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노예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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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순간 깊은 기억 속에 꽁꽁 묻어 두었던 악몽이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다.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이 부친이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고, 그렇게 간단히 가버렸다고 알릴 때 모친의 모습이었다.
그때 그는 무너진 모친의 세상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의무감만 가득 차올랐다.
자신의 슬픔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무너진 세상이 아니면 그럴 것 같은 세상이 모친의 세상인지, 그의 세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분명 부친의 상실은 아들인 그보다 모친한테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모친이 얼마나 부친을 깊게 사랑했는지는 그의 존재를 알면서도 곁을 떠날 수 없어서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받아들였던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방금 통화한 의붓아버지한테 갑자기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걸까? 그는 가슴을 짓누르는 무서운 직감을 부정하고 다른 쪽으로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슬픔으로 생각을 돌렸다.
하지만 모친의 눈동자 가득 슬픔의 깊이가 달랐다. 뭔가 달랐다.
그 차이를 부정하려고 했지만 모친의 울음소리도 그 다름을 직시하도록 섬뜩하게 알렸다.
그는 감히 물을 수가 없었다. 차마 입도 뗄 수 없었다. 직감이 현실이 될까 봐. 알고 싶지 않은 악몽이 시작될까 봐.
“우리 영아 어쩌면 좋니. 아버지한테 알려야 하는데…… 영아한테도 말해야 하는데 아, 난 도저히 말을 못 하겠어.”
그의 귓가에 메아리처럼 단어가 끊어져서 의미를 알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 영아 어쩌면…… 아버지한테…… 영아한테도…….
태욱은 얼어붙은 채 눈과 귀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듯이 모친만 뚫어지게 살폈다.
원치 않는 소식은 말하지 말라고 원망스럽게 노려보느라 눈알이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친이 기어이 그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반지고리세포암 3기에 진행이 너무 빠르대. 이미 임파선까지 전이가 된 상태라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는데. 그래서 빨리 말해야 하는데.”
모친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아서 죽도록 떨고 있는 그에게 잔인한 부탁을 했다.
“네가 말해 주겠니? 영아한테. 아버지한테는 내가 할게. 내일 입원해서 모레 11시에 윤 교수가 바로 집도한다니까.”
윤 교수는 모친의 절친 남동생이었다. 한국 대학교 병원 위암 전문의로 수술 결과 및 예후에 있어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는 명실공히 1인자였다.
하지만 뛰어난 의사가 집도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진작 영아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한 자신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속이 불편해도 평소 늘 그랬으니까 소화 기관이 약해서라는 익숙한 핑계에서 무지할 정도로 태평했다.
젊은 나이라 큰 병이 없을 거라는 편협한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왜? 왜? 언제부터? 아팠던 걸까? 떨어져 지내지 않았으면 알았을까? 신경 썼을까?
그는 무엇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환장할 정도로 돌리고 싶었다. 정말이지 진작 챙기지 못했던 자신이 죽도록 싫었다.
***
“왜 그렇게 조용해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는데요?”
모친이 갑자기 윤 기사를 불러서 지리산 별장으로 내려갔다.
가사 도우미도 떠났고. 그 후 영아는 태욱과 단둘이 남았다.
드디어 둘만 남았다는 생각에 설레는 기대감은 바로 사라졌다. 그가 깊은 생각에 빠져 통 말이 없었으니까.
침묵은 큰집이 스산하게 느껴질 만큼 길어졌다.
쨍그랑!
찻잔을 들려던 태욱이 손을 심하게 떨었다.
잔이 응접실 카펫으로 곤두박질쳤다. 잔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카펫 위에 흘러내린 물을 닦아야 할 것 같았다.
“어머.”
영아가 컵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는데 그도 동시에 몸을 숙였다.
“그냥 둬. 내가 치울게.”
그가 지나치게 큰소리를 질러서 깜짝 놀랐다.
“그럼 난 행주를 가져올게요.”
“아니, 그것도 내가 해. 제발 앉아 있어.”
그가 꼼지락거리는 그녀를 끌어다 소파 위에 앉히더니 무릎 꿇고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굳은 것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체온이 너무 높아서 화끈거릴 정도였다.
“오빠 열나는 것 같은데. 어디 아파요?”
태욱이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를 악물었다.
악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순간 그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물이 차오른 그의 검은 눈동자 사이로 헤아릴 수 없는 뜨거운 울분이 레이저처럼 쏘았던 것이다.
“아냐, 내가 아픈 게 아니잖아. 바보야. 왜 몰라? 왜 몰랐냐고. 아팠으면서. 이렇게 몸이 엉망이 됐는데 왜 병원을 안 갔어? 왜? 왜? 아냐, 아냐. 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 오빠를 널 지켜 줘야 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난 그가 코를 훌쩍이면서 등을 돌린 채 섰다.
창밖의 깜깜한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그의 뒷모습을 영아는 멍하니 지켜봤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뜻을 헤아리려고 애쓰면서.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무거운 모친의 긴장된 표정이 의미하는 진실을 알려고 했다.
“나 암이래요? 위암? 그래?”
그녀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물었다.
그 소리에 그가 넓은 어깨가 크게 들썩이더니 천천히 그녀를 돌아봤다.
그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녀를 숨죽인 채 바라볼 뿐이었다.
그대로 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할 수 없이 그녀가 그에게 다가갔다.
“맞구나. 근데 그게 뭐. 위암은 생존율이 높잖아요. 수술하고 관리만 잘하면 돼. 걱정 마요. 하여간 새가슴이라니까.”
영아는 그의 큰 손을 잡고 위로하려고 흔들었다.
순간 그가 손을 확 잡아당겨 꼭 끌어안았다.
그의 뜨겁게 떨리는 숨결과 거세게 뛰는 심장 고동 소리가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맞아. 수술하고 관리만 잘하면 돼. 걱정할 게 뭐 있어.”
그는 깊이 숨을 들이켜고 또 들이켜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근데 몇 기래? 2기?”
그의 표정을 보고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3기? 말기?”
“3기.”
그가 무섭게 대답했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가운데 옅은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말기는 아니라니까.”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순간 그가 굶주린 것처럼 죽을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 안에서 공기라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뺨을 감싸 쥔 채 키스를 되돌리고 있던 그녀는 손가락 사이사이 그의 뜨거운 눈물로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울지 마요. 내가 뭐 죽나.”
순간 그의 잘생긴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심하게 떨렸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
그의 억눌린 목소리에 두려움은 그녀의 가슴이 푹 내려앉았다.
“오빠.”
“그러니까 죽지 마. 절대 안 돼. 내가 끝까지 따라갈 테니까. 나 두고 가면 안 돼.”
그는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순간 깊은 기억 속에 꽁꽁 묻어 두었던 악몽이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다.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이 부친이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고, 그렇게 간단히 가버렸다고 알릴 때 모친의 모습이었다.
그때 그는 무너진 모친의 세상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의무감만 가득 차올랐다.
자신의 슬픔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무너진 세상이 아니면 그럴 것 같은 세상이 모친의 세상인지, 그의 세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분명 부친의 상실은 아들인 그보다 모친한테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모친이 얼마나 부친을 깊게 사랑했는지는 그의 존재를 알면서도 곁을 떠날 수 없어서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받아들였던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방금 통화한 의붓아버지한테 갑자기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걸까? 그는 가슴을 짓누르는 무서운 직감을 부정하고 다른 쪽으로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슬픔으로 생각을 돌렸다.
하지만 모친의 눈동자 가득 슬픔의 깊이가 달랐다. 뭔가 달랐다.
그 차이를 부정하려고 했지만 모친의 울음소리도 그 다름을 직시하도록 섬뜩하게 알렸다.
그는 감히 물을 수가 없었다. 차마 입도 뗄 수 없었다. 직감이 현실이 될까 봐. 알고 싶지 않은 악몽이 시작될까 봐.
“우리 영아 어쩌면 좋니. 아버지한테 알려야 하는데…… 영아한테도 말해야 하는데 아, 난 도저히 말을 못 하겠어.”
그의 귓가에 메아리처럼 단어가 끊어져서 의미를 알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 영아 어쩌면…… 아버지한테…… 영아한테도…….
태욱은 얼어붙은 채 눈과 귀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듯이 모친만 뚫어지게 살폈다.
원치 않는 소식은 말하지 말라고 원망스럽게 노려보느라 눈알이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친이 기어이 그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반지고리세포암 3기에 진행이 너무 빠르대. 이미 임파선까지 전이가 된 상태라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는데. 그래서 빨리 말해야 하는데.”
모친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아서 죽도록 떨고 있는 그에게 잔인한 부탁을 했다.
“네가 말해 주겠니? 영아한테. 아버지한테는 내가 할게. 내일 입원해서 모레 11시에 윤 교수가 바로 집도한다니까.”
윤 교수는 모친의 절친 남동생이었다. 한국 대학교 병원 위암 전문의로 수술 결과 및 예후에 있어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는 명실공히 1인자였다.
하지만 뛰어난 의사가 집도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진작 영아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한 자신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속이 불편해도 평소 늘 그랬으니까 소화 기관이 약해서라는 익숙한 핑계에서 무지할 정도로 태평했다.
젊은 나이라 큰 병이 없을 거라는 편협한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왜? 왜? 언제부터? 아팠던 걸까? 떨어져 지내지 않았으면 알았을까? 신경 썼을까?
그는 무엇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환장할 정도로 돌리고 싶었다. 정말이지 진작 챙기지 못했던 자신이 죽도록 싫었다.
***
“왜 그렇게 조용해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는데요?”
모친이 갑자기 윤 기사를 불러서 지리산 별장으로 내려갔다.
가사 도우미도 떠났고. 그 후 영아는 태욱과 단둘이 남았다.
드디어 둘만 남았다는 생각에 설레는 기대감은 바로 사라졌다. 그가 깊은 생각에 빠져 통 말이 없었으니까.
침묵은 큰집이 스산하게 느껴질 만큼 길어졌다.
쨍그랑!
찻잔을 들려던 태욱이 손을 심하게 떨었다.
잔이 응접실 카펫으로 곤두박질쳤다. 잔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카펫 위에 흘러내린 물을 닦아야 할 것 같았다.
“어머.”
영아가 컵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는데 그도 동시에 몸을 숙였다.
“그냥 둬. 내가 치울게.”
그가 지나치게 큰소리를 질러서 깜짝 놀랐다.
“그럼 난 행주를 가져올게요.”
“아니, 그것도 내가 해. 제발 앉아 있어.”
그가 꼼지락거리는 그녀를 끌어다 소파 위에 앉히더니 무릎 꿇고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굳은 것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체온이 너무 높아서 화끈거릴 정도였다.
“오빠 열나는 것 같은데. 어디 아파요?”
태욱이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를 악물었다.
악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순간 그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물이 차오른 그의 검은 눈동자 사이로 헤아릴 수 없는 뜨거운 울분이 레이저처럼 쏘았던 것이다.
“아냐, 내가 아픈 게 아니잖아. 바보야. 왜 몰라? 왜 몰랐냐고. 아팠으면서. 이렇게 몸이 엉망이 됐는데 왜 병원을 안 갔어? 왜? 왜? 아냐, 아냐. 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 오빠를 널 지켜 줘야 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난 그가 코를 훌쩍이면서 등을 돌린 채 섰다.
창밖의 깜깜한 하늘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그의 뒷모습을 영아는 멍하니 지켜봤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뜻을 헤아리려고 애쓰면서.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무거운 모친의 긴장된 표정이 의미하는 진실을 알려고 했다.
“나 암이래요? 위암? 그래?”
그녀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물었다.
그 소리에 그가 넓은 어깨가 크게 들썩이더니 천천히 그녀를 돌아봤다.
그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녀를 숨죽인 채 바라볼 뿐이었다.
그대로 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할 수 없이 그녀가 그에게 다가갔다.
“맞구나. 근데 그게 뭐. 위암은 생존율이 높잖아요. 수술하고 관리만 잘하면 돼. 걱정 마요. 하여간 새가슴이라니까.”
영아는 그의 큰 손을 잡고 위로하려고 흔들었다.
순간 그가 손을 확 잡아당겨 꼭 끌어안았다.
그의 뜨겁게 떨리는 숨결과 거세게 뛰는 심장 고동 소리가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맞아. 수술하고 관리만 잘하면 돼. 걱정할 게 뭐 있어.”
그는 깊이 숨을 들이켜고 또 들이켜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근데 몇 기래? 2기?”
그의 표정을 보고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3기? 말기?”
“3기.”
그가 무섭게 대답했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가운데 옅은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말기는 아니라니까.”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순간 그가 굶주린 것처럼 죽을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 안에서 공기라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뺨을 감싸 쥔 채 키스를 되돌리고 있던 그녀는 손가락 사이사이 그의 뜨거운 눈물로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울지 마요. 내가 뭐 죽나.”
순간 그의 잘생긴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심하게 떨렸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
그의 억눌린 목소리에 두려움은 그녀의 가슴이 푹 내려앉았다.
“오빠.”
“그러니까 죽지 마. 절대 안 돼. 내가 끝까지 따라갈 테니까. 나 두고 가면 안 돼.”
그는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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