공 애인을 좋아하는 놈, 승진을 시기하는 놈, 또 주인공이 즈그 아버지한테 전한 편지 때문에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새끼들이 작당을 해가 모함을 한기라. 그래서 주인공은 결혼식장에서 붙잡혀가 절해고도, ...... 이건 바다 한가운데의 외딴 섬을 말하는기다. ...... 그 감옥소에 갇혀뿌따. 10년도 넘게 죄도 없이 갇혀있다 탈출할라꼬 힘들여 땅굴을 팠는데 그기 바깥 쪽이 아니라 바로 옆의 죄수방이라 기가 막히제. 그런데 그 죄수한테 온갖 새 지식과 지혜도 배우고 보물지도도 얻어가 결국은 탈출하고 엄청난 보물도 갖게 됐다. 그래서 이제 그 못된 놈들한테 차례차례 복수를 할끼다. ...... "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누나가 쉽게 알아듣도록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서 빨리 누나에게서 벗어나 그 다음 부분을 읽고 싶었다.



"그 주인공 이름이 에드몽 단테스가?"

"뭐 ...... ?"

나는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물론 주인공은 에드몽 단테스로 첫페이지부터 줄곧 그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앞도 못보는 누나가 내 책을 훔쳐볼 수도 없는데 어떻게 그 이름이 불쑥 튀어 나온단 말인가.

"맞다! 그런데 누부야가 우찌 그 이름을 아노?"

"그라마 책 제목이 <몬테 크리스토 백작> 일낀데 ...... ?"

누나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않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아이다. <암굴왕> 이라카이 ...... "

이번에는 누나가 틀렸다. 아무렴 표지에 큼직하게 쓰여있는 제목까지 내가 잘못 볼리가 있나.



"그 책 쓴 사람이 알렉산더 듀마 아이가?"

"뭐라꼬 ...... ?"

나는 엎어 놓았던 책을 다시 들어 보았다.

나는 정말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표지에는 <저자: 알렉산더 듀마. 번역: X X X.> 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4권 째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은 책의 장식처럼 적혀있다 하더라도 줄거리를 아는데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님인 누나가 주인공은 물론, 직접 읽는 사람도 지나쳐 버린 저자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다.

"맞다! 그런데 누부야가 우찌 그 이름을 아노?"

나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누나의 반응도 아까와 같았다.

"그라마 제목이 <몬테 크리스토 백작> 이 맞을끼다."



나는 아직 못 읽은 뒷부분을 급히 넘겨 보았다. 우선 삽화에서 줄무늬의 셔츠를 입은 선원이며 죄수로 머리와 수염이 가득 자란 에드몽 탄테스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대신 굴뚝모자와 외눈 안경에다 수염을 단정히 기른 신사가 나오는데 글을 훑어 보니 앞에 에드몽 단테스의 이름이 나오듯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이름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누부야 말대로 <몬테 크리스토 백작> 이 맞는갑다."

나는 항복을 해버렸다. 당시 내가 읽은 책은 듀마의 원본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이제스트 한 것이었다. 제목도 <몬테 크리스토 백작> 이 너무 길어서인지, 일본책을 그대로 베껴서인지, <암굴왕> 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누나는 원래의 제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응? ...... 누부야가 우찌 이런걸 다 아노?"

같은 질문을 세번 째 하며 내 언성은 높아졌다.,대답을 안해주니 궁금증은 더 할 수밖에 없었다.



"히 히 ...... "

누나는 웃으면서 좀 부끄러운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라디오에서 알았다."

"라디오가 소설도 비주나?"

"비주는게 아니라 들려 주는기지. ...... <소설극장> 이라고 세계 명작을 한달에 한편씩 소개해 주는기 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 도 거기서 들은기다."

한가지 의문은 풀렸지만 여전히 나는 놀라웠다.

영자 누나는 우리집 식구중에도 제일 불쌍한 존재였다. 장님과 곰보라는 것 때문에 집에서나 밖에서나 업신여김과 놀림을 받아 왔다. 그래서 하루의 대부분을 방에만 처박혀 있고 그러다보니 라디오가 누나에게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더 어릴 때는 대나무 끝에 철사로 안테나를 달고 스피커가 알몸으로 나와 있는 라디오를 듣다 다시 나무상자로 바뀌었는데 지난 추석 때 아버지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사와 좀 더 여러군데 방송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라디오가 뉴스와 연속극, 그리고 "노래자랑" 같이 유행가나 나오는 것으로 알았지, 소설까지 소개해주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학교 문턱에도 못가본 누나가 <알렉산더 듀마> 와 <몬테 크리스토 백작> 을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뭘 그리 빤히 보고 있노?"

영자 누나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아까 소설 이야기를 할 때처럼 귀신에 홀렸나라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벌써 시간은 밤 11시가 가까웠다. 소설을 읽다 평소의 잘 시간을 넘긴 것이다. 불을 끄려다 돌아보니 누나는 라디오의 이어폰을 꼽은 채 반듯이 누워 있었다. 이 새 트랜지스터는 이어폰을 꼽으면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는다.

나도 누운 채로 눈을 돌리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누나의 실루엣이었다.

그 옆으로 보이는 얼굴은 맨날 보아 오고 생각했던 누나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 반듯한 이마, 눈을 감아도 그대로 드러나는 쌍꺼풀과 긴 속눈섭, 오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 매끈하게 마감한 듯한 턱 밑으로 이어진 가늘고 긴 목덜미 ...... 그 얼굴은 동화책의 삽화에 그려진 것 같은 미인이었다.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몬테 크리스토 백작> 을 누나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 누나가 진짜 미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 내게는 더 큰 놀라움과 감동이었다.



"지금도 소설이 나오나?"

이어폰을 꼽은 채 다시 조용해진 누나를 이번에는 내가 방해했다.

"아이다. 지금은 클래식 시간이다."

누나가 이어폰을 빼자 라디오에서는 우리가 "깽깽이" 라는 바이올린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클래식이 뭐꼬?"

"음악중 하나다."

"그런데 와 클래식이라카노?"

"글도 소설뿐 아이라 시나 수필이나 연극대본, 영화각본이 있는 것처럼 음악도 여러 종류로 구분할 수 있제. 유행가 같은 대중음악, 서양사람들이 하는 재즈, 우리나라 전통의 국악, ...... 그중 클래식은 고전음악이라카는긴데 바하에서 헨델, 모짜르트, 베토벤들로 이어오는 옛날 작곡가들의 음악들을 그래 부른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지만 거침 없이 하는 말은 누나가 <알렉산더 듀마>와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알고 있듯, 음악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이 알고있다는 증거다.



문득 할아버지가 자주 되뇌던 말이 떠올랐다.

"참말로 예뻤제. 샛별 같아서 쟈가 방긋거리마 집안이 온통 환해지는기라. 재롱도 얼마나 잘 떨었노. 더구나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총명과 재주가 반짝반짝했다."

첫손녀라 유난히 영자 누나를 귀여워했던 할아버지의 이 말에는 연민과 회한이 담겨 있다.

영자 누나는 갓 돐이 지나자 말을 했다고 한다. 노래는 한번만 가르치면 됐고, 지나가면서 들은 노래도 혼자 정확히 흥얼거릴만큼 총명했다. 춤이나 온갖 재롱도 잘 떨어 동네사람들도 누나만 보면 꼭 노래나 춤을 시켰고, 누나는 재주를 맘껏 뽐내 "금촌리 재롱둥이" 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3살 때 그 못된 마마가 누나를 이렇게 망쳐 놓지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정말 달랐을 것이다. 나도 새삼스레 누나에 대한 연민과 회한이 솟는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오늘의 작은 일들로 누나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사실 나는 누나의 진면목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누나 무릎에 앉아 어리광이나 떼를 쓰고 같이 먹는 군것질거리를 따로 두었다가 나한테 주는 것등으로 누나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누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특히 박금순이라는 생머리에 눈동자가 반짝이는세련된 맹인을 만나면서 누나를 더 창피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은 정말 못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누나의 백태가 낀 눈과 곰보자국에 대한 선입견으로 누나를 못난이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두가지를 뺀 누나의 이목구비는 정말 아름다웠고 비참한 환경에서도 누나는 총명과 지혜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바깥구경을 함으로써 집안에 있는 보석의 가치를 발견한 셈이다.



"누부야아. ...... 우리 노올자아."

나는 아까 초저녁에 누나가 나를 훼방놓듯 누나를 끌어 당겼다.

"이제 자야제. 내일 학교 지각하겠다."

"그라마 누부야가 재워도."

내가 품을 파고 들자 누나는 나를 끌어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꼬마 도령, 아직도 엄마 품이 그립나?"

"엄마 ......?"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누나의 치마 밑으로 들어간 런닝셔츠를 들추며 손을 가슴 쪽으로 밀어갔다.

"그래, 오늘은 엄마 대신 누부야 젖 먹고 자자."

"야가 와 이카노? 히 히 ...... 간지럽다."



누나가 잠시 몸을 비틀었지만 내 손바닥은 어느새 누나의 젖통을 덮었다. 뭉클하는 감각이 전해지는데 누나는 더 이상 반발이 없다. 부드럽게 주무르다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비틀자 금방 딱딱해진다.

"누부야 젖도 많이 켜졌네."

"나이 먹으마 다 그렇지."

"젖도 좀 묵자. 잠 빨리 오게 ...... "

"아이, 이카지 마라."

누나의 앞섶을 헤치자 누나는 다시 몸을 비틀며 내 손을 떼어내려 했으나 그리 큰 반발은 아니었다. 곧 누나의 젖통이 드러났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밥공기를 엎어 놓은듯 아담하면서도 연분홍빛의 팥알만한 젖꼭지가 매혹적이다. 덥썩 물자 "아이 참!" 이라며 내 머리를 밀어냈지만 내가 요지부동이자 포기한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엄마를 기분좋게 할 때처럼 아주 부드럽게 젖무리부터 혀로 훑어 가다가 젖꼭지를 혀끝으로 희롱하고 살살 빨았다. 좀 가빠진 숨소리처럼 누나의 가슴도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젖꼭지를 매만지던 한손이 스르르 내려가며 누나의 팬티 속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무의식, 혹은 조건반사 같은 식으로 말할 수도 있다. 잠결에 엄마한테 그랬듯이 ......

"아이 참. 야가 ...... "

누나가 숨죽인 비명처럼 말하며 내 손을 잡을 때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동작을 빨리 했다. 내 손바닥은 누나의 보지털을 덮었다.

"아따, 터레기도 많이 늘었네."

"야야, 거긴 그러지 마라."

소리는 작았지만 누나는 화를 낸듯 했다. 그러면서 몸도 비틀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와 마주 보며 옆으로 있었던 몸이 똑바로 누운 자세가 되어 내 손바닥은 더 편하게 보지를 덮은 셈이 되었다.

내 가운데 손가락은 바로 입구의 패인 자국 앞에 놓였는데 벌써 습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그 손가락을 집어 넣는 것은 물론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한쪽 젖을 빠는 것도 중단했고 우리는 둘 다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빠구리 해보이 좋드나?"

지나가는 말처럼, 그러나 착 가라앉은 소리로 누나가 물었다.

나는 소름이 끼치듯 온몸이 짜릿했다. 누나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

누나의 젖통을 만지다 빨고 보지에까지 손을 대게 되면서 나는 금방 자지가 부풀어 오르며 끄떡거리는 것까지 느끼면서 당황하고도 부끄러웠다.

오늘 새롭게 누나에 대해서 감동하면서 늘 해오던 응석을 좀 진하게 한 것이었는데 내 몸이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 누나는 절대로 나의 빠구리 대상이 아니다 라고 다짐하면서 스스로를 꾸짖었다.

하지만 방금 물어온 누나의 말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해야할 판이다.

"그기사 ...... 뭐 ..... 그저 ...... "

나는 머뭇거리다 말을 돌렸다.

"누나도 시집가마 할꺼 아이가. 누나도 곧 시집갈끼라카데."



바로 그저께다. 옆집의 민석 엄마가 물건을 사러 왔고 엄마는 답례로 과자와 수정과를 대접했다. 나도 그 자리에 끼어 셋이 과자를 먹고 있을 때 영자 누나는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장님이지만 속옷 같은 것은 그전부터 누나가 직접 빨았다.

"아따, 저 엉덩이 튼실한거 보레! 영자도 이제 시집가야 되겠구마."

쪼그리고 앉은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민석엄마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후유 ...... "

엄마는 먼저 땅이 꺼질 듯 한숨부터 쉬었다.

"보내기는 보내야제. 하지만 아직 마련도 없고, 짝도 없고 ...... "

그런 말을 들으며 나도 괜히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누나가 시집간다는 것은 우리집을 떠나는 것이며 또하나의 이별인 것이다.

"어메, 많이도 한 모양이네."

"쟈는 꼭꼭 날도 지키고 양이 많심더."

"그라마 아도 잘 낳겠구마."

누나가 빨래를 너는 것을 보며 다시 나온 대화다. 무명을 길게 늘여 어린애 기저귀처럼 생긴 그 빨래는 누나의 월경대였다.



"시집을 가마 그것도 해야 되겠제. 하지만 내사 그런 생각만 해도 슬프고 답답다."

누나는 풀죽은 소리로 말했다.

"여자들은 처음 빠구리할 때는 피가 나서 아프기만 하고 재미도 없다카드라. 하지만 자꾸 하마 누부야도 좋아질끼다. 누부야가 들은, 엄마나 서울띠기가 소리 지른 것도 좋아가 내는거 아이가?"

누나의 보지에 손을 얹고 있기 때문인지 평소 하기 힘든 이야기가 그냥 쉽게 나왔다. 빠구리에 대해서만은 내가 지금의 누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나는 남의 경험담을 전하듯 말했다.

"신랑이 하자카마 아프고 싫어도 그기사 해야겠제. 내말은 시집을 가야한다는기 슬프고 답답다는기다."

누나의 말은 "빠구리는 하더라도 시집은 가기 싫다." 는 뜻이다. 나는 문득 어디선가 들은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과 노인이 "죽고 싶다." 라는 말은 정말 샛빨간 거짓말." 이라는 말이 떠 올랐다. 누나는 지금 동생 앞에서 "체"를 하는 것이다.

"싫으마 안가마 될꺼 아이가?"

나는 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럴 수야 있나? 부모님이 이래 키워줬고 나이 들었으이 가야제."

누나는 맥이 빠진 어조로 응답했다.

"말을 와 그리 빙빙 돌리노? 시집은 가기 싫지만 빠구리는 하자카마 하고, ..... 그런데 부모님 생각해서 시집은 간다카고 ...... 내사 누부야 생각이, 누부야 진심이 뭔지, 이레 말을 할수록 아리송하다."

"내 진심은, ...... 내가 제일 바라는건 이 집에서 아부지 어무이랑, 특히 우리 영도캉, 그저 지금처럼 사는기다."

여전히 나는 긴가 민가 했다. 당시 금촌리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되면 시집 장가를 갔다. 물론 당시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먹고 사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지만, 먹는 것이 생존의 수단이라면 짝짓기는 삶의 목적 같기도 했다.

"그라마 시집 안가마 그만이제. 내도 누부야캉 사는기 좋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제. 소나 돼지도 클만큼 크마 팔려 가잖나?"

"뭐라꼬 ......? 누부야가 소나 돼지가? 또 시집이 죽으러 가는기가?"

나는 괜히 울화가 치밀어 소리가 커졌다.



"소나 돼지가 아니니 더 그렇제. ...... 생각해 봐라. 나를 이만큼 키워 주셨는데 밥이라도 축 안 내고 짐을 덜어줘야 될꺼 아이가?"

나는 이제야 누나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가난이다. 누나는 시집을 가기 싫어 하면서도 우리집의 밥 한술을 덜 축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니가 만져본 것처럼 젖이 부풀고 아래도 터레기가 나고 ...... 내가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는기 슬프고도 무서벘다. 그건 바로 내가 이 집과 부모형제를 떠나야 한다는 신호나 같은기라. 그래도 내가 한가지 바라는 것은 제발 돈 많은 남자가 나를 데리갔으마 하는기다. 그래가 그 돈으로 영도가 대학교라도 갈 수 있으마 얼마나 좋겠노."

"뭐라카노? 내가 누나 몸 판 돈으로 대학을 간단말가?"

불쑥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지만 그 뒷맛은 스스로에게도 공허했다. 누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시집간다는 것을 받아 들이면서 또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이 잘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나는 오늘 낮에 만난 청송띠기가 불쑥 떠 올랐다.

청송띠기는 화전민 출신에다 한 손을 무릎에 대야 걸을 수 있는 심한 절름발이다. 게다가 사팔이에다 살짝 곰보다. 하지만 세끼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든 집에서 다 컸으니 입이라도 덜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곳 금촌리로 시집을 왔다. 그것도 심술보 엄마에 망나니 아들이며 째지게 가난한 영구의 색시로 ......

남들이 보기에는 영자 누나도 청송띠기 같은 불우한 여인이다. 어쩌면 더 조건이 나쁠지도 모른다. 청송띠기는 그 몸으로도 남의 품앗이까지 온갖 힘든 일도 해가며 자기네 살림을 꾸려 가는데 누나는 장님이라 그런 일조차 하기 어려울테니까.

어떻든 청송띠기는 그 힘든 시집살이에서도 순박함을 잃지 않고 나름대로 잘 적응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차피 영자 누나도 집안의 입을 덜고 짝을 찾아 시집을 가야 한다면 청송띠기처럼 잘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 이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내 몸에 변화가 왔다.

조금전 누나를 더듬으며 부풀었던 자지를 가까스로 진정 시켰는데 슬금슬금 다시 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청송띠기는 겉으로 드러난 약점을 덮을만큼 한없이 순박하면서도 뜨겁고 사랑스런 여인이었다.



오늘 청송띠기의 방에서 점심을 대접받고 빠구리까지 하게 된 것은 괜히 장난끼로 던진 한마디가 빌미가 되었다.

전날 오후, 심부름을 가는 길에 그녀의 집 근처에서 청송띠기와 마주 쳤다. 그녀가 먼저 "영도 데련, 어디 가는겨?" 라고 물어왔다. 나를 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고, 나도 늘 "집에요." 라거나 "학교요." 라는 식으로 습관처럼 대답했었다. 그런데 이날만은 빙긋 웃으며 "형수 집에요." 라고 장난을 걸었다.

"형수? ...... 어떤 형수 ...... ?"

"영구 히야네 형수. 정규 엄마 형수요."

"참말로 ...... ? 엄마야, 참말로 내를 ......?"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놀라고 감동한 듯 말하는데 나는 당황했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당황할 거리가 있었다.

"아이고, 그런데 우야노? ...... 지금 정규 할매가 집에 계시는데 ...... 허리를 다쳐 갖고 ...... "



"그라마 나중에 또 ...... "

나는 급히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정말 다행이다. 그저 농담 한마디 한 것을 그녀가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 몰랐고, 심부름을 가다 또 행망을 떨면 야단맞을 것이 뻔하다.

"영도 데련! 내일은 괘않다. 내일 올란교?"

그녀는 나를 불러 세우며 다급하게 말했다.

"혹부리 할매 허리가 아프다면서요?"

"아, 그래가 오늘도 화투방에 못나가자 좀이 쑤셔 야단이고 그래서 내일은 기어서라고 가야겠다고 벼르고 있는기라예. 참, 내일은 공일 아닌교. 아주 점심 때 오소. 내가 맛있는 것 준비해 놓을께."

더 이상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나도 그 통통하며 진짜 젖이 나오는 젖통이며 비뚜로 들어가기는 하지만 뜨겁고 또 한없이 순박하기만 한 그녀를 가끔 생각해 왔던 터라 그렇게 약속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 저 방으로 드가소. 내 싸게 가져 갈께."

점심 때를 맞추어 그녀의 집을 찾자 청송띠기는 반색을 하며 자기네 방문을 열어 주고 부엌으로 내려 갔다. 한손으로 무릎을 짚어야 제대로 걸을만큼 심한 절름발이라 그녀의 움직임이 더욱 수선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잠시 후 조그만 개다리 소반이지만 밥과 반찬으로 가득찬 밥상이 들어왔다. 하지만 언뜻 보아도 내용은 빈약했다. 수북히 담고 김이 모락모락 나기는 하지만 거의 꽁보리밥에다 국이나 된장도 없이 반찬은 김치 하나와 온통 나물종류다. 그래도 아기가 잠들어 있는 방에서 이렇게 겸상을 하며 마주 앉으니 기분이 좀 묘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 계집애들과 서방각시 놀이를 했던 소꿉장난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다. 오늘 밥상은 진짜 음식이고 우리는 곧 빠구리를 할 것이다. 비록 서방각시는 아니지만 ......



"제사 때 쓸 쌀을 조금 털어 넣었지만 그래도 보리가 너무 많지예? ...... 사실 우리는 맨날 꽁보리만 먹으이 ...... 그래도 많이 드소."

"우리도 그런데 뭘 ...... 그래도 반찬이 참 많네요."

미안해 하는 그녀의 말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 공치사를 먼저 했다.

"그래도 데련 온다니까 이것 저것 다 챙겨봤제. ...... 이건 원추리, 요건 개미취, 또 이건 씀바귀 ...... 다 주왕산에 나는 산나물들이라요. 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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